사라지는 계절 앞에서
이번 겨울은
추위도 많지 않았고
눈은 끝내 오지 않았다
창밖을 바라보며
나는 겨울을 기다렸는데
겨울은 약속을 잊은 사람처럼
조용히 지나가 버렸다
계절은
제 몫의 얼굴을 하고
찾아와야 하는데
겨울은 추워야
몸보다 마음이 먼저 웅크려지고
여름은 더워야
살아 있다는 걸 투덜대며 느끼고
봄은
아무 이유 없이 따사로워야 하고
가을은
괜히 서늘해서
괜히 돌아보게 만들어야 하는데
갈수록
계절이 흐려진다
온도만 남고
감각은 사라진다
사라지는 건
날씨만이 아니라
우리가 계절을 느끼던 방식일지도 모른다
눈 오는 날의 침묵
첫 더위의 짜증
봄바람에 괜히 설레던 마음
가을 저녁의 이유 없는 쓸쓸함
계절이 사라진다는 건
기억이 줄어든다는 뜻일까
다음 겨울엔
조금 불편해도 좋으니
제대로 추웠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는 또 하나의 계절을
기억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