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라는 말이 무기가 될 때

경험이 쌓일수록 마음은 왜 굳어질까

by 애나 강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이’라는 단어가 사람을 보호하는 방패가 아니라
상대를 밀어내는 무기처럼 쓰이는 장면을 자주 보게 되었다.

“나이 먹어서 그래.”
“이 나이에 뭘 더 바꾸겠어.”
“내가 살아온 세월이 얼만데.”

그 말들 안에는
체념이 섞여 있고,
고집이 섞여 있고,
어쩌면 변하지 않겠다는 선언 같은 것도 들어 있다.

처음엔 이해하려고 했다.


정말 나이가 들면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을 수 있고,
살아온 시간이 쌓이면 생각이 굳어질 수도 있으니까.
세상을 여러 번 겪고, 사람에게 상처도 많이 받아봤을 테니
자기 방식이 더 단단해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나는 그 ‘자연스러움’이 불편해졌다.

나이를 이유로
상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태도,
나이를 이유로
자기 생각만 옳다고 밀어붙이는 말투,
나이를 이유로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모습들.

그건 연륜이 아니라
어쩌면 성장을 멈춘 시간 아닐까.


나는 늘 이렇게 생각해왔다.
“오래 살았으면, 그만큼 더 부드러워질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많이 겪었으면, 남의 마음도 조금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힘든 세월을 버텨냈다면,
이제는 누군가에게 조금 더 다정해질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런데 현실에서 마주한 많은 ‘나이 듦’은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달랐다.
따뜻함보다는 무뎌짐이 많았고,
여유보다는 고집이 더 단단해 보였다.


그래서 가끔은
나이라는 말이 너무 쉽게 방패가 되고,
너무 자주 변명처럼 쓰이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해진다.

솔직히 말하면,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나이 들어서도 저러지 말아야지.”
“나는 나이가 들어도, 남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나이를 핑계 삼아 마음을 닫지는 말아야지.”

하지만 문득 이런 질문이 든다.
정말 나는 다를 수 있을까.


지금은 이렇게 말하지만,
더 많은 상처를 겪고,
더 많은 실망을 겪고,
더 많은 시간 속에서 닳아버리면
나 역시 어느 순간
‘나이’라는 말을 꺼내 들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요즘
나이를 먹는 법을 배우고 싶다.

단단해지는 법이 아니라
부드러워지는 법으로 나이를 먹는 사람.


자기 생각이 있다는 것과
남의 생각을 들을 줄 안다는 것을
같이 품을 줄 아는 사람.
“나이 먹어서 그래”가 아니라
“나도 아직 배우는 중이야”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

어쩌면 나이 든다는 건
정답을 많이 가지는 일이 아니라,
모르는 걸 인정할 줄 아는 용기를 키우는 일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다짐해본다.
언젠가 내가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었을 때,
누군가에게
“나이 들어서 그렇다”는 사람이 아니라
“나이 들수록 더 다정해졌다”는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그게 내 나이 듦의 방향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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