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집게의 반란
주말 아침이었다.
햇살이 거실 창으로 비스듬히 들어오고, 커피 향이 천천히 집안을 채우고 있을 때였다. 남편이 거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고 있었다.
“왜 그렇게 오래 봐?”
“아… 이게 말이야.”
가까이 가보니 검은 눈썹 사이사이에 흰 눈썹이 몇 가닥 섞여 있었다. 그걸 뽑겠다고 쪽집게를 들었는데, 자꾸만 허공을 집는 모양이었다.
“이제는 가까이 있는 게 잘 안 보여.”
그 말이 어쩐지 쓸쓸하게 들렸다.
아, 나이.
그러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여보, 이것 좀 뽑아줘.”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쪽집게 가져와.”
사실 나도 돋보기를 써야 겨우 보이는 나이다. 돋보기를 쓰고 남편 얼굴을 들여다보니, 세상에. 검은 눈썹 숲 사이에 숨어 있는 흰 눈썹은 꼭 위장한 적군 같았다. 잘못 뽑으면 멀쩡한 검정 눈썹이 희생될 판이었다.
“가만히 있어.”
나는 숨을 죽이고 집중했다. 손끝에 힘을 주고, 조심조심 한 가닥을 집었다.
“아, 아파!”
“움직이지 마!”
한쪽은 꽤 성공적으로 정리했다. 나름 뿌듯했다. 문제는 반대쪽이었다. 흰 눈썹이 검은 눈썹과 절묘하게 엉켜 있었다. 한 번 집고, 놓치고. 또 집고, 또 실패하고. 나는 점점 더 집중했고, 남편의 인내심은 점점 얇아졌다.
그러다 남편이 툭 던지듯 말했다.
“그것도 못하느냐?”
그 한마디.
정말 별것 아닌 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이 돋보기 너머로 날카롭게 박혔다. 내 몸 어딘가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들고 있던 쪽집게로 남편의 콧등을 ‘콕’ 하고 집어버렸다.
“아!”
짧은 외마디 소리.
쪽집게 끝에 뭔가 묻어 있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피지겠지, 하고. 그런데 잠시 후 콧등에 붉은 점이 맺히기 시작했다.
“왜 그래?”
남편이 손으로 만져보더니, 그제야 나도 상황을 파악했다.
아, 이게 아닌데.
콧등에 살이 조금 까져 있었다. 피가 아주 조금, 정말 조금씩 번지고 있었다. 그 순간 화는 온데간데없고 당황과 미안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미안해… 그냥 스친 줄 알았어.”
말은 남편이 예쁘게 하지 못했지만, 피를 보니 괜히 내가 더 큰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휴지를 가져와 살살 닦아주며 생각했다. 나는 잘해주려고 했을 뿐인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남편은 거울을 보며 투덜거렸다.
“흰 눈썹 뽑다가 흉터 남기겠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그러니까 말을 예쁘게 하지.”
우리는 잠시 서로를 보다가 같이 웃었다. 콧등에 작은 상처를 달고 있는 남편과, 돋보기를 벗으며 한숨을 쉬는 나. 어느새 우리는 흰 눈썹을 걱정하고, 가까운 것이 흐릿해지는 나이가 되어 있었다.
젊을 때는 몰랐다.
사랑이란 거창한 이벤트보다 이런 사소한 부탁 속에 숨어 있다는 걸. 눈썹 한 가닥을 뽑아달라는 말, 돋보기를 쓰고 얼굴을 들여다보는 시간, 괜히 상처 내고 미안해하는 마음까지도 다 우리의 하루였다.
살다 보면 정말 별것 아닌 일로 서운해지고, 별것 아닌 말에 열이 오른다. 그러다 또 금세 웃는다. 부부는 그런 사이인가 보다. 서로의 흰 눈썹을 대신 뽑아주고, 대신 화도 내주고, 대신 미안해하는 사이.
지금도 남편의 콧등에는 아주 옅은 자국이 남아 있다. 그걸 볼 때마다 나는 웃음이 난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러니 말을 예쁘게 하라니까.’
흰 눈썹 몇 가닥이 알려준 주말의 교훈이다.
나이 든다는 건, 잘 안 보이는 것들이 늘어나는 대신 서로를 더 오래 바라보게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