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해외에서 어떤 기술이 도움이 될까?’**였습니다. 언어도 문화도 다른 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기술은 생각보다 단순한 데에 있었습니다. 머리를 손질하고, 옷을 고치는 것. 그저 사소하게 여겼던 생활 기술들이 해외에선 비용도, 접근성도 높아져 귀한 기술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그렇게 저는 문화센터의 3개월 미용 기술과 재봉 기술 과정에 등록했습니다. ‘전문가가 되겠다’는 거창한 목표는 아니었습니다. 가족의 머리를 직접 다듬고, 옷을 조금 고칠 수 있는 정도만 돼도 큰 도움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낯설고 서툴렀습니다. 기초 펌을 배우고, 바리깡 잡는 법을 익히고, 천 위에 실을 꿰어보는 모든 순간이 도전이었습니다.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무엇보다 가족을 위한 일이라서, 배움의 동기부터 달랐습니다.
이민을 오고 나서, 실감하게 되었어요. 머리 자르려면 예약 필수, 가격도 만만치 않다는 말이 사실이더라고요. 바지 밑단을 수선하는 데도 비용이 많이 들고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실력을 쓸 기회가 생긴 거죠.
가족 머리를 처음 자를 때, 손이 얼마나 떨렸는지 모릅니다. 땀이 맺히고, 가위질 하나도 조심스러웠어요. 남편 머리를 처음 자르고 나서는 스스로 뿌듯했죠. 그런데 문제는 아들이었습니다. 바리깡으로 뒷머리를 밀다가, 그만 ‘땐빵’을 내고 말았거든요. 순간 심장이 철렁했어요. 얼마나 미안하던지요.
그런데 아들이 하는 말,
“뒤는 안 보여서 괜찮아. 엄마.”
그 말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어찌나 고맙던지요. 사랑한다, 아들아.
딸의 머리는 일자로 자르니 비교적 쉬웠고, 남편도 여전히 제 손에 머리를 맡깁니다. 마음에 꼭 들지는 않는 눈치지만 묵묵히 앉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의 가위질도 훨씬 나아졌고, 가족들도 점점 적응해 갔습니다. 익숙해진다는 것, 실력은 그렇게 쌓이는 거더라고요.
재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원래 관심은 있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문화센터에서 본격적으로 다시 배우게 되었습니다. 천천히 배우며 만든 첫 작품은 집에서 입는 스커트. 이민 온 이후로도 자주 입는 그 스커트는, 제가 만든 것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옷입니다. 아직도 입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대견하더라고요.
지금도 여전히 완벽하진 않아요. 하지만 우리 가족의 머리를 다듬는 이 시간이, 이제는 익숙한 루틴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아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딸과는 머리 스타일을 상의하면서요.
무엇보다 이민 생활 속에서 이렇게 가족을 위한 손길 하나하나가 큰 보람이 되고, 스스로에게 자존감도 심어줍니다. 기술이란 꼭 거창할 필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나의 손끝에서 누군가의 미소가 피어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우리 가족에게도, 무엇보다 저 자신에게도
“참 잘하고 있어.”
그런 말을 건네주고 싶은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