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꼬깃한 만원 한장

와라세차장 스토리 1

by 로제타

--이곳 세차장으로 오늘 하루도 수십대의 차들이 들어오고, 각자 다른 인생사를 가진 수십 명의 손님들과 만난다.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말에서 손님들과의 첫 만남이 시작된다.--


먼지를 보얗게 층층이 뒤집어쓴 구형 승용차 한 대가 세차장으로 들어온다. 아마도 최소 1년 이상은 세차를 하지 않은 듯하다.


운전석 유리창이 반쯤 내려간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타고 계신다.


"여기 세차 얼마죠?"


"예 요즘 임시 오픈 할인기간이라서 수동 세차 출발은 500원부터고요. 오토버블 반자동 방식은 2000원입니다."


"그럼 500원으로 하면 되겠네! 깨끗하게 해 줘요."라고 말하시며 차에서 내리시는 것이 아닌가?


아마 이 할아버지 3만 원 정도 하는 손세차와 셀프세차를 잘 이해 못 하시는 듯하다. 그래서, 다시 설명을 드렸다. "할아버지, 여기는 셀프세차장이에요. 손세차 맡기시려면 다른 곳으로 가셔야 돼요."


이렇게 설명을 드려도 잘 이해를 못 하신다. 500원이 적으면 수고비 보태서 3000원을 줄 테니 깨끗하게 세차해 놓으라고 막 명령조로 말하시니 좀 난감하다. 연세가 있으시고 거동이 좀 불편해 보이셔서 그냥 3000원만 받고 외부세차를 대신해드리기로 했다.


할머니는 조수석에 가만히 앉아 계시고, 할아버지는 내려서 내가 열심히 하나 안 하나 지켜보신다. 먼지 두께가 족히 1cm는 되어 보이는 오래 묵은 때를 고압수로 세척한 뒤 거품솔로 차를 이쪽저쪽 빠짐없이 문질러 닦았다. 다른 손님들 불편사항 확인하려 가봐야 되는데, 할아버지는 바퀴도 닦아줘야지 하신다. "예~예~ 바퀴는 먼지가 많아서 제일 나중에 하려고요 ㅠㅠ."


세차하는 도중에 조수석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3000원짜리 세차를 열심히 하는지를 안팎에서 감시당하는 느낌이다.


"휴~ 겨우 끝났다."


할아버지가 3000원을 주시면서 수고했고, 실내세차는 얼마냐고 물으시길래 실내세차는 정말 해드릴 수 없다고 하니 자신이 직접 하시겠단다.


할아버지가 실내세차를 하는 동안 할머니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가벼운 인사를 하고 어디 사시는지를 물어보았다. 세차장 근처 00 아파트에 사신다고 했다.


원래는 경산에 살았는데, 몸이 아파서 서울의 병원에 2년 정도 장기 입원해 있었고, 병세가 나아져서 다시 경산으로 내려온 것이라 하셨다. 차는 그동안 계속 세워뒀었고...


이제야 할아버지의 차가 왜 그리 더러웠는지 알게 되었다. 세워둔 그 자리에서 주인을 기다리던 차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2년 동안 먼지를 폭 뒤집어쓰고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 깊은 개인사에 관해서도 얘기가 오갔다. 50이 다 되도록 시집 안 간 큰딸, 공직에 계셨던 습관 때문인지 매사에 꼼꼼한 할아버지, 독일 유학 중인 손녀, 둘이 살기에는 집이 너무 크다는 할머니의 얘기를 들으며 편안한 대화를 이어갔다.


실내 세차를 마치신 할아버지가 사무실로 오시더니, 이제 그만 가자며 할머니를 부르신다. 두 분이 살아오신 인생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니 두 분에게 정이 간다.


다음에 또 오세요라고 인사하니, 할머니가 세차 잘해줘 고맙다고 내 손을 잡으신다. 손에 뭔가를 건네주시는 듯해서 손을 펴보니 두 번 접힌 만 원짜리 지폐이다.


"아니 안 주셔도 됩니다!"라고 여러 번 거절했지만 한사코 건네주신다.


할머니가 수고비로 주신 만원 지폐

세차장을 임시로 오픈한 지 약 열흘만에 처음으로 겪는 훈훈한 일이다. 어찌 보면 오백 원을 덜 쓰려는 손님과 더 쓰게 만들려는 주인 간의 관계가 존재하는 곳이 세차장이다.


오늘 할머니와 나눈 대화와 따뜻한 배려심이 너무나 감사하다. 할머니가 나에게 했듯이, 나 또한 손님들에게 작은 것이라도 베풀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세차장이 주변 이웃들에게 편안하고 인정이 느껴지는 곳이 되기를 희망하며 나의 연재 '와라 세차장'을 시작한다.


경북 경산시 정평역 셀프세차장 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