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사무실 누군가 침입하다
와라세차장 스토리 12
자주 오는 손님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퇴근을 준비하던 밤 10시쯤이었다. 세차장 사무실 건물을 같이 쓰고 있는 옆 카센터의 셧터 문이 드르륵하고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있다가 다시 덜그럭 덜그럭 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누구지?' 카센터 이사장은 예전에 일하던 곳의 동료들이 자신의 개업을 축하하러 온다고 며칠 전부터 들떠 있었다. 이사장은 오늘 저녁엔 아마 코가 삐뚤어지게 한잔하고 있을 텐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뒤지는 듯한 소리가 계속 들린다.
혹시 도둑이나 강도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과 나는 휴대용 손전등을 들고 카센터 입구로 가보았다. 셔터문이 반쯤 열려있었고, 카센터 안의 불은 꺼져있었다. 열린 셧터 문 사이로 조심스레 손전등을 비추었다. '딸칵 딸칵' 카센터 내부에 위치한 사무실의 문을 따는 듯한 소리가 갑자기 멈추었다.
누군가의 다리가 보였다. 뒤돌아 서 있던 다리가 우리 쪽을 향하더니 한 발 두발 걸어와 셔터 앞에 선다. 우선 도망가야 할지 112 신고를 먼저 해야 할지 겁나는 상황이다.
"안에.. 누.. 누구세요?" 대답이 없다.
안쪽에 있던 사람이 셧터 문 아래로 얼굴을 내민다. "휴우~~~" 카센터 사장의 부인이었다. "아니 이 시간에 여기서 뭐하세요?"라고 묻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한다. "혹시 우리 남편 여기 안 왔어요? 연락이 안 되네요!"
카센터 이사장은 구미에서 자동차 서비스 센터 팀장을 하다가 친구가 운영해 오던 세차장 안의 카센터를 지난달에 인수받았다. 이사장은 20년 넘게 대기업 서비스센터에서 일했으니 기술력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고, 영양 시골 출신이라 그런지 성실하고 부지런하다. 인사성도 밝아서 손님들에게도 친절하게 잘 대한다.
무엇 한 가지라도 나무랄 데가 없어 보이는 이사장에게도 한 가지 단점이 있다는 것을 그날 알게 되었다.
"우리 남편은요. 술을 정말 못해요. 맥주 한잔이 적정량이고.. 두 잔이면 뻗어서 자요!"
그날 이사장의 부인은 술 마시러 간 남편이 연락도 안되고, 혹시나 카센터 사무실에서 자고 있지는 않나 싶어서 찾으러 온 것이라 했다. 사무실 열쇠가 없어서, 나와 손님이 사다리를 놓고 사무실 위쪽 유리창 너머로 이리저리 안쪽을 살펴봤지만 이사장은 없었다. 이 시간에 다른 곳으로 찾으러 가기도 뭐하다. 걱정하는 부인을 설득해서 일단은 세차장 사무실에서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냥 가만히 있기도 어색하고 해서 맥주 몇 잔을 나눠마셨다. 한 삼십 분쯤 후에 이사장이 집이라며 부인에게 전화를 했다. 맥주 몇 잔의 술기운 때문인지 분노가 차올라서 인지 부인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듯 보였다. 이렇게 그냥 보내면 이사장은 아마 심한 고초를 치르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제수씨! 이왕 한잔 시작한 거, 우리도 쬐매만 더 먹고 갑시다"
이사장이 집에 들어갔다는 전화를 받고 나서도 부인은 속상한 마음이 덜 풀렸는지, 이런저런 얘기들을 꺼내 놓았다. 주로 이사장에게는 불리한 내용들인 것은 당연하다.
예를 들어, 지난해 부인이 코로나 주사를 맞던 날 낚시에 끌려갔다가 한밤중에 열나고 식은땀 나서 죽겠는데, 부인이 아픈 줄도 모르고 낚시에만 신경 쓰더라는 것과, 대기업 서비스 센터에서 일하는 동안 5년 연속 전국 최우수 정비 사원으로 뽑혀 일 년 치 연봉을 상금으로 받는 것과 3개월간의 고급 정비교육을 부산에서 받는 것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했을 때 교육을 선택했던 일이며, 손님이 새벽 두세 시에 전화 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무조건 달려 나가는 그 써비스 정신을 가족에게는 도통 발휘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등의 얘기를 들었다.
이런저런 속상한 말을 하는 동안 부인의 마음이 많이 진정되었고, 대리운전 불러 가는 길에 집까지 태워주었다. 다음날 아침에 이사장을 만났다. 덕분에 잘 넘어갔다는 인사를 하는 이사장에게 아주 불길하고 무시무시한 얘기를 해주었다. "이사장!! 내 말 잘 들어. 자네, 오늘부터는 다시 태어난 듯 살아야겠더구먼!" "형님,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내 보기에 자네 와이프, 갱년기 초기일 수도 있어! 앞으로는 와이프 말에 토 달지 말고. 무조건 예! 예! 하고. 알겠지? 마음 단단히 먹게!" 이사장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졌다.
며칠 뒤인 어제 아침부터 이사장은 초록색 중고 모닝을 수리하고 있었다. 오후에도 수리하고 있었다. 내가 무슨 수리를 하루 종일 하냐고! "돌팔이 아니야?"라고 놀렸다. ㅋㅋ 아니란다. 이 차는 자기 부인에게 선물로 줄 차라서.. 그동안 미안했던 마음을 담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점검 중이라 했다. 역시 마음먹으면 바로 행동하는 스타일의 착한 이사장이다.
카센터에서는 이사장이 차의 완벽 점검을 책임졌고, 세차장에서는 차를 깨끗하게 목욕시켜 주었고, 한 손님은 중고차가 새 차처럼 보이도록 윤기가 반들반들하게 닦아주었다. 이제 이사장이 부인을 위해 준비한 선물 전달 시간이 왔다. 마치 프러포즈하듯이 부인을 앞에 세워두고 차 열쇠를 전달하였다. 우리는 축하의 박수를 쳤다.
더 많은 축하객들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세차장에는 손님들이 없었다. 부인은 기쁜 표정을 잠시 짓더니만, 이내 걱정스러운 말을 한다. "이 모닝이 손님 차인 줄 알았는데... 그러면 오늘 우리 카센터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던 거네요!" 또, 걱정과 불안증이 올라온다. 역시 안사람 들은 생계에 대한 걱정이 많다. 위험경보가 울린다.
급한 나머지 내가 제안을 하나 했다. "여기 이 자리가 우리 세차장에서 손님들이 제일 많이 오가는 자리입니다. 여기 카센터 광고 떡~하고 하나 붙입시다!"
그렇게 해서 카센터와 세차장의 협업이 시작되었다.
"세차 손님 차 수리비 10% 할인!"
세차장 손님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곳에 붙여진 현수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