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면 그 꽃은 향기를 주지 않는다

와라세차장 스토리 11

by 로제타


따뜻한 봄볕이 세차장 마당으로 내려와 폭신한 온기를 전해준다. 회색 콘크리트 마당 위로 보일 듯 말듯한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보다가 졸린 듯 눈이 스르르 감겨온다. 편안한 오후의 정적을 깨며 작고 귀엽게 생긴 오토바이 한 대가 부릉부릉 하며 들어온다.

손님은 앳된 20대의 젊은 커플로 약 열흘 전쯤에 세차.. 아니 세오토바이를 하고 갔었다. 그때는 손님이 좀 밀려서 자세한 얘기는 나누지 못했는데, 오늘은 이들과 몇 마디 대화를 해봐야지 생각했다.

세차장으로 씻으러 오는 오토바이는 그리 많지 않기에, 세차장 주인의 관심도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들은 신혼부부이며 결혼한 지 4개월 되었다고 했다. 가까운 곳을 갈 때는 차를 두고 오토바이를 자주 이용한다고 했다.

“오늘은 오토바이 타기에 기막힌 날씨지요?”라고 물으니, “예, 맞아요!”라고 싹싹하게 대답한다. “이 오토바이는 뭐에요? 첨 보는 거 같은데..”

“아.. 이거 중국산이에요. 별로 비싼 건 아니고.. 그럭저럭 탈만해요~”


오늘은 오토바이를 타고 꽃가게 나들이를 다녀왔다고 했다. “무슨 꽃을 사 왔는지 볼래요?” 여자 손님이 조그만 어깨를 돌려서, 자신의 백팩 뒤로 삐죽이 고개 내밀고 있는 프리지어 꽃다발을 보여주었다. 노란 프리지어 향이 슬그머니 코를 스쳐간다. 남편이 사줬다는 자랑도 빼먹지 않았다. 조용히 오토바이를 닦던 남편이 슬며시 미소 짓는다.


따뜻한 봄날 오후에 잘 어울리는 사랑스런 커플이다. 프리지어 꽃은 거실에 꽂아 둘 거라 했다. 이미 둘의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을 그들의 행복한 신혼집은 프리지어 향이 보태져 더 달달하고 아늑한 보금자리가 될 것 같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흐뭇해지는 한쌍의 프리지어 커플이다. 그 젊은 향기가 싱그럽기 그지없다.

까만 커플 헬멧을 쓰고 떠나는 그들에게 사진 한컷 찍어도 되냐고 하니 “꽃 사진 잘 나오게 찍어주세요”라고 싹싹하게 대답한다.


꽃집 나들이 다녀 온 결혼 4개월차 신혼부부

늦은 시간, 세차장 마감을 하고 집으로 향하다가 낮에 왔었던 프리지어 커플이 떠올랐다. 그리고, 꽃집엘 들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맵에 꽃집이라 치고 찾기 버튼을 눌렀다. 범물 동에 대략 10여 개의 꽃집이 검색되었다. 내비게이션 안내를 따라 제일 가까운 곳을 찾아갔더니, 문이 닫혀있었다. 다음 가까운 곳은 500 미터.. 토요일 저녁 9시에 이 꽃집도 닫혀있다. 2-3군데 꽃집을 더 가봤지만 모두 허탕이었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찾는 꽃집 이건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보통 때면 그냥 포기했을 거다. 하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검색범위를 지산동으로 넓혔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앞 현관문을 여니,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집사람이 나를 반겨준다. “자, 여기!”하면서 프리지어 한 다발을 건넸다. “어머.. 웬 꽃이야?”라며 하이톤의 미소가 피어난다.

프리지어 꽃을 유리 화병에 옮겨 담느라 집사람이 싱크대 쪽으로 뒤돌아 서있다. 식구들의 식사를 준비할 때 늘 보이던 모습이다. 오늘은 그 뒷모습 너머로 프리지어 향이 슬며시 넘어온다. 예전에 내가 프리지어 꽃을 좋아해서 집사람은 자주 꽃을 사 와서 거실을 노란 향으로 채워주곤 했다. 지난해 봄에도 그랬던 것 같다. 다행히 올해에는 내가 먼저 향기로운 봄 인사를 건넬 수 있게 되었다. 이게 다 오토바이 타고 온 커플 덕분이다. 오늘 밤, 젊은 신혼부부의 집에도, 우리 오래된 부부의 집에도, 프리지어 향기가 그득히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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