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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국 Nov 04. 2020

소신의 대가

생각보다 가혹하고 비싸다

 소신을 한 번 밝힌 적이 있다. 당시, 전문성이 필요한 부서에 선배라는 사람들은 전문성이 없었다. 모르는 부분을 발 벗고 나서서 가르쳐준다고 말해도 온 몸으로 거부했다. 선배가 후배에게 배우는 게 쪽팔렸던 모양이다. 결국 모든 일은 잘 아는 후배라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내게 떠넘겨져 왔다. 화가 났다. 저런 사람들이 회사를 10년 이상 다닌 선배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이대로 나 혼자 모든 일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감정은 피폐해지고 육체는 무기력해졌다. 조치를 취해야 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에게 솔직한 심경과 대응을 토로하는 것이었다.


 전문적인 업무를 하는 부서의 특성상 전문성이 없는 직원을 해당 부서에 배치하는 것은 회사를 위해서 좋을 게 없다는 것을 중간관리 간부에게 얘기했다. 적재적소에 특성과 능력을 살린 인원 배치가 회사를 위해 필요하며, 전문성 재고를 위한 재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피력했다. 이야기는 다행히 잘 통한 듯했다. 모든 것은 내 생각대로 잘 풀릴 거라 생각했고, 다시 혼신의 힘을 다해 일했다.


 그리고, 가장 열심히 일했던 시기가 가장 어리석었다는 것은 뒤늦게 깨달았다.






 쫓겨나듯이 부서이동을 당했다. 내가 그토록 혐오했던 책임감과 전문성이 없는 선배라는 사람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자리를 지켰다.


 주변 공기가 달라진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선배라는 이름의 보수적인 사람들은 내가 그들을 비판한 것에 대해 보이지 않는 칼날을 세웠다. 나와 같이 일해본적 없는 다른 부서의 선배와의 대화에서는 적대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네가 얼마나 잘났다는 건데?

 그 당시에 나를 대하던 선배라는 사람들은 모두 내게 저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꼬인 군번으로 보냈던 군 생활만큼 회사생활도 단단히 꼬였다. 가장 강력하게 체감할 수 있던 것은 인사와 포상에서의 불이익이었다. 중간관리 간부는 승진과 포상의 모든 추천에서 나를 배제했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꼈던 는 당연하게도 나를 결코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나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도리어 가끔 발생하는 업무적 실수를 빌미로 나를 엿 먹이게 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뻔뻔하게 나의 결혼식에 찾아와 축하한다고 말하던 그를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나의 결혼식이 그의 처신을 위한 장소로 이용당했다는 생각에 너무 치욕스럽고 분하다.


 해마다 그렇듯 올해도 직원 포상은 수여되었다. 객관적으로 열심히 근무한 직원에 대한 포상이 아닌, 추천하는 이의 취향이 반영된 돌려 먹기 식 포상이다. 그의 취향은 어김없이 올해에도 반영되었다. 어김없이 그의 취향에 나는 포함되지 않는다. 늘 그러하듯 무신경하게 올해의 포상 직원 얘기를 듣는데, 귀를 의심했다. 이내 피가 거꾸로 솟았다. 나를 제외한 내 주변 연차 직원들을 일괄적으로 포상하는 것은 분명 그가 내게 던지는 메시지였다.






 지금은 없어진, 그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회사에 대한 애사심과 일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소신을 한 번 부렸다. 소신의 대가는 생각보다 가혹하고 비쌌다. 지금도 나를 압박하고 있는 그가 먼저 퇴사하거나, 그의 압박에 의해 내가 퇴사하는 그 날까지 값을 치러야 할지 모른다.


 그에게 내 심경을 털어놓은 그 날 일은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그때, 그 상황에 놓인다 해도 나는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내가 진정 안타까운 것은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 조직이, 사리사욕을 채우는 한 개인의 오만한 일탈 때문에 붕괴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하고, 나는 오늘도 무거운 소신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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