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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국 Apr 16. 2020

사랑에 빠진 것도 죄가 됩니다

사랑, 그 고귀함에 대해

이 글에는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자는, 자신의 남편과 외도한 상간녀의 부모에게 상간녀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리기로 결심한다. 이윽고 남편과 그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여자는 모든 사실을 폭로하고 태연히 자리를 일어선다. 당혹감과 절망감에 가득 찬 여자의 남편은 황급히 그녀를 따라와 궤변을 늘어뜨린다.



이태오 : 지선우!!! 너, 꼭 이래야 했어? 여기까지 와서 이따위 난장판을 꼭 만들어야만 했냐고!

지선우 : 그래서 내가 몇 번씩이나 기회를 줬잖아, 사실대로 말하라고. 그때마다 도망친 게 누군데. 이제 와서 날 원망하는 거야.

이태오 : 너 원래 이렇게 저급한 여자였냐? 아수라장으로 뒤집고 나니까 속이 시원해? 다 망치고 나니까 분이 풀려!?

지선우 : 하아.. 이제부터 시작이지.. 우리 아직 할 일이 남았잖아.

이태오 : 여기서 뭘 더 한다고?!

지선우 : 이혼. 앞으로 준영이 얼굴 볼 생각하지 마.

이태오 : 내 아들이야!!

지선우 : 하.. 니가 감히 그런 말 할 주제가 돼? 딴 계집애랑 재미 볼 땐 자식 못 보고 살 각오 정도는 했어야지.

이태오 : 그래, 실수한 건 인정해.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하지만 가족까지 버릴 생각은 없었어.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지선우 : 뭐? 사랑??

이태오 : 다 정리됐다고! 니가 이런 짓만 벌이지 않았어도, 투자도 다경이도, 다 잘 넘어갈 수 있었다고!



후안무치한 남자의 개소리가 너무 강렬하게 다가와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아내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남자가 사과는커녕 자신이 정리할 수 있는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도리어 화를 내는 이 장면에서, 작가는 의도적으로 저급하고 보잘것없는 남자의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해 논리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맞지 않는 대사를 넣은 것으로 추측된다. 외도의 당사자가 '가족까지 버릴 생각은 없었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다.'라는 말을 내뱉는 장면은 역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남자의 말처럼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다.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람은 누구나 사랑할 수 있다. 원천적으로 사랑의 감정이 샘솟는 것을 그 누구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해서는 안 되는 사랑도 분명 있다. 우리는 그것을 이성으로 통제하고 제어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극의 상황처럼 가정이 있는 사람이 다른 이성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명백히 해서는 안 되는 사랑이다. 이것은 분명 죄가 맞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 홈페이지의 프로그램 정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부부. 이토록 숭고한 인연이 ‘사랑’이라는 약한 고리로부터 기인한다는 것. 곱씹을수록 간담 서늘하다. 사랑은 무한하지도 불변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부부의 연을 맺으며 우리는 약속했었다. 너만을 사랑하겠노라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채 각자의 인생을 살아온 두 사람이 단지 '사랑'이라는 이유로 서로에 대해 변치 않는 영원을 약속한다. 형체가 없는 추상적인 관념을 매개로 두 사람은 남은 인생을 서로 바라보고 의지하며 함께한다. 우리의 사랑이 위대하며 고귀한 이유다.


중학교 때 가정 과목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결혼은, 내가 결혼하는 상대만을 유일하게 사랑하겠다는 의미가 있다.' 20년도 지난 선생님의 가르침이 드라마의 대사를 통해 문득 다시 떠올랐다.


저토록 욕되고 수치스러운 대사를 통해 역설적으로 사랑의 고귀함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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