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영국 Apr 27. 2020

투기(投棄)와의 전쟁

정부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 나는 쓰레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지금 거주하고 있는 집으로 3년 전에 이사 왔다. 이 집은 교통이 편리해 출퇴근도 수월하고 시내 어디든 불편 없이 이동할 수 있다. 전통시장과 영화관, 문화체육센터도 가까워 주변 인프라도 만족스럽다. 나와 아내는 높은 거주만족도를 누리며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 일은 몇 주 전부터 일어났다. 어느 날 아내는 내게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주차장에 누군가 쓰레기를 버리고 갔어."


 평온했던 우리의 일상에 아주 작은 균열이 생겼다.






 아내의 말을 듣고 곧장 주차장으로 가보았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집은 다세대 주택이며, 1층은 필로티 구조의 주차장이다. 주차장 한쪽에는 주차장 관리를 위한 공용 쓰레기봉투가 놓여 있는데, 누군가 이 봉투 옆에 쓰레기를 버리고 간 것이다.


 버리고 간 쓰레기를 확인해보니, 반려동물의 배설물과 휴지를 담은 봉투였다. 주차장이라는 개방된 공간에 커다란 쓰레기봉투가 방치되듯 놓여 있다 보니 반려동물과 산책한 누군가가 슬그머니 버리고 간 모양이다.


 나와 아내는 쓰레기를 버리고 간 범인에게 두 가지 이유로 화가 났다.





 

 우선 범인은 우리의 생활공간인 주차장에 쓰레기를 허락 없이 내버렸다. 우리가 거주하는 집 근처에 누군가가 몰래 쓰레기를 버리는 것도 불쾌한 일일 텐데, 직접적으로 이용하는 주차장에 그것도 반려동물의 배설물을 버리고 갔다는 것에 화가 났다.


 우리 부부가 몹시 화가 난 이유는 범인의 태도였다. 범인은 쓰레기를 공용 쓰레기봉투 속이 아닌,  쓰레기봉투 옆에 버리고 간다. 범인이 만약 가져온 쓰레기를 공용 쓰레기봉투 속에 잘 넣었다면 기분은 조금 나쁘겠지만 크게 문제 삼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범인은 마치 우리 집의 입주자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늘 가져온 쓰레기를 무단으로 공용 쓰레기봉투 옆에 투기한다. 화가 난 아내가 쓰레기 무단 투기에 대한 경고문을 쓰레기봉투 옆 담벼락에 붙였지만, 범인은 조롱이라도 하듯 경고문 밑에 지금도 쓰레기를 버린다. 우리가 버려진 쓰레기를 본 것만 해도 벌써 10여 차례가 넘는다. 범인을 잡기 위해 건물 입구의 CCTV 설치 건의도 생각해봤다. 입주민 모두의 공감과 동의를 받기 어렵다는 생각에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결국, 우리 부부는 범인이 특정 시간대에 같은 물건을 버린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앞으로 며칠 동안 범인을 잡기 위해 순찰을 감행하기로 계획했다.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는 엄연히 경범죄 처벌법에 처벌 대상으로 명시되어 있다. 죄질은 가볍다고 할 수 있으나 우리 부부는 녀석을 범죄자로 생각하고 녀석에게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이다. 나도 반려동물을 좋아하기에 반려동물을 좋아하는 누군가를 미워해야 하는 점은 정말 안타깝다. 하지만 이 집이 우리에게 주는 만족감을 결코 깨뜨리고 싶지 않다.


 이번 일을 겪으며, 그동안 신경 쓰지 않았던 동네 풍경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일부 담벼락에 쓰레기 무단 투기에 대한 경고문이 붙어 있는 모습이다.






 이 글을 발행한 오늘도 범인은 쓰레기를 같은 자리에 버리고 갔다. 나는 이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에 빠진 것도 죄가 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