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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국 Sep 16. 2020

우리의 시간은 너의 시간이 되어간다

그해, 여름 손님

 아내가 임신했다. 아내는 임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어렵지 않게 발생하는 이벤트로 표현되기도 하고 심지어 하룻밤 불장난의 결과로 표현되기도 하는 임신이 우리에게는 생각보다 쉽게 일어나지 않아서 걱정을 많이 했었다. 누군가에게는 원치 않는 임신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바라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하늘이 짓궂게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 부부는 올해 상반기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심기일전하였다. 아내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함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 과정에서 알 수 없는 확신이 들기도 했다. 아내에게 미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런 나의 확신 때문에 임신을 확인시켜주기 위해 건네준 테스트기를 받았을 때 건조한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사실 마음속으로는 아빠 미소가 절로 났지만 지금 생각하면 서운함을 느꼈을 아내에게 역시나 미안하다.






 아내와 태명을 짓기 위해 많이 고민했다. 세상에는 너무 예쁜 태명이 많다. 사랑이, 하늘이, 까꿍이 등등. 우리 부부는 특별한 태명을 지어주고 싶었다. 며칠을 고민했다. 고민의 결과 아내는 조심스럽게 '올리버'라는 태명을 제안했다. 어떤 뜻인지 묻는 내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라 말했다. 아쉽게도 영화를 나는 아직 보지 못해서 어떤 인물인지 자세히 물었다. 아내는 수려한 외모와 자신감 넘치는 태도의 지적인 인물이라고 답했다. 잠시 고민하다 문득 영화의 원작 소설이 떠올랐다. 국내 번안 제목을 보고 우리는 마침내 아이의 태명을 '올리버'로 정했다.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원작 소설의 국내 번안 제목은 '그해, 여름 손님'이다.





 아내의 입덧은 갈수록 심해졌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종일 누워만 있었다. 기운이 없어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어했다. 생수에서 느껴지는 냄새가 싫다며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했다. 입덧 약의 처방전을 집 근처 병원에서 발급받았지만, 동네에는 입덧 약을 가지고 있는 약국이 없었고 결국 길에서 울었다는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분명 우리 부부가 원해서 가진 아이지만, 모든 고생은 아내 혼자 하고 있었다. 너무나 미안했다. 제대로 먹지고 마시지도 못하는 아내에게 죽을죄를 지은 것만 같았다. 내년에 중요한 일정을 앞둔 아내가 무엇하나 제대로 준비도 못 하고 가엽게 늘어진 모습을 볼 때면, 할 수 있다면 내 시간을 아내에게 모두 주고 싶었다.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우리의 올리버는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아내도 입덧 약을 복용하며 몸 상태를 회복했다. 다행스럽게 모든 걱정은 점차 줄고 조금씩 안정이 찾아왔다. 그렇게 오늘, 우리 부부는 3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이하였다.






 아내의 임신 이후 우리의 시간은 올리버의 시간이 되어간다. 이 작고 소중한 올해 여름 손님에게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의 부모님들이 우리에게 주셨던 사랑만큼, 아니 그보다 더 큰 사랑을 영원히 줄 것이다. 건강하고 지혜롭게 우리의 올리버가 커나갈 수 있도록 우리의 시간을 아낌없이 쏟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시간은 너의 시간이 될 것이다.




 우리의 올리버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게는 영원히 올리버보다 조금 더 소중한 나와 평생을 같이 해줄 아내에게 3주년의 결혼기념일을 맞아 내 인생의 남은 시간을 선물로 바치며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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