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집달린 풍선이 높은 하늘에 떠 보이는 이유는?
양해의 말씀: 오늘은 그림이 많습니다.
What is layout?
레이아웃이 뭐죠?
댄 핸슨 Dan Hanson이 자기 수업시간에 처음으로 했던 질문이었다. 아무도 대답을 안 하길래, 내가 이렇게 대답했다: Plan for the pictures? 그림 그리기 위한 계획 아닌가요? 아직도 시나리오의 신화에 갇혀있던 내가 할 수 있던 대답이었다. 그림그릴 내용은 글로 정해졌으니 그것을 어떻게 그림으로 그릴지 계획을 한다는 뜻이었다.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Thank you. Most people think that layout is just background. 고마워요. 대부분 사람들은 레이아웃하면 그저 배경이나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자기 어머니도 자기 아들이 디즈니에서 배경을 그리는 일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하셨다. 레이아웃은 단지 예쁘고 멋진 배경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레이아웃을 이렇게 정의하셨다:
Layout is communication.
레이아웃은 소통이에요.
왜 소통일까? 그림을 하나 보여주셨다. 3:4 비율의 네모 속 가운데 남자아이가 그려져 있었다. 이 아이가 높은 곳에 서 있다는 것을 글이 아니라 그림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세상에나! 배경을 바꾸면 되는 것이었다. 이것을 이해 못할 사람이 있을까? 배경을 바꾸니 내용도 달라졌다. 그림이 글을 담는 형식이 아니라 내용도 자유로이 바꿀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소통이었다. 배경이 이런 본질적인 소통의 힘이 있는 줄 몰랐다. 책상 앞에만 앉아서 글만 읽던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림의 힘을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사방팔방에서 볼 수 있는 이 흔한 동그라미도 힘이 있었다.
꼭지를 달고 줄을 그려 넣으면 풍선이 된다.
똑같은 풍선 뒤에 구름만 그려 넣으면 하늘에 높은 곳에 떠있는 풍선이 된다.
배경을 어둠게 하고 별만 그려 넣으면 풍선이 우주 공간에 떠있게 된다. 불가능이 가능하게 된다.
이런 그림의 원리로 다음이 가능했던 것이다. 글이 필요 없다. 이 그림 하나가 전 세계를 뒤집었었다.
내가 진심 놀랐던 것은 이것이 '언어'라는 것이다. 그림에도 언어가 있었다. 이것이 그림언어의 힘이었다. 똑같은 네모 안에 우주를 담을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글의 언어와는 전혀 다른 색깔을 가진 힘이었다.
나는 이렇게 시작된 댄 핸슨의 레이아웃 강의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댄 핸슨은 십 대 후반부터 디즈니에 입사하여 거의 27년간 평생을 보낸 디즈니 애니메이션 레이아웃작가이다. 아마도 디즈니사에 오명을 남긴 타란의 대모험 [Black Cauldron] 때부터 리들멀메이드 [Little Mermaid]를 기점으로 시작하는 디즈니의 황금기를 지나면서 [알라딘 Aladdin], [포카폰타스 Pocahontas], [헤라클레스 Hercules] and [뉴그루브 황제 The Emperor’s New Groove] 기획에 참여했고, 닐로와 스티치 [Nilo & Stitch] 이후 홈 온 더 래인지 [Home on the Range]까지 일하셨던 것으로 보인다.
댄의 전성기 작품은 특히 [포카폰타스 Pocaphontas]였다고 들었다. 댄는 진심 겸손하고 엄청나게 수줍은 분이셨다. 직접 자기 작품경력을 소개한 적이 없었다. 뒤에서 다른 사람에게 들은 것을 AI에게 확인한 것이다. 폰카포타스 작품 전체의 배경을 기획했고, 윌로우 할머니 캐릭터를 디자인했으며, 포카폰타스 OST인 '바람의 빛깔 Colors of the wind 영상기획을 주도하신 분이셨다.
댄은 디즈니가 3D로 넘어가는 과도기 때 디즈니를 나와서 칼아트로 들어오셨다고 한다. 댄의 강의는 그때 커리큘럼이 있는 몇 안 되는 강의였다. 뒤돌아 보니, 디즈니사에서 은퇴한 후 댄은 장기적으로 교육을 할 작정으로 가능한 자신의 경험을 학교라는 틀에 맞추어 재구성한 것 같다. 언젠가 댄에게 "너의 강의를 듣기 위해서라도 칼아트에 지원할 가치가 있다" It is worth applying to Calart just to take your lectures"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내가 졸업 이후 학과장이 되셨다고 한다.
이런 분의 강의를 들으면서 솔직히 글의 언어와 비교를 할 여력도 없었다. 시나리오와는 별도로 그림언어는 그림언어대로 탐구해 들어갔다. 이것이 내가 칼아트를 떠나지 못하고 4년을 다 보낸 이유였다.
디즈니가 대단했던 것은 이 디자인 언어를 애니메이션에 적용했다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여러 장의 그림을 차례로 하나씩 보여줘야 한다. 그 순서가 이야기를 전해야 하는 것이다. 디즈니도 처음에는 영화제작하듯이 시나리오로 시도해 보았다. 디즈니의 초기작 [윌리의 스팀보트 Will's Steamboat]에서는 글 먼저 쓰고, 그림 나중이었다.
그러다가 디즈니 초기작인 [돼지 삼 형제 Three Little Pig] 기획 때 처음으로 바뀌었다. 그림먼저, 글은 나중에! 애니메이션은 실사를 찍는 영화와는 달리 직접 그림을 그려야 한다. 장면과 장면 사이의 그림이 실사를 그대로 찍는 영화보다 자연스럽게 흐르기가 힘들다. 따라서 그림의 순서를 먼저 잡아놓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잘 아는 스토리보드의 탄생이다.
그 뒤로 첫 장편 극장영화였던 [백설공주와 7 난쟁이들 Snow White with 7 dwalves] 기획과정을 보면 대사는 그림을 보고 직접 창작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것이 월트 디즈니씨가 개발한 피칭 pitching이다.
대사는 그림 아래 따로 핀으로 찔러 놓는다. 왜냐하면 순서를 바꾸거나 고치기 쉽게 하기 위해서 이다.
1930년대에 디즈니사가 개발한 스토리보드 아트는 역으로 할리우드 영화기획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영화기획에 스토리보드로 프리 비주얼라이제이션 과정이 생긴 것이다. 사진촬영하기 전에 미리 그림으로 그려보는 것이다.
이것을 시도한 최초의 영화는 유명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1939)였다. 그 이후로 역대 할리우드 흥행작들은 거의 전부 스토리보드를 사용하여 기획을 했다. [스타워즈 Star Wars]도 그 한 예이다.
스토리보드는 스토리기획뿐만 아니라 배경이나 소품제작에도 활용되었다. 다음 사진의 벽에 붙어있는 것이 [스타워즈]의 스토리보드이고, 이것을 기준으로 소품제작을 하고 있다.
이 전통은 [반지의 제왕 Lord of the Rings] 영화를 제직 한 감독 피터 잭슨 Peter Jackson에게도 전승되었고, 대부분의 3D 애니메이션 제작에도 적용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그림언어로 스토리보드를 하여 프리 비주얼라이제이션을 언제부터 하기 시작했는가? 제대로 한 것은 봉준호 감독 때부터였다고 본다. 이 전에는 대학에서 가르치기도 힘들었다. 선이해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봉준호 감독은 이것을 알기 전부터 시나리오 자체를 그림 그리듯이 썼다. 그의 초기작 [지리멸렬]을 보면,
다음으로, [마더]를 보면, 그림과 글이 함께 등장을 한다
그러다가 2013년 CJ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포럼에서 했던 한국의 봉준호 감독은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CEO인 카젠버그 씨가 대담을 했다. 여기서 카젠버그 씨에게 봉준호 감독은 이런 질문을 한다: 어떻게 스토리 부서를 운영하시길래 매번 성공을 할 수 있나요? 이때 카젠버그 씨는 디즈니의 스토리보드로 하는 프리 비주얼라이제이션 전 과정이 소개하였다.
직접 제작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애니메이션 전체를 스케치한 그림으로 스토리보딩한 것을 가편집하여 보는 것이다. 글로치면 초고이다. 이때 전체적으로 보면서 수정할 것을 수정할 수 있다. 만약 5년 제작과정이었다면 2,3년은 프리비즈에 할애한다고 한다. 이것이 그림으로 스토리를 효과적으로 이끌어내는 과정이다. 결과적으로 시간과 비용과 노력이 훨씬 절약된다.
내 생각에는 봉준화 감독만큼 이것을 제대로 다 받아들인 사람은 없다고 본다. 그 결과가 [기생충]이 아닐까! [기생충]은 거의 그림 일색으로 프리 비즈를 했다.
나는 디즈니의 시각적 성취에 대단히 감명을 받았다. 디즈니의 제국주의적 태도나 문화적 배타주의나 상업주의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디즈니의 스토리보드 아트 개발은 영상언어를 한 단계 위로 올려놓았다고 본다. 이것을 배워 온 것을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이것은 단지 시각언어를 배웠다는 것 이상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나, 이 시각언어 뒤에는 서양문화의 근간에 이르는 뿌리가 깊이 배어있었다.
하나, 이 시각언어는 영어와 직결되어 있었다.
영어로 한발 넓어진 지평이었다. 이것이 위에서 내려다본 것이라고 하자. 시각언어는 영어의 지평을 입체적으로 아래로 내려가면서 저변을 확장시켜 주었다고 본다. 이런 시각적 전통이 영어와 직접 접목되면서 디지털 시대가 미국에서 활짝 열린 것은 역사적 수순일 수도 있다. 이것은 동양에는 없는, 특히 한국에는 없는 문화이기도 하다.
p.s. 그림언어에 관심이 있으시면, 다음을 참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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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