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먼저 보이나? Pat or Cat?
칼아트에서 디즈니의 그림언어를 발견했다. 그런데 이것은 내 시나리오 신화를 완전히 깨지는 못했다. 아직 그림언어에 대한 이해가 성숙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아직 과정 중에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엉뚱하게도 그림언어는 영어와 접목되었다.
그때 전 세계는 피터잭슨 Peter Jackson의 영화 [반지의 제왕 Lord of the Rings] 열풍을 맞고 있었다. 논문을 끝내고 하와이 정글 속에서 나와보니 어딜 가도 반지의 제왕 바람이 불었다. 이미 두 번째 [두 개의 탑 Two Towers]이 완성되어 나와 있었다. 극장에서 이것을 보았을 때 와우! 이건 미국식 영웅신화는 아니었다. 주인공인 호빗 프로도는 이리저리 흔들리는 '조그맣고 평범한 나'였다. 나는 '내용'에 철저히 낚였다. 그 뒤로 약 5년을 한국어로 '중간계'로 번역된 Middle Earth'를 헤매고 다녔다.
제일 먼저 한 것은 세 권의 책을 읽은 것이다. 이미 나온 일편도 안 보고, 아직 안 나온 삼편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런데 나를 사로잡은 것은 '내용'만큼이나 '글의 스타일'이었다. 예를 들어 [반지원정대 Fellowship of the Rings] 7장 톰밤바딜의 집에서 In the House of Tom Bambadil, 네 명의 호빗이 브리 Bree로 가는 도중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드디어 세상을 등지고 사는 톰 밤바딜의 집에 우연히 도착한다. (영화에는 없는 장면) 여기서 톰과 함께 사는 골든베리 요정 Fair Lady Goldenberry를 처음 보는데, 톨킨이 묘사한 요정을 잠시 보면,
Her young yellow hair rippled down her shoulders; her gown was green, green as young reeds, shot with silver like beads of dew; and her belt was of gold, shaped like a chain of flag-liles set with the pale-blue eyes of forget-me-nots. About her feet in wide vessels of green and brown earthenware, white water-liles were floating, so that she seemed to be enthroned in the midst of a pool.
그녀의 싱그런 노란 머리카락은 물결치듯 어깨 위에 흘러내려 있고, 그녀가 입고 있던 긴 가운은 초록, 그것도 싱싱한 갈대의 초록색이었는데, 이슬을 머금은 은색 같은 구슬이 흩어져 박혀있었고, 금벨트는 물망초의 빛바랜 푸른색 눈이 박힌 깃대를 사슬처럼 엮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초록과 흙색 도자기의 넓은 대야에 담겨있는 그녀의 발 주위에는 흰 물수련이 떠다니고 있어서 연못 가운데 왕좌에 앉아있는 것 같아 보였다.
이 얼마나 놀랍도고 구체적인 묘사인가! 책에서 골든베리요정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다. 이건 내가 읽은 동양의 신화와는 전혀 결이 달랐다. 이런 대단한 글을 쓸 수 있던 작가의 배경이 너무나도 궁금해졌다.
톨킨의 자서전을 읽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영문학과 언어학분야 학자였다. 평생 옥스퍼드 대학에서 고대와 중세영문학을 연구하였다. 톨킨의 작품들은 모두 자신이 연구한 고대와 중세영문학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반지의 제왕]은 물론 이 작품 이전에 나온 [호빗]이나 [시마릴리온]은 물론 [leaf by Niggle]이나 [Fmarmer Giles of Ham] 같은 잘 알려지지 않은 소품도 역시 같은 영향을 받아 쓴 것들이었다. 그러나 가장 관심을 끈 작품들은 고대영어의 작품을 현대인이 읽을 수 있도록 판독해 놓은 작품들이었다.
The Homecoming of beorhtnoth
(beorhtnoth 왕의 귀환)
Sir Gawain and the Green Knight
(가윈경과 녹색기사)
Pearl (진주)
이 작품들 역시 영화를 보는 듯하다. [The Homecoming of beorhtnoth (beorhtnoth 왕의 귀환)]은 두 명의 충성스러운 신하가 전쟁이 끝난 전장에 들어가 왕의 시신을 찾아오는 숨 막히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Sir Gawain and the Green Knight 가윈경과 초록기사]는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인 가원 경이 녹색기사의 도전에 응하여 '목베기'를 담보로 일 년 동안 자신의 용기와 명예를 시험받으며 모험을 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Pearl 진주]는 아이가 죽어 슬픈 어머니의 애닮은 심정을 테이블에서 굴러 떨어진 진주를 찾아온 숲 속을 헤매는 장면으로 그리고 있다.
여기에는 톨킨 작품에 사용된 모티브들이 많이 보인다. [beorhtnoth 왕의 귀환]에는 프로도에 대한 쌤의 충성심의 원조가, [가윈경과 녹색기사]에는 반지의 유혹에 시험을 당하며 모돌로 가는 프로도의 원형이, [진주]에 나오는 어머니의 애닮픈 my precious는 반지를 찾아 헤매는 골롬에게 그대로 사용되고 있었다.
톨킨의 작품은 나에게 고대와 중세영문학의 세계를 활짝 열어주었다. [베어울프 Beowolf] 신화나 그 유명한 제프리 쵸서 Geoffry Chaucer의 [캔터베리 이야기 The Canterberry Tales]도 이때 알았다. [캔터베리 이야기] 도입부를 보면, 카메라를 들고 같이 따라 들어가는 것 같다.
When April with its sweet showers has pierced March's drought to the root, bathing every vein in such liquid by whose virtue the flower is engendered, and when Zephyrus with his sweet breath has also enlivened the tender plants in every wood and field, and the young sun is halfway through Aries, and small birds that sleep all night with an open eye make melodies (their hearts so goaded by Nature), then people long to go on pilgrimages, and palmers seek faraway shores and distant saints known in sundry lands, and especially they wend their way to Canterbury from every shire of England to seek the holy blessed martyr, who helped them when they were ill.
4월의 감미로운 소나기가 3월의 가뭄을 뿌리까지 꽤뚫고 들어가 모든 입맥을 적셔주어 그 물 덕에 꽃들이 피어날 때면, 또한 서풍이 향기로운 입김을 숲과 들녘에 있는 어린 나무에 불어넣을 때면, 아직 어린 태양이 백양궁자리길 절반 가량 왔을 때면, 밤새 뜬 눈으로 잠을 잔 작은 새들이 (본능으로 설렌 마음으로) 노래를 부를 때, 이 때가 되면 사람들은 순례를 떠나고 싶어한다. 순례자들은 이국의 해안길로 이곳저곳에 알려졌으나 멀리있는 성인을 찾아간다. 영국의 모든 지역에서 특히 캔터버리까지 각자 자기길을 떠난다. 자기들이 아팟을 때 도와준 그 성스럽고 축복받은 순교자를 찾아서.
이런 과정을 통해 나는 영국문학의 핵심에는 시각적 글로 쓰인 환타지 전통이 두껍고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전통은 현대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톨킨작품에 영향을 미친 유일한 현대 환타지 작가가 있었다. 우리에게 문향작가로 잘 알려진 윌리암 모리스 William Morris이였다. 윌리암 모리스는 자기가 고안한 알파벳 폰트로 직접 세 권의 책을 써서 출판하기도 했다. 그중 한 권인 [세상 저편의 숲 The Wood Beyond the World]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진짜 이 세상을 떠나 다른 세상에 들어갔다 온 묘한 기분이 든다. 이것 역시 톨킨의 작품에 고스란히 옮겨져 왔다.
환타지 전통은 영국의 어린이 책에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환타지 세상의 주요 캐릭터인 요정, 작은 악마들, 마녀, 마법사등 비현실적 존재에 관한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담은 책은 수도 없이 많았다. 이런 환타지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토니 디텔리지와 홀리 블랙 Tony DiTerlizzi & Holly Black의 [스파이더 위크가의 비밀 The Spiderwick], 씨 에스 루이스 C. S. Lewis의 [나니아 연대기 The Chronicles of Narnia], 제이 케이 롤링 J. K. Rolling의 [해리 포터 Harry Potter] 그리고 죠지 마틴 George R.R. Martin의 [왕좌의 게임 Game of Thrones]등등이다.
칼아트에 입학하고부터 영어동화책을 읽고 있었다. 레벨 제로부터 차근차근 읽어 올라가고 있었다. 미국 어딜 가도 있는 반즈 앤 노블스 Barbs & Nobles 서점에 가서 열심히 읽었다. 달리잔 관객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처음으로 닥터 수스 Dr. Suess의 명작들을 접했다. 닥터 수스의 책들은 진심 기발했다. 골백번을 반복해서 읽어도 지루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었다. 영어원어민 아이들은 닥터수스 아니면 지루할 뻔했던 영어의 발음과 철자, 그리고 헛갈리는 문법적 사항들을 저도 모르게 습득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닥터수스의 [Cat in the Hat]가 나달나달 해 질 때까지 2~3년을 끼고 다니면서 읽는 것도 보았다. 이 책의 어떤 점이 이렇게 만들었을까? 궁금해서 나도 열심히 들여다보고 분석을 시도했다.
그림이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내용을 그림으로 그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단어의 순서에 따라서 그려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단어가 나열된 순서가 이미 눈으로 본 대로 나열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림으로 전환되기 쉬웠던 것이다. 예를 들어,
이 그림을 그냥 보이는 순서대로 위에서 아래로 묘사하면 된다.
house on mouse (왼쪽)
mouse on house (오른쪽)
한국어로는 이렇게 안된다. 단어를 놓는 순서가 다르다. 반대가 된다.
house on mouse (왼쪽)
생쥐 꼭대기 집 (왼쪽)
mouse on house (오른쪽)
집 꼭대기 생쥐 (오른쪽)
따라서 한국말로 독해했다가 영어로 옮기려면 머리는 더 아프다. 영어는 이미 '본 대로 기술'한 것이기 때문에 본 대로 위에서 아래로 순서대로 묘사하면 된다.
문장도 마찬가지다. 다음 그림을 보자. 무엇이 먼저 보이나? Pat (노란 캐릭터) or Cat?
뭐가 먼저 보여도 상관은 없다. 영어에서는 Pat이 먼저 보였다면 Pat부터 다 묘사한 뒤에 Cat으로 간다.
Pat sat / on Cat.
Cat이 먼저 보였다면 Cat부터 다 묘사하고 Pat으로 간다.
Cat is squashed/ under Pat.
영어문장은 대상이 눈에 보이는 대로 하나씩 묘사한 순서이다. 영문은 어떤 문장이든 주어-동사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어동사목적어 SVO 형 언어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영어는 상당히 시각적인 언어이다. 영국의 환타지 문학들은 영어에 담겨있는 문화적인 감성은 물론이거니와 언어체계가 형성되는 과정에도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였다. 영어에 대한 시각적 이해는 애니메이션 창작은 물론이거니와 영어 이해에 큰 전환이 되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영어 어린이 동화책이나 화타니 소설등을 먼저 읽고 난 뒤 논문을 썼다면 결과물은 아주 달랐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 만약 논문을 다시 쓴다면 훨씬 깊이있게 내용을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진심 영어는 끝이 없는 길인 것같다.
이 글의 저작권은 콘텐츠아트 진에게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