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상예술가들의 영어에 대한 결정적인 오해
디자인 수업시간에 가뭄에 콩 나는 듯한 일이 있었다. 디자인 강사가 번역을 부탁한 것이다. 그것도 문장도 아니고 단어 하나를!
Could you tell her what 'conservative' means in Korean?
이 친구에게 'conservative'를 한국말로 해줄래?
'보수적인'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자기 그림에 대한 강사의 피트백을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어~~~~ 허~~~~' 하면서 자기 자리로 갔다. 강사가 수업시간 중에 학생들 다 있는 앞에서 이런 부탁을 하다니 무진장 답답했던 모양이었다. 이런 일은 단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 칼아트 캐릭터 애니메이션과에 입학한 한국학생들은 약 20%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상당한 숫자이다. 그 가운데 영어를 준비하고 온 학생은 4분의 일 정도 된다.
뉴욕에 있었을 때 유명 예술학교에 다니는 한국학생 영어실력에 관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예술학교에도 한국학생이 많았다고 한다. 한 클래스에 4~5명이나 되었다고. 그 가운데 한 명정도 영어를 좀 알아들을 줄 알고 나머지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고. 만약 이 한 명이 숙제를 잘못 알아들으면 나머지도 모두 숙제를 잘못해 간다는 것이다. 웃픈 해프닝이었다. 약 십 년 뒤에 이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칼아트에 와서 직접 확인했다.
국내 예술교육방침의 결과가 드러나는 일이었다. 내가 십 대 때만 해도 예술대학을 가는 학생들은 모두 '날라리'라고 했다. 나도 이런 사회적 편견을 가진 부모님들의 반대에 부딪쳐 미대를 가지 못했다. 88 올림픽 이후로 대중예술의 경제적 가치가 드러난 이후 좀 괜찮아졌다. 그러나 예술교육 방침을 바꾸지는 못했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던 것 같다. 고등예체능은 수업시간에 널부러 자도 상관이 없다는 짤이 아직도 돌아다니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예술하는 애들은 공부 안 해도 된다는 혹은 못해도 된다는 관념이 지배적이다.
홍익대학교 미대에서 과감하게 미대입힉 정책을 바꾸었다고 했다. 실기를 포기하고 수능점수로 입학생을 받는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실기를 포기까지 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과한 정책이 아닐까 했지만 한국의 상황을 보면, 이해가 갈만도 했다. 하지만 이런 과감한 입시정책도, 특히 대중과 밀접한, 다시 말하면, 국내 시선으로 보듯, 돈과 관계가 깊은, 영상예술인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지는 못하는 것같다.
한 번은 아주 당황스러운 일이 있었다. 미국중학교에 막 진학한 한인 남학생이 있었다. 이 학생은 한국에서 수영선수로 활동했던 터라 덩치가 평균치보다 훨씬 컸다. 또래 친구들에게 위화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한 학년 높은 반에 배정이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영어도 제대로 준비가 안 돼서 힘이 든데 배우는 내용까지 수준이 높아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이의 편치 못한 표정과 태도가 학교 측에서 걱정이 될 만큼 험악했던 것 같다. 교장, 교감, 심리교사, 담임, 통역사를 대동하여 부모와 학생에게 미팅을 요청했다. 여기에 내가 부모학생 측 통역자로 알바를 갔었다.
미국학교 측이 빌미로 잡은 것은 국내성적이었다. 성적이 참 안 좋았다. 모두 CD였다. 이것만으로도 의심을 살 여지가 컸다. 국내에서 혹시 폭력배가 아니었을까? 이런 문제가 있어서 미국으로 도피한 것이 아닐까?
학생어머니는 수영선수였기 때문에 성적이 안 좋다고 설득을 했다. 그것을 그대로 통역해 주었다. 하지만 학교 측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다. 미국에서는 B학점을 유지해야 선수생활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미국 초중고대학생들에게 다 적용되는 교육방침이다. 경기가 많아서 수업을 많이 빠져야 하는 대학생 선수의 경우도 학교차원에서 보강을 해주면서 학점을 유지하도록 한다. 따라서 미국교육자들이 한국의 예체능학생들에 대한 교육방침을 납득하기란 만무했다. 더 의심을 사기만 했다. 나도 난감하였다.
왜 한국의 예체능 학생은 공부를 안 해도 되는지? 설명을 전혀 할 수 없던 것은 아니다. "전통적으로 한국사회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서 4개로 위계질서를 세운 사회이다. 맨 위에 글을 하는 문관이 있고, 그 밑에는 칼을 쓰는 무관이 있었고, 그 밑에는 돈을 다루는 상인이 있었고, 맨 밑에 기술이 있는 천인들이 있었다. 예체능은 바로 마지막 기술직에 속했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그림을 기술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화가처럼 창작하는 사람을 쟁이라고 천시하였다. 그 잔재가 여전히 남아서 예체능계 학생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이다."
이렇게 설명을 해 주었다면, 미국교육자들은 어떻게 반응을 했을까? 엄청 놀라지 않을까? 예술이란 분야 속에 능력에 따라 창작자부터 장인까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어떻게 글과 그림 자체에 위계를 정할 수 있을까? 좁은 땅에 인구가 많아서였을까? 사람의 능력을 구분하는 방법이 고작 이것이라니. 더욱이 조선이 망한 지 128년이나 지났는데도 여태 교육현장에 구식마인드 셋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날 텐데. 더 창피하지 않았을까? 물론 이런 설명은 하지 않았다.
칼아트까지 다니면서 받은 피드백이 고작 영어단어 한마디였다면 아까운 것이 너무 많았다. 칼아트 입학까지 들였던 기나긴 노력과 시간 그리고 비용을 생각해 보라! 학비는 어떠한가? 특히 칼아트는 도제식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혼자 작업을 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사부를 찾아가 개인적인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자기 작품을 놓고 긴밀하고 심도 있는 소통이 가능해야 한다. 그림만 가지고는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겨우겨우 어찌어찌해서 할 수는 있겠으나 놓치는 것이 태반이다.
영어문제가 작품에 반영되는 것도 보았다. 어떤 한국친구가 "늑대와 빨간 망토 소녀"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애니작품을 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빨간 망토 소녀 캐릭터 설정이 기이했다. 이 소녀를 벙어리로 만든 것이다. 왜 그랬을까?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특징은 말을 할 때 발음에 따라 생기는 입모양을 모두 애니메이팅을 하는 것이다. 이것을 립싱크 애니메이션이라고 한다. 이것을 하려면 영어발음을 알아야 한다. 기본 이상을 알아야 한다. 자신이 실제 발음을 해보면서 해야 하는 섬세한 애니메이팅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배우지 못해서였을까? 복도에 앉아서 나에게 작품을 보여주며 설명을 해주는 이 학생이 안쓰럽고 외롭게 느껴졌다. 그냥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칼아트 캐릭터과에서는 해마다 학기말이면 일 년 동안 해 온 학생들의 작품을 전부 모아 공개적으로 보는 오픈쇼 Open Show가 있다. 여기서 선택된 작품들은 로스앤젤레스 모션픽쳐 아카데미 박물관 the Academy Museum of Motion Pictures 에 있는 데이비스 게펜극장 the David Geffen Theater에서 다시 한번 프로듀서 쇼 The Producers' Show를 한다. 이 쇼에는 미국 각지에 있는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사람들이 참석한다. 가끔씩 이 회사사람들의 눈에 드는 학생들은 회사 CEO들의 저녁식사에 초대되기도 한다. 일종의 미리 면담 같은 것이다. 한국학생들도 한 둘 초대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저것 질문을 한다는데 영어문제로 한마디도 못하고 오곤 했다. 절호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아까비!
설사 애니메이션 회사에 입사가 되었다고 해도 장기적으로 볼 때 역시 제한적이다. 미국 애니메이션 회사의 고용방식은 작품을 할 때마다 분야별로 단기적으로 한다. 특히 제작은 그러한다. 예를 들어 픽사 A작품 몇 번 장면 3D 애니메이팅 (리깅)을 끝낼 때까지만 단기 고용되는 것이다. 사실 메뚜기다. 한 회사에 장기적으로 채용되는 구조가 아니다. 같이 일을 했던 감독이 재고용을 해주면 한 회사에 오래 일을 할 수는 있다. 제작의 경우 할 일이 정해져 있고, 약간의 영어로도 근근이 작업을 해 갈 수는 있다. 능력이 있으면 약 10년까지도 이런 식으로 가능하다. 영어도 좀 늘기는 한다.
하지만 기획팀에 들어가기란 만무하다. 만약에 영어실력을 제대로 갖추었다면 입사 이후 10년을 지내면서 배울 수 있는 영어를 생각해 보자. 그것도 미국문화의 심장에 있는 애니회사에서 배울 수 있는 영어이다. 굉장한 효과가 있을 것이다. '있을 것이다'가 아니라 당연히 '있다'. 있고도 남는다. 그런데 영어를 제대로 준비해 가지 않아서 천만 불짜리 기회를 다 놓치는 것이다. 아까비 아까비!
가끔씩 미국의 유명 애니회사에서 10년 정도 일한 경험이 있는 한국 애니아티스트들이 이런 말을 한다. "미국문화를 몰라서 영어를 못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생각이다. 반대로 생각해야 한다. "영어를 안 해서 미국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영어를 하면 미국문화를 서서히 이해할 수 있는 기회와 길이 생긴다.
아주 잠깐만 생각해 보면 될 일이다. 애니메이션은 전적으로 미국에서 개발된 문화유산이다. 처음으로 애니메이션이 대중예술의 한 분야로 자리 잡은 것도 1940년대 미국이었다. 물론 그 씨앗은 유럽국가 프랑스에서 뿌려졌다. 그것도 카메라가 발명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카메라의 발명은 그전에 필름이 발명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그전에 아랍인 과학자가 소위 카메라 옵스큐어 Camera Obscure라는 카메라의 원리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이 '원근법 기기 Perspective device'까지 개발해 가면서 실사를 평면에 담으려고 했던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더 큰 맥락에서 보면, 고대부터 실사를 평면에 구현해 보려는 서양 예술가들의 지칠 줄 모르는 미메시스 mimesis 정신 때문이기도 하다. 이 정신이 실사를 직접 그려서 동영상으로 옮길 수 있다는 애니메이션 문화를 창조해 냈다. 참 대단한 일이다. 이렇게 애니메이션의 문화적 뿌리가 서양을 거쳐 영어권에 와서 정착이 되었다. 그런데 영어를 안 하고 애니메이션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될까?
영어도 이런 시각전통이 진한 서양문화가 배어있는 언어이다. 영어로 애니메이션을 하면, 한국어를 거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직관적으로 할 수 있다. 10년동안 애니회사에서 일하면서 영어를 경험한다면 문화에 대한 공감력이 깊어질 것은 당연하다. 회사 자체 내에서 견제하지 않는 한 회사의 기획자로 남게 될 가능성도 커진다.
이것은 한국 애니메이션 계에 큰 공헌을 할 계기가 된다. 왜냐하면 현재 한국 애니계의 모든 분야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바로 기획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글을 기반으로 한 제작위주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물론 봉준호 감독은 제외!)
오늘 쓰는 글이 오해를 받을까 걱정이 된다. 한국인들의 영어를 언급하는 것은 곧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것같이 예민한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글은 단순히 비판을 위한 비판도 아니고 비난은 더더욱이 아니다. 여기서 언급했던 한국인 학생들은 실력들이 출중한 한 예술인들이기 때문이다. 영상예술인들이 특히 영어에 문제가 생기면 장기적으로 자신의 창작경력에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반대로 영어를 제대로 하면 속도도 빨라지고 더 자유롭게 창작을 할 수 있다.
현재 영상예술로 유학이나 취업을 가는 인구가 늘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국내 애니계의 산업 내 구조적 취약점은 물론 예술인들에 대한 취급에 공평치 않고 심지어 비인간적인 점이 많기 때문이다. 이것을 피해서 가는 것은 백분 이해가 간다. 내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사실 밖으로 나가라는 권유를 많이 했다.
그러나 이때 영어를 하기 싫어서 대충 하게 되면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자기 스스로 유학자가 천시했던 '쟁이'의 수준에 머무르게 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 따라서 영상예술로 유학이나 취업을 생각한다면, 영어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한번 즈음은 생각해 봐야 할 때라고 조심스레 잔소리를 해 본다. 자존은 스스로 찾는 것이다.
배워서 절대 남주지 않습니다! 선생의 마음이었습니다. ^^
*요새 제 삶에 주요한 변화가 진행 중이라서 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자꾸 뺏기네요. 이 글도 겨우 썼습니다. 매주 딱딱 올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양해 바랍니다.
이 글의 저작권은 콘텐츠아트 진에게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