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자아가 문득 거기 서 있었다
모닝사이드 하이츠 Morningside Heights는 맨하튼 북쪽, 콜롬비아 대학 근처에서 센트널 공원과 할렘 들어가기 전에 걸쳐있는 거주지역이다. 이곳은 조용하고, 깨끗하고, 평화롭고, 검소해서 살기 좋은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콜롬비아 대학 근처 브로드웨이와 암스텔담 가 사이에는 대학에 근무하는 교수나 객원교수, 교직원 혹은 학생들이 주로 산다. 이곳에 한 친구가 운좋게도 여름방학동안 서블렛 sublet을 구했다.
서블렛이란 집을 빌려 사는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sub) 집을 빌려주는(let) 것을 말한다. 주로 단기로 한다. 특히 3개월 이상 긴 여름방학에는 서블렛을 많이 한다. 미국은 땅이 넓으니까 방학동안 다른 주에 있는 본가에 가 있을 수도 있고, 여행같은 긴 휴가를 다녀올 수도 있기때문이다. 서블렛 임대인은 세블렛으로 휴가비를 마련하기도 한다. 또한 세블렛 임차인은 세블렛 주인이 사용하던 침대, 옷장, 부엌을 다 사용해도 된다. 인권의식이 탄탄한 개인주의라서 가능한 부동산 제도이다. 남의 소유물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수준이 높아서 남용될 걱정도 없고, 인맥을 이용하여 상대를 제어하는 일이 크게 없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기면 이 정도는 해결해 줄만한 법도 국민과 가까이 있어서 다행이다.
나도 여름방학동안 친구네 서블렛에 많이 가있었다. 창문없는 창문이 달려있는 답답한 기숙사보다 훨씬 기분이 좋았다. 거기까지 걸어가는 맨하튼의 길도 걷기에 딱 좋았다. 브로드웨이에서 암스텔담 거리까지 이어진 평평한 가로블록에는 젊은 가로수 나무가 죽 늘어져 있있다. 나무 사이로 태양이 들어와서 햇빛이 적당했고 덜 뜨거웠다. 친구가 외출을 할 때면 내가 가 있어주기도 했다. 가끔씩 제프(가명)와 영어수업?도 거기서 했다.
그러다가 그곳이 나에게는 의미있는 곳이 되었다. 거기서 내 영어 귀가 터졌다. 늦은 오후에도 아침햇살같이 은은한 햇살이 들어오던 그 공간이 쪼개지고 영어가 쏟아져 나왔다. 제프가 던져주고 간 네 개의 웃긴 에피소드가 들리면서 혼자 박장대소를 했다. 마루바닥을 걸레로 훔치다가 뜬금없이 원했던 일이 이루어져 매우 흥분했던 순간이었다. 이제 귀 뚫렸으니 살았다. 유학의 꿈이 이루어질 수도 있겠구나! 이런 희망찬 생각이 들어야 하는데 순간 다른 것이 느껴졌다.
그날 귀 뚫린 체험 뒤따라서 또 다른 체험이 있었다. 이 체험이 더 강했다. 순전히 나의 내적인 체험이었다. 이 체험을 하는 순간 내가 어떻게 보였는지 나도 모른다.
거대한 힘 같은 것이 내 안으로 몰려들어왔다. 그 힘은 어디론가 다른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냥 날아갔다기보다는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십 년즈음 뒤에 [해리포터]에서 공간이동이란 것을 읽었을 때 손바닥을 쳤다. 그날의 그 체험과 너무 흡사했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해리포터의 마술사와 마녀의 공간이동은 짧은 순간 좁은 공간에 끼어서 어딘지 불편한 상태로 다른 장소에 내던져지듯 이동하지만, 나는 노란색과 금색의 반짝이는 수많은 작은 입자들이 우아한 곡선의 길을 낸 아름답고 황홀한 통로로 미끄러지듯 빨려들어가는 듯했다. 뭔가에 단단히 홀린 기분인데 기분은 너무 좋았다.
내가 도착한 곳은 하얀 공간이었다. 벽이 없었다. 오른쪽 왼쪽 머리 위 어느 쪽에도 벽이 없었다. 하얀 공간이 넓게 높게 끝도 없이 펼쳐진 공간이었다. 바닥은 있었다. 바닥을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한없는 공간감이 드는 공간 한가운데 분명히 두발을 딛고 서있는 나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랬다. 거기에 아주 새로운 내가 서 있었다. 나의 외모를 가지고 있던 것은 분명한데 어딘지 내가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아닌 나. 처음 보는 나. 너는 누구니? 또 다른 내가 나를 돌아보았다. 이상하게도 미국인이 된 것 같은 강한 인상을 주는 나였다. 그런 나를 보고 있는 나는 기분이 참 묘했다. 결코 싫지가 않았다. 반대로 아주 좋았다. 내가 웃자 미국인 같은 내가 나를 보고 웃었다. 뭔가 확실히 통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것이 기억나는 전부이다. 어떻게 그 체험이 끝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는 맨하튼의 모닝사이드 하이츠 친구네 서블렛 거실 한가운데 혼자 멍청하게 앉아있었다. 주위는 여전히 조용했고, 창문 밖 나무 사이로 햇살도 여전히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연한색 나무 바닥에 작은 소파와 테이블이 전부였던 미니멀리스트의 작은 거실은 잡지책의 한 페이지처럼 파스텔 톤으로 기억에 남았다.
이 체험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별로 떠벌이지 않았다. 내가 가르쳤던 몇몇 아이들에게만 필요에 따라서 말해주었다.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더 염려했던 것은 그때했던 체험의 기운이 날아가버릴 것같아서 였다. 그러면 동시에 영어도 사라질 것같았다. 지금은 안그러지만 한참동안 그랬었다.
영어 잘한다는 남들도 이런 체험을 할까 궁금은 했다. 적극적으로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체험담이 걸려들 때면 촉을 세웠다. 영어를 하기 시작하면, 자신이 바뀌는 기분이 든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일종의 코드스위치라고나 할까? 한국어에서 영어로 코드스위치를 하는 것이다. 언어만 스위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다른 사람이 되는 느낌이 있다고 한다. 그것이 쉬운 사람이 있고, 자기도 모르게 되는 사람도 있었는데, 나처럼 극적인 체험을 한 사람은 거의 못 본 것 같다. (있으면 알려주세요!^^) 그 뒤로 나도 실제로 달라지는 부분이 있었다. 영어자극이 들어오면, 그때 만난 내 영어자아가 되살아났다. 한국인 분위기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느낌이 있었다. 그 뒤로 영어를 하면 한국인 인성과는 다른 영어인성으로 자동적으로 전환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인성이 커가는 것도 느꼈다.
거의 40년이 지난 지금 한번은 AI에게 이 때의 체험을 자세하게 기술해 주면서 물어보았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심리적 체험이니? 특히 영어습득과 관계해서 고려해 볼만한 실질적인 체험이니? AI의 해석에 따르면, 영어 정체성이 형성된 순간이라는 것이다. 내 추측이 맞았다. 영어 정체성이 형성되는 순간을 시각적 성향이 강한 내가 시각적으로 체험했다는 것이다. 이 체험이 중요했던 것은 내가 미국인 같은 새로운 나를 만났을 때 내가 거부하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때 그것이 이상해서 거부했으면 아마 귀만 뚫리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얼마나 많은 길을 또 돌아와야 했을까?끔찍하다.
되돌아 보면, 이 체험은 특별한 깨달음을 하나 주었다. 영어에 도전한다는 것은 항상 일방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영어 쪽에서는 아쉬울 것 하나 없기때문이다. 심지어 자기를 배워달라고 부탁할 필요도 없다. 거의 전 세계인들이 자진해서 배우고 싶어 하는 언어니까. 한마디로 지구적 스케일의 명성과 인기를 한 몸에 담고 있는 넘사벽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어벤져스에 총 출동한 영웅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내쪽에서 아무리 공부를 푸지게 해서 가져가도 친해지기 어려울 것 같은 언어라는 편견이 있다.
그런데 나의 체험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고 한다. 영어도 반응을 한다. 단 조건이 있다. 영어와 주파수를 잘 맞추고 전적으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얼마만큼? 자기의 정체의 일부가 될 만큼 수용할 무의식적 의지가 있으면 된다. 왜 무의식적인 의지여야 하는가? 의식은 그런 척할 수 있기때문이다.
언제 생각해도 영어는 애인 같다. 애인은 자신을 분석해서 다 알아주길 원하지 않는다. 이러면 대부분 깨진다. 애인은 자기를 잘 모르더라도, 무엇을 느끼는지 공감을 하려는 노력을 하고, 자기가 좋아서 삶에 받아들이고 싶어하는 사람을 원한다. 그러면 아무리 넘사벽 애인이라도 반응을 한다. 반응을 하면, 넘사벽 어벤져스의 토니 스타크와 같이 가서 아메리칸 햄버거를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얼마나 흥미진진한 일인가!
세상에 영어 같은 언어가 또 있을까? 세상에 영어 같은 언어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호기심을 계속 불러일으키는 언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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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