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하나로 인풋통로를 뚫다!
영어 레벨 7. 이것이 뉴욕 어학원에서 진단한 나의 영어레벨이었다. 일반과정 최고레벨인 8보다 한 단계 아래였다. 꽤 높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믿지 않았다. 사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아웃사이더의 눈에는 사실이 아니었다. 절대 그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진단한 레벨은 이렇다.
듣기 레벨 1/ 말하기 레벨 2: 영어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한 번은 교내 건물 내에서 길을 잃었다. 어느 사무실에 들어가 겨우겨우 영작을 하여 도움을 청했다. 의자에 앉아있던 중년의 흑인여자분이 열심히 설명해 주셨다. 나는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못 알아 들었다. 답답했던 그분은 결국 사무실 밖으로 데리고 나가 손으로 일일이 지적해 가면서 알려주었다. 그분은 한쪽 다리를 저시는 장애인이었다. 어찌나 죄송하던지. 레벨 7이라고 할 수 없었다.
읽기 레벨 7/ 쓰기 레벨 5: 과연 이것이 객관성이 있었을까? 내 읽기는 반쪽만 영어였다. 영어로 읽었는데, 영어 맥락에서 이해는 했다고 해도, 한국말로 반응하고, 나중에 남은 것은 한국말이었다. 영어는 뇌의 표면에 잠시 '입력'되었을 뿐이다. 영어를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 쓰기도 그렇다. 어학원 쓰기 숙제는 항상 거의 만점이긴 했다. 내게 시간이 주어져서 가능했던 것이다. 거의 날마다 새벽 세씨까지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면서 영문을 '만들었다'. 이것을 썼다고 할 수 있을까? 이 레벨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영어의 가장자리에서 보았을 때 내 영어는 두 가지 점에서 레벨 1이었다. 하나, 나의 4가지 언어활동은 심각하게 불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독해위주 국내 영어의 전형적인 문제점이 여실히 반영되어 있었다. 다른 하나, 4가지 언어활동이 전혀 통합되지 않았다. 4가지 언어활동이 다 따로따로 떼어져 연결이 되어있지 않았다. 따라서 나의 언어활동의 공통분모는 듣기 레벨 1에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런 나의 영어현실을 다 받아들이고 영어의 가장 바깥 제로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어디부터 시작을 할까? 내가 주목한 것은 감정이었다. 영어라는 언어에 담겨있는 감정이었다. 그것도 아주 단순한 감정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교실영어보다 지극히 평범한 영어가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평범한 영어란 학력, 경력, 전공, 성별, 지위고하, 나이를 떠나서 영어 원어민이면 누구나 익숙하게 하는 영어였다. 여기에는 생각 없이 거의 자동반사적으로 내뱉어지는 영어도 모두 포함되었다. 이것을 이제는 소리로 듣고 싶었다. 눈으로 영어를 보면, 감정을 상상해야 했다. 아무리 학문적인 글이라도 논쟁자의 감정을 따라가야 논지가 보이는데, 쉽게 감을 잡기 어려워서 늘 답답했다. 그러나 소리로 영어를 들으면, 소리에 감정이 묻어 나온다. 발음에 결국 이런 감정이 배어있는 것이다. 따라서 발음도 평범한 말에서 직접 배우면서 감정을 직관적으로 잡아내는 '감'을 익히고 싶었다.
그때까지 영어 원어민들이 자기들끼리 하는 진짜 평범한 말을 '직접 귀담아'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영어 원어민 영아 같은 인사이더에게는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 그러나 영어의 아웃사이더에게는 국물도 없는 것이었다. 분명 어학원에는 없었다. 어학원 교실에서 들리는 영어는 세계 각국의 다른 언어를 근거로 한 다양한 브로큰 잉글리쉬 Broken English였다. 어학원 영어 원어민 선생님들이 내가 원했던 평범한 일상의 영어를 할까? 아니다. 그들의 영어는 학생을 위해 연출된 영어이다. 아무리 자연스럽게 하려고 노력한다 해도 백 퍼센트 자연스러운 평범한 일상영어일 수 없다. 비슷한 상황을 상상해 보자. 한국말이 어눌한 미국인에게 내가 다른 한국사람에게 하듯 백 퍼센트 편한 한국말을 못 하는 것과 똑같다. 더군다나 선생님들이 나에게 일상의 감정을 실어 할 말은 그다지 없다. You did a good job! 정도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때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있었다. 마침 한국어 방어심과 심각한 밀당을 끝낸 상태이기도 했다. 조금은 용감해질 수 있었다. 따라서 어학원 밖으로 나갔다. 기숙사 방문을 열고 나갔다. 브로드 웨이를 걸었고, 노촌 카페에 죽치고 앉아있었고, 센트널 파크에 갔었고, 그랜드 센트널 기차역 광장에도 앉아 있었고, 맥도널드같은 패스트푸드점에도 앉아있었다. 거기서 미국인들이 자기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소리, 말하면서 웃는 소리, 욕하는 소리, 짜증내는 소리, 급하게 다그치는 목소리, 햄버거를 먹다가 뛰어다니는 아이를 야단치는 흑인 엄마의 고함에서 영어로 야단을 치면 저런 느낌이구나! 저런 감정에서 저런 영어가 나오는구나! 쉬운 단어들만 들숙날숙하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전부였지만 한국어 소리와 전혀 다른 느낌을 물씬 흡수를 할 수 있었다. 실제 뉴욕영어를 자료삼아 요새말로 그냥 듣기를 한 것이다. 그냥 듣기가 뭔지도 모르고 한 것이다. 그때는 이것이 최선이었다. 이것 말고 솔로 아웃사이더가 뉴욕 한복판에서 자연스럽게 평범한 일상영어를 들을 수 있는 방법이 달리 있었을까? 없었다고 본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주 낯선 소리가 하나 귀에 걸려들었다. 소리 하나가 다른 소리와 분리되어 들렸다는 것은 그냥 듣기가 진전되었다는 뜻이었다. 그 소리는 한국말에는 비슷한 소리가 없는 지극히 영어다운 소리였다: 웁스 Oops! 지금은 전 세계가 다 아는 의성어지만, 그때는 미국이나 가야 들어보는 별다른 소리였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자꾸 주의를 끌었다. 웁스가 들릴 때마다 고개를 돌려 보니, 미국사람들이 주로 실수를 했을 때나 당황을 했을 때 ‘ Oops! Sorry!’ ‘Oops! Excuse me!” 하는 것이었다. 한국사람들이 실수를 했을 때나 당황을 했을 때 하는 '아이고, 어이쿠, 에구, 에고' 에 접목하여 이해하였다.
그런데 신기했던 것은 둘 다 같은 감정에서 기인한 것인데 전혀 다른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어떻게 저런 상황에서 한국말의 아이고, 어이쿠, 에구, 에고처럼 ‘아,어,에’ 소리를 내지 않고, Oops같이 ‘우’ 소리를 낼까? 한국말 '아, 어' 소리는 감정을 밖으로 내뱉는 소리인 반면, 영어의 '우'소리는 오히려 감정이 쏟아지지 않게 뒤로 삼키는 소리다. 소리만 놓고 따지고 보면, 거의 반대인 것이다.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혼자 실험을 해 보기로 했다. 한국인인 내가 '아이고'와는 호흡이 정반대인 ‘Oops’를 미국인과 ‘똑같이’ 무의식적으로 낼 수 있을까? 실험의 규칙은 '실제 상황에서 실제로 같은 감정'이 들 때만 시도하는 것이다. 그때마다 조용히 '아이고'를 하지 않고 Oops라고 소리 내 보는 것이었다. O-o-p-s 철자와 [u:ps] 발음을 외우자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원한 것은 나의 당황한 감정에 Oops라는 소리를 연결시키는 것이었다. 얼마큼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아이고가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것만큼 자연스럽게 만들고 싶었다.
물론 쉽지 않았다. 흥미로웠던 것은 몇 단계를 거쳤다는 것이다. 일부러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내 직관이 나름대로 길을 찾아간 것이다.
1.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아이고'를 했다. 정작 Oops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실제 상황이 일어나는 바로 그 순간을 '인지'할 수 있어야 했다. 그 순간이 언제 올까 지나치게 의식하거나 지나치게 방관해서는 안되었다. 그저 나에게 '그 순간이 오면 놓치지 않게 해 줘' 정도로 마인드셋을 해 놓았다.
2. 그 순간을 인지했다고 Oops가 저절로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저절로 나오는 것은 '아이고'였다. '아이고'를 떼내야 했다. 당혹한 감정에 '아이고'가 무의적으로 따라붙는 것을 ‘살짝’ 떼내는 것이다. 이것도 어디까지나 '살짝'이다. 지나치게 억지로 억제하거나 제어하면, 감정도 달아나고, 상황 자체가 어색해지기 때문이다.
3. '아이고'를 밀어내면서 대신 Oops로 바꿔치기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강도 높은 반복학습으로 Oops와 바꿔치기를 하지는 않았다. 백 퍼센트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을까 우려를 했기 때문이다. '아이고'는 절대 한 번에 떼 지지 않을 것이고, Oops도 단번에 바뀌지도 않을 것은 분명했다.
4. 역시나 평생 내 입에 붙어있던 '아이고'가 가만있지 않았다. '아이고'는 Oops와 밀당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Oops를 시도할 때마다 '아이고'는 더 고집스럽게 방해를 했다. 고집을 부릴수록 그냥 놔두었다. ‘아이고’가 목에 걸려 몇 발 늦었던 때로 있었고, 결국 Oops를 했다 해도 뭔가 어색한 적도 있었고, 또한 Oops 하기가 꺼려진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강도를 '살짝만' 높여가며 Oops를 슬쩍 끼어넣기를 했다.
의식적으로 할 수 있던 것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 기다렸다. 실수를 하는 실제 상황은 늘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우연의 타이밍에 따라야 했다. 오히려 시간의 간극을 둘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5. 그러던 어느 날 무슨 실수를 했는데, 그 순간을 미쳐 인식하기도 전에, 순식 간에 무의식적으로 Oops를 하는 나를 발견하였다. 아이고의 방해를 전혀 받지 않고, 진심 내 속에서부터 거침없이 나왔다: Oops!
오호! 이게 가능하구나! 뭔가 뚫린 느낌이었다. 내 감정에 영어 단어의 소리 하나가 덜컥 연결된 것이었다. 실제로 덜컥 연결되었다는 느낌이 있었다. Oops moment! 짧았지만 찐했다. 세상에 태어나서 영어를 이렇게 체험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영어의 아웃사이더에게 영어의 내부로 들어가는 아주 좁은 길이 열린 듯했다.
나의 Oops momnet는 그 뒤로도 계속 재해석을 해보게 하는 영어체험이었다. 이 전 과정이 당황 감정에 '아이고'로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Oops를 대치시키는 과정이었다. 이것만이 생판 처음 들어보는 Oops가 내 감정을 타고 무의식적으로 연결되는 어쩌면 유일한 길이 아니었을까? 이 길이 효과가 있던 것은 지나친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 대신 자신의 상태를 보고 때에 맞게 적당한 의식적 푸시를 한 것, 무엇보다도 무의식의 일은 무의식에 마끼고 기다린 것에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의식은 늘 겸손하게 적당하게.
나의 Oops moment는 의외로 파급력이 있었다. 하나는 그 뒤로도 계속 원어민산 Oops가 무의식적으로 여전히 나온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한다. 그때의 Oops와 크게 변한 것이 없다. 또 다른 하나는 Oops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글에 갇혀 죽어있던 다른 단어도 감정과 연결시키면서 재인식해 볼 수 있었다. 활성화가 되는 것도 꽤 있었다. 특히 예를 들어 Adorable 같은 형용사가 그러했다. 정말 별거 아닌 작은 의성어 하나를 감정코드에 맞춰 인풋 한 건데 연상효과까지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내 감정에 영어 Oops가 걸려들면서 연결된 것까지 모두 가능했다. 그러나 연결되었다는 것이 영어와 거리가 좁혀졌다는 뜻은 아니었다. 섣부르게 좁힐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나 자신을 Oops 같은 실제 영어에 내 던져 놓고, 자신의 반응을 봐가면서, Oops와 주파수를 맞추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거리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현명했었다. 나는 아직 영어의 아웃사이더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제 실오라기 같은 연결선이 생겼을 뿐이었으니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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