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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텐츠아트 진 Sep 22. 2024

브로드웨이 109가 차이니즈 아메리칸과 한판! 영어로!

진짜였다. 들리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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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 저편에서 중국말 액센트가 심한 여자가 고함을 치고 난리가 났다. 나는 수화기를 들고 꼼짝없이 앉아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녀가 하는 말을 다 알아들었다. 골자는 우리가 잘못 주문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못 바꿔주겠다는 것이다. 아닌데! 그런데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아직 영어로 말이 잘 안되었다.


탁! 전화를 끊었다. 일방적으로 당했다. 갑가지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는 것을 느꼈다. 그때까지 살면서 나에게 이러는 사람은 처음봤다. 한국사람 중에도 없었다. 하물며 얼굴도 모르는 중국집 여자가 나에게 이렇게 무례하게 굴다니! 믿기지가 았았다.  


함께 밥을 먹으려고 놀러온 두 한국인 친구들도 어이없다는 듯 할말을 잃고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었다. 우리 중 아무도 그 여자와 싸울만큼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없었던 탓이다. 아마도 그냥 주는대로 먹어야하는 상황일까?



Chinese American food: hot and sour soup


 

그런데 그럴수가 없었다. 저녁으로 먹으려고 시킨 중국음식이 마루바닥에 널려있었다. 나는 조용히 친구들에게 말했다. "이거 다시 싸자!"


우리 셋은  일심동체가 되어 순식간에 음식 봉다리를 싸들고 기숙사 밖으로 서둘러 나갔다. 대책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도저히 그 음식을 먹을수가 없었다.


밖은 벌써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11월에 들어서는 때라 그날따라 공기가 스산하였다. 냉기도 돌기 시작했다. 길바닥에는 커다란 낙엽들이 뒹글거리고 있었다. 거주지역 건물이 높고 큰 맨해튼의 거리는 공간감이 더 느껴졌다. 전형적으로 기분이 안좋은 그런 그림의 저녁이었다. 이런 그림 속을 걷기 싫어 주문을 했던 것인데 결국 나와 친구들은 아무 말하지 않고 빠르게 걸어들어갔다.


딱 한블럭이었다. 맨해튼 그리드의 가로블럭이었다. 거기서 길만 건너면 코너에 그 중국집이 있었다. 거기로 가는 도중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내 몸에는 응집된 분노의 열만이 이글거렸다. 작은 폭탄이 되어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억울했다!


그런데 그 블럭의 반쯤갔을 때 거리를 가로질러 반대편 보행자 길 위로 발을 올려놓는 순간이었다. 내 머리가 짜악 쪼개지는 것같았다. 갑자기 생각의 불줄기가 화산이 폭팔한 것처럼 솟구쳐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아주 논리정연하고 생각이 빠르게 터져 나왔다. 한줄씩 착착착착! 그것은 내가 그 중국집 교포여자 앞에서 와다다다 해 댈 말이었다. 그것이 한 틀에 짜여서 내 앞에 보고된 듯 놓여있었다. 영어로!


분노가 영어로 탈바꿈했다. '영어로 생각났다' 이런 걸로 흥분할 여유따위는 없었다. 그것이 도망을 갈까 조마조마하여 가슴을 움겨쥐고 더 빠르게 달려갔다. 이제 횡다보도만 건너면 된다. 건넜다. 그 중국집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갔다. 주인장 아저씨가 내 얼굴을 보고 눈치를 챘다. 남감한 표정으로 "She is just tired." 란 말을 던진다. 'Why me?' 라는 의미를 그렁그렁 담은 째리는 눈길 하나로 그 말을 내동대이 쳤다.


그 여자가 앉아있는 계산대 앞에 음식을 탁! 던져 놓았다. 앞에 똑바로 서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잡아먹을 듯 그녀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기선 제압을 했다. 그녀는 주줌했다. 그래도 입을 열려고 하길래, 넵다 쏴주었다. 가슴 안에 움켜쥐고 온 분노의 영어를 한 끈에 총알 쏘듯이 쏴주었다.


 We ORDERED Hot and Sour soup. AND YOU sent me the wrong soup! It is not MY fault. YOURS! WE don't like Egg drop soup. I never order Egg soup. OK? I called you. I ASKED you to change the soup. What did I do? Something wrong? Why were you yelling at me? Why were you so mean to me? You were mean to me becuase my English wasn't good enough. Are you a RACIST? You live in Mahattan. You don't have a common sense!  YOU EAT all your foods!( I want my money Back.)


우리는 핫앤사우어 스프를 시켰다고요. 그런데 '당신들이' 다른 스프를 가져다 주었잖아.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그쪽이 잘못한거지. 우린 에그드랍스프를 싫어해요. 나는 에그드랍을 절대 안시킨다고! 알겠어요. 그래서 내가 전화했지. 바꿔달라고 부탁했지! 내가 뭘했지? 잘못한 것이 있어요? 왜 나한테 소리지르고 난리야! 왜 나한테 막하시지? 내가 영어 못한다고 얕본거지? 당신 인종차별주의자야? 맨하탄에 살면서 그런 상식도 없어? 네 음식이니까 너나 드세요! (내 돈돌려도!)


screaming with anger!



그리고 그녀가 말대꾸 못하게 휙 나와버렸다. 그 통에 맨 마지막 말은 못하고 나왔다: I want my money Back.  다른 친구가 들어가서 돈돌려 받아가지고 나왔다. 우리는 다시는 그 인종차별주의 중국집은 안갔다. 사실 한국식당었다면 전혀 다르게 대처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중국여자가 영어를 가지고 유세를 부리니까 상황은 아주 달라졌다. 금방 인종차별 상황이 되더라. 거기서 느껴지는 분노는 대단했다. 처음 알았다. 중국애들이 한국애들 무시한다는 것을. 하얀 애들한테 당한 걸 우리한테 와서 푼다는 것이다. 그 당시는 그럴 수 있었다. 한국이 여러모로 순위가 낮았을 때였다. 일본 - 인도/중국 - 한국 - 베트남


그때 한말이 정확하게는 아니지만 이 정도로 기억이 난다. 내가 나도 모르게 쏟아낸 첫번 영어이기도 했고, 거기에는 찐한 감정이 담겨져 있었기때문이다.






그런데 진짜였다. 사부님들 말이 진짜였다. 들리면 말한다! 3개월 걸렸다. 귀뚫은지 3개월만에 입이 터진 것이다. 상상도 못했던 지점에서 상상도 못한 일로 영어 입이 터졌으니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를 일이 되었지만 결국 입은 터졌다.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말하는 연습을 했는가? 정말 일도 안했다. 입틀 생각도 못했다. 입이 트일 것이라고 기대를 할 만큼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까맣고 잊고 있었다. 왜냐하면 갑자기 들려지는 것이 많았기때문이다. 그것을 관리하느라고 바빳다. 귀뚫리고 입트일 때까지 했던 것은 듣기에 더 집중했던 것뿐이다. 귀가 뚫리고 여러가지 변화가 생겼는데 특히 내 주목을 끈 변화는 이러했다.


하나, 이젠 들리는 단어와 처음 듣는 단어가 분리가 되어 들였다. 뜻은 몰라도 발음은 들리는 거다. 신통방통!


둘, 처음 듣는 단어는 발음을 따라할 수 있게 되었다. 뜻은 몰라도 발음은 구사가 되는거다. 이것도 신통방통!


삼, 그 발음을 따라하면서, 직접 물어보게 되었다. Say it again, please!, What does that mean?


사, 발음으로 알게 된 단어의 철자를 추측하고, 영영사전을 찾아 확인하는 일이 생겼다.


그런데 가장 신기했던 것은 들리니까, 대꾸하고 싶은 욕구가 점차 생겼다는 것이다. 어떨 때는 욕구만 있었고, 어떨 때는 목구멍까지 차올랐는데 뭐라고 해야될지 몰라서 못했다. 이런 작은 순간들이 계속 쌓이지 않았을까? 특별히 말을 할만한 감정적인 동기가 없었기때문에 그냥 지나갔다고 보았다. 그러다가 중국집 여자가 '화'라는 강력한 감정적 동기를 부여해주면서 말이 튀어 나왔다고 본다.


그러나 말이 나왔던 순간에는 삼단계가 있었다. 일단계, 내 감정이 있었다. 이단계, 내 감정이 사고와 연결이 되었다. 삼단계, 말로 튀어나왔다. 무의식에서 올라온 감정이 내 사고와 연결이 된 뒤에 말이 튀어나왔다. 감정과 사고가 연결되는 물밑작업이 완성되자 듣기와 말하기 순환고리가 형성된 것이다. Voila!


물론 이 뒤로 말이 술술 나온 것은 아니다. 아직 버벅거렸다. 그러나 용기가 생겼다. 말을 할 기회가 있으면, 내가 자진해서 말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영작하는 버릇이 없어졌다. 할 필요가 없었다. 하고싶은 말이 영어로 떠오르기 시작했기때문이다. 시간이 걸리기도 했지만 좀 기다리면 나왔다. 이것이다! 내가 원했던 것! 영어로 말할꺼리가 생기는 것!



The main quad, chicago university


columbia University campus!


swarthmore college, Pennsylvania



귀뚫리고 입터지니까 갑자기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제일 하고 싶었던 것은 교수들을 만나러 다니는 것이었다. 내가 하고픈 연구를 할만한 학교와 교수를 찾아야 했다. 직접 교수들과 전화도 할 수 있었고, 면담도 할 수 있었다. 가까운 대학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하나씩 섭렵해 나가기 시작했다. 나에게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감사합니다.

이 글의 저작권은 콘텐츠아트 진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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