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사교육 튜터가 바라본 영어 공교육의 문제점과 해결책
필자는 영어 튜터로 영어 사교육계에 종사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필자의 꿈은 영어 공교육 정상화이다. 당연히 사교육의 완벽한 몰락도 포함된다. 필자같이 영어 사교육으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 설자리가 없는 세상을 만들 것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영어 공교육이라는 말은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사용되어서 도대체 무엇을 정상화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뭐가 문제고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를 모른다면 정상화라는 의미는 그냥 대중의 호감을 사는 슬로건에 불과하다.
본 글에서는 영어 사교육 종사자가 바라본 영어 공교육 정상화의 구체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무엇이 비정상인가?
한 마디로 현재 영어 공교육의 핵심 문제는 커뮤니케이션의 부재이다. 12년 동안 영어 공부를 했는데 졸업해도 영어로 말을 못 한다.
12년 동안 국가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외국 여행 가서 영어로 몇 마디 못 한다. 12년 동안 죽어라 단어장을 팠는데 영어로 간단한 발표를 못한다. 12년 동안 수천 개의 수능 지문을 읽었는 데 영어 면접에서 신나게 버벅거리다 온다.
그렇다. 각자의 직업, 위치, 영어를 써야 할 상황은 다양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정상적인 (비정상적인) 영어 공교육을 받은 사람은 하나 같이 영어로 자신의 의사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왜 문제인가?
영어로 의사소통할 수 없음. 이게 왜 문제인가?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외국어 학습의 1차적 목표는 의사소통이다. 영어 단어, 영어 문법을 공부하는 이유는 상대방과 영어로 대화를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 당연한 목표가 조금도 아니고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인데,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
아니, 12년, 52,560일 동안 영어 공부를 했는데 또 따로 스피킹 공부를 해야 하는 건 상식적으로 발생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12년이라는 시간을 의사소통 측면에서는 효율적으로 낭비했다. 그것도 한 두 명이 아니라 전 국민 모두가 그래 왔고 계속 그럴 것이다.
덕분에 어렵지 않게 여기저기 광고를 찾아볼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영어 사교육 시장이 생겨났다. 글로벌 시대에 지금 당장에도 영어를 못해 놓치는 정보와 기회들이 지나가고 있다.
제대로 된 영어 교육을 받았다면 지금 영어 공부할 시간에 책을 읽을 수도, 가족과 외식을 할 수도, 그냥 부족한 잠을 잘 수도 있었다.
공교육 정상화란 지금 영어 공교육에 커뮤니케이션 요소를 추가하는 작업이다. 강화가 아니라 추가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현 영어 교육에 의사소통 관점이 1도 반영돼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교육 정상화란, 공교육을 성실히 마친 사람이라면 일상적인 자신의 생각을 영어로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다.
공교육 정상화 방안을 제시하기 앞서 먼저 왜 이렇게 영어 공교육이 뒤틀렸는지 그 원인을 살펴보고 넘어가자.
Input 100%
수능 만점 받아도 영어를 버벅거리는 이유는 Input만 주구장창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이해하고 외우기만 했지 배운 걸 써보거나 말해보지 않았다.
공교육의 정점인 수능 영어는 순도 100% Input 평가 시험이다. 얼마나 많은 단어를 외웠고, 얼마나 정확히 문법을 이해했는지에 관한 시험이다. 라이팅&스피킹 시험은 1도 들어있지 않다.
Input 100%의 의미를 예를 통해 이해해보자.
[inconceivable =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영단어를 외운다. 예문도 몇 개 읽어본다. 그 결과 해당 단어가 들어간 수능 문제를 이해하고 풀 수 있다.
그러나 inconceivable을 활용해서 영어 문장을 직접 만들어 보지 않는다. 라이팅도 안 하고 스피킹은 더더욱 안 한다.
[It + that 강조 구문] 문법을 이해한다. 마찬가지로 해당 문법이 들어간 수능 문제를 풀 수 있다. 하지만 이 문법을 응용해 문장을 스스로 구성해 보지 않는다.
그 결과는? 그렇다. 실제 스피킹에서 inconceivable과 It+that을 전혀 사용하지 못한다. 이 영단어와 문법만 그런 게 아니라 배운 모든 영단어와 문법이 그렇다.
수능에서 배운 영어의 몇 % 나 실제로 유창하게 스피킹 하는지 생각해보자. 50%? 30%? 20%? 아니, 5%도 안된다고 본다.
요리 재료만 잔뜩 모으면서 직접 요리는 전혀 해보지 않는다. 요리 시험에서 요리를 평가하지 않고 얼마나 많은 재료를 준비해왔냐를 가지고 평가한다.
어쩌다가 이리도 완벽하게 Input 100% 영어 교육이 자리 잡았는지는 모른다. 아무래도 객관식이니 줄 세우기가 편하다. 아니면 그냥 예전부터 이렇게 배워왔고 가르쳐왔기 때문에 이게 당연하다고 보나보다.
이유가 뭐가 되었든 커뮤니케이션이 결여된 공교육의 원인은 오로지 Input 저장량만 가지고 학업 성취도를 평가하는 시스템이다.
공교육 정상화, 즉 커뮤니케이션이 포함된 영어 교육을 위해서는 2가지를 실천해야 한다.
하나는 Input 줄이기, 그리고 다른 하나는 Outptu 늘리기이다.
해결책 하나, Input 줄이기
사실, 스피킹 기초는 다름 아닌 단어와 문법, 즉 Input이다. 재료가 없는 데 어떻게 요리를 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기초 자원이 있어야 문장을 만들어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현 영어 공교육이 요구하는 Input은 전혀 현실적이지 못하다. 암기량이 비현실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실제 의사소통에서는 평생 쓸 일이 없는 Input까지 평가한다는 의미이다.
오죽했으면 원어민들도 수능 문제지를 보고 어렵다고 혀를 내둘렀을까?
inconcievable은 실제 2019년도 수능에 나왔던 단어이다. 이걸 진짜 스피킹 할 일이 있을까? 위에서 예시로든 단어, 문법뿐만 아니라 수능에서 평가하는 상당수의 단어는 의사소통 차원에서 말 그대로 필요가 없다.
백 번 양보해서 실제로 쓸 일이 있다고 치자. 그런데 현실은 concievable은 고사하고 imaginalbe, thinkable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쉽고 자주 쓰이는 Input부터 '스피킹 차원으로' 익히고 나서 inconcievable을 배우는 게 순서에 맞다.
정리하면, 의사소통에 자주 쓰이지 않으면 과감히 평가 항목 (수행 평가, 내신, 수능, 교과서)에서 없애 빼버려야 한다. 모르면 의사표현이 불가능한 단어들만 평가한다.
해결책 둘, Output 늘리기
그럼 남는 시간에 노는 가? 아니다. 애초에 Input을 줄이여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Outptut 학습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이다.
배운 단어와 문법을 단순히 이해하고, 암기하고 문제 푸는 데서 끝내지 않는다. 배운 걸 가지 직접 영어 문장을 라이팅 해보고 스피킹 하는 시간을 전폭적으로 늘린다.
구체적인 실현 방안은 다음과 같다.
◎ 숙제
영어로 일기 써오기 / 영어 예문 50개 만들어 오기
◎ 수행 평가
영어 에세이 / 3분 스피치 / 영어 발표 / 영어 토론
◎ 내신
영어 에세이 / 1:5 영어 인터뷰 / 기타 서술형
◎ 수능
영어 글쓰기 논술 / 영어 말하기 시험 추가
위에 예시는 모두 영어 문장 구사력을 요하는 라이팅 및 스피킹 학습이다.
비현실적이라고?
보자마자 드는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저걸 누가 몰라서 안 하냐고. (모르는 것 같다.) 아는 데 실현 불가능하니까 안 하는 거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필자 눈에는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를 몇 가지 들어보고자 한다.
1. 필자도 할 수 있다.
필자는 1:6으로 진행되는 회화 스터디를 운영하고 있다. 회화 스터디이기에 다음과 같은 과제가 주어진다.
∙ 지문에 나온 팔수 단어 활용해서 자신만의 문장 10개 만들고 외워오기.
∙ 주어진 주제에 대해 A4 1장 분량 라이팅 및 스피치 준비해오기.
1:1 관리? 그런 거 없다. 그냥 1주일에 오프라인으로 한 번 만날 뿐이다. 그런데 처음에 방향만 잘 잡아주면 다 잘 해온다. (안 해오는 사람은 노력의 문제라는 걸 자신도 잘 알고 있다.) 영어 관련 유튜브, 사전, 블로그가 넘처나기 때문에 스스로 얼마든지 문장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필자가 바빠서 (귀찮아서) 안 할 뿐이지 평가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스피킹 형식으로 시험 보면 여섯 사람의 10문 장, 60 문장 듣는 데 20분도 채 안 걸린다. 여기에 1~9등급, 또는 했다, 안 했다를 기록하기가 어려울까? 아니다.
하물며 필자는 지금 작은 동네 어학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막대한 자원과 인력이 투입되는 공교육에 대해 말하고 있다.
교육 자체를 업으로 하는 능력 있는 분들이 이 작업을 못 할리가 없다. 더군다나 시스템화 시키면 더더욱 그렇다.
한낮 국내파 대학생도 할 수 있는 데 그들이 못 할리 없다. 안 하는 거다.
2. 말하기 시험
OPIC, 토스 등 말하기 시험이 대중화된 지 오래다.
3. 다른 사례
이미 많은 국가에서 공교육 차원에서 토론, 발표, 논술이 공교육 체계에 포함되어 있다. (비단, 외국어에 국한돼있지도 않다.)
4. 일기 검사
초등학교 때 일기 쓰기가 숙제였다. 그리고 간단하지만 선생님이 매번 코멘트도 남겨주셨다. 글만 영어로 바뀌면 영어 라이팅이 된다.ㅇ
5. 대학교 영어 수업
대학교에서 영어 에세이, 발표 수업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 수업 인원이 많으면 많은 대로 인원, 형식, 시간을 조절해서 최소 한 학기에 한 번은 영어 발표를 한다.
6. 사교육
대표적으로 어학원도 Output 위주, 즉 스피킹 전용 수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 외에 가능성을 보여주는 예시는 셀 수 없이 많다.
무조건 되게 만들어야 한다
아니 쓰고 보고 나니까 생각의 순서가 뒤바뀌었다. 될지 안 될지를 판단할 예시를 찾는데 시간 쏟을 필요가 없다.
무조건 된다고 보고 실천 방안을 하나하나씩 연구하고 도입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대학교 애들은 이미 배울만큼 배워서 그나마 할 수 있는 거라고? 에세이, 발표 난이도를 낮추면 된다. 그리고 수능 난이도를 봤을 때 우리나라 학생들은 충분히 영어로 쓰고 말할 수 있다.
영어 라이팅을 평가할 수 있는 교사가 부족하다고? 그럼 그런 교사를 양성하면 된다. 스피킹 테스트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고? 평가 효율을 높이거나 교사를 더 뽑거나 OPIC처럼 자동 평가 시스템을 도입하면 된다.
실현 가능한지 아닌지 고민하는 건 시간 낭비다. 어떻게 서든 되게 만들어야 한다.
이대로라면 12년 x 우리나라 인구 x 뒤 따르는 기회비용이라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누적될 것이기 때문이다.
수능 1등급 성적표? 대학 입시를 빼놓고 보면 한 낮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