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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열 Feb 03. 2020

돈으로 살 수 없는 영어

필자는 2년째 온라인으로 영어회화를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최근 흥미로운 현상이 일어났다. 


과거, 수강생 학습 의지를 높이기 위해 출석률 90%를 넘기면, 수강료 일부를 환급해주었다.


그러다 관리 문제로 이 할인 제도를 폐지했다. 그런데 오히려 평균 출석률이 높아졌다. 뿐만 아니라, 재등록률도 올라갔다. 


어떻게 된 일 일까?




스위스, 핵 폐기장 건립

숨겨진 이유를 찾기 위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마이클 샌델」에 나오는 한 예시를 살펴보자. 스위스는 방사능 핵 폐기물을 저장할 장소를 찾는데 애를 먹고 있었다. 누구도 자기 지역에 핵 폐기물이 들어서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후보지 중 하나는 볼펜쉬셴이라는 작은 산악 마을이었다. 1993년 국민투표가 실시되기 전에 일부 경제학자들이 마을 주민 상대로 사전 조사를 실시했다. 만약 국민투표 결과, 자기 마을이 선정된다면 결과를 받아들이겠냐고 물었다. 51%가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여기에 경제학자들은 인센티브를 추가했다. 만약 스위스 의회가 핵 폐기장 건립에 대한 보상으로 매년 보상금을 지불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지지율이 51%에서 25%로 오히려 떨어졌다. 



밀어내기 효과

금전적인 보상이 주어지면 지지율이 올라가야 정상 아닐까? 우선, 금전적 보상 없이도 왜 51%는 찬성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자신에게 해가 되는데도 불구하고 찬성한 이유는 바로 시민 의식이다. 투표라는 민주주의 절차를 밟아서 결정됐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시민적 의무감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금전적 보상이 주어지면서 국가 공공선에 대한 기여 의식이 일종의 뇌물로 변질됐다. 원래는 숭고한 시민 의식 때문에 찬성했었다. 그러나 제안이 주어지면서 마치 자기가 돈 때문에 찬성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몇몇은 오히려 반대로 돌아섰다. 


마이클 샌델은 밀어내기 효과로 설명한다. 돈, 보상과 같은 외재적 동기가 신념, 흥미와 같은 내재적 동기를 밀어낸 것이다. 그리고 결과에서 알 수 있다시피 내재적 동기는 외재적 동기를 능가하기도 한다. 시민 의식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재화가 아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다시 온라인 영어 사례로 돌아가 보자. 필자는 할인 제도를 없애는 대신에 한 가지 작은 변화를 줬다. 다음과 같이 진심 어린 칭찬을 많이 해줬다. 


"아직 고쳐야 할 점이 많지만 어제보다 시간 초가 훨씬 줄었네요!"

"발음은 좀 틀렸는데 자신감 있게 말하는 패기가 좋네요. 내일 과제도 기대할게요"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라도 과제를 보내주셨네요. 매일매일 공부를 한다는 거 자체가 대단한 겁니다"

"과제에서 열정이 뿜뿜 느껴지네요. 저도 에너지 뿜뿜 받고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출석률만 변한 게 아니다. 녹음 파일을 들어보면 목소리에서 자신감과 즐거움이 느껴졌다. 출석률과 같이 수치로 나타낼 수 없지만 학습 의욕이 강해졌음을 느꼈다. 몇몇 학습자는 피드백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의욕적이고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필자도 변했다. 과거 다소 기계적으로 피드백을 줬다면 지금은 시간이 좀 걸려도 한 명 한 명 진심을 담아 코멘트를 단다. 필요하다 싶으면 마이크로 녹음해서 음성 파일을 보내기도 한다. 학습자 실력이 늘면 내 실력이 는 것 마냥 신나고 목소리에서 스트레스가 느껴지면 필자도 슬프다.



돈으로 살 수 없는 학습 열정

그렇다. 스위스 국민들의 시민의식처럼 학습 열정도 돈으로 매수할 수 없다. 오히려 금전적 보상이 개입되면 개인적인 학습 목표가 타락한다. 


스스로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자긍심, 올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는 뿌듯함, 발전하고 있다는 성취감,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자아발전의식을 깎아먹는다. 그리고 나중에는 원래 목표는 잊고 할인을 위해 공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매일매일에서 오는 학습 열정은 결코 순간적인 금전적 보상을 이길 수 없다. 


그러니까 필자는 과거에 큰 실수를 했다. 할인 금액으로 나가는 마케팅 비용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학습자들의 학습 의욕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나아가, 공부하고자 하는 열정을 약화시키고, 자칫하면 변질시킬 수도 있었다. 공부는 스스로 알아서 할 때 가장 치열하고 열심히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학습 동기는 외부로부터 주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주어진다 하더라도 일시적일 뿐이다. 동기부여 강연 영상은 하루가 지나면 약발이 다한다. 누구도 공부하는 매 순간 환급받을 금액을 생각하지 않는다. 학습 욕구는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감정이며 인지할수록 점점 더 커진다.


우리가 왜 영어 공부를 하는가를 묻고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다. 며칠 전 수강생으로부터 받은 답변을 공유하면서 글을 마친다.


Q. 영어 공부는 왜 하시려고요?

A. 딸아이에게도 영어를 잘하는 아빠가 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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