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왜 잘해줘도 싫다고 난리야

모든 직원이 다 성장하고 싶은 건 아니다.

by ronda

우리 팀에는 MD파트, 물류파트, 디자인파트가 모두 같은 팀으로 묶여 있었다. 각 파트별로 파트장이 있었는데 디자인파트에 파트장은 오랫동안 공석으로 있었다. 그래서 우리 팀장님이 디자인파트장까지 겸직하다 보니 이런저런 문제가 많았다. 팀장님은 외부에서 계속 디자인파트장을 뽑으려고 하다가 맘에 드는 사람이 없자 김대리를 파트장으로 올리는 건 어떻겠냐 물으셨다. 김대리가 아직 파트장 하기에는 경력도 실력도 부족했지만 디자인파트 초창기 멤버였고 조용조용한 성격에 성실하기도 해서 괜찮겠다 싶었다. 외부에서 검증 안된 사람을 데려오느니 김대리를 파트장으로 올려서 키우는 것이 동기부여나 조직분위기 차원에서도 좋을 거란 판단이었다.


그런데 막상 김대리 본인은 시큰둥 한 모양이었다. 팀장님이랑 여러 번 면담하는 걸 보니 김대리가 한 번에 오케이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김대리랑 둘이 있을 시간이 있어서 넌지시 물어봤다.

"김대리님, 파트장 충분히 잘하실 거 같아요."

"제가요? 저는 파트장 하기 싫어요. 제가 그럴 실력도 안되고..."

평소에 열심히 하는 걸 보면 파트장 욕심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파트장을 하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참 이상하다. 리더를 시켜줘도 싫다고 하다니..


결국 김대리는 파트장이 되었다. MD파트와 마케팅팀은 디자인파트장이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업무요청을 쏟아냈고, 이제 막 파트장이 된 새내기파트장 김대리는 업무분장하랴 일정 맞추랴 정신이 없어 보였다.


하루하루 허덕이던 김대리에게 결국 문제가 터졌다. 디자인파트는 MD파트와 마케팅팀에서 요청하는 각종 기획전, 프로모션 등에 사용되는 이미지 디자인뿐만 아니라 웹과 앱의 UI/UX디자인도 맡아서 하고 있었는데 본사에서 디자인 품질에 대한 지적이 내려온 것이었다. 우리 회사 이사님이 여러 번 본사에 불려 가시더니 결국 디자인 파트장과 디자인파트 사원 1명을 본사로 3개월 발령 내는 것으로 결론을 내셨다. 본사 디자인실에서 최소 3개월 이상 함께 일하며 실력을 키워오라는 것이었다.


회사 사람들은 모두 축하한다는 분위기였다. 본사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회사였고 시설도 좋고 규모도 크기 때문에 나중에 이력서에 넣기에도 좋고, 무엇보다 쟁쟁한 실력을 갖춘 본사 디자인실 직원들과 함께 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김대리님 좋으시겠어요. 본사 디자인실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엄청 많은데 디자인실에 입사하기 진짜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경력에도 좋잖아요~"

"아니요. 전혀요. 저는 그냥 우리 회사에서 조용하게 일하고 싶어요. 왜 저를 자꾸 이렇게 힘들게 하시는지 진짜.. 저는 그냥 사원으로 조용하게 시키는 일이나 기한 내에 하면서 살고 싶어요. 저 어쩌면 그만둘지도 몰라요."


저는 그냥 우리 회사에서 조용하게 일하고 싶어요.

나는 이 말을 듣고 적잖이 충격을 먹었다. 내 성격에는 본사 보내준다고 하면 당장 오늘이라도 짐을 싸서 가고 싶을 것 같았다. 늘 뭐라도 하나 더 배우고 싶어서 외부 강의를 신청해서라도 공부하던 나에게 김대리가 너무 배부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디자인 실장님이 얼마나 잘 나가는 분인데 저분 밑에서 일하는 게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데 굴러들어 온 복을 복인줄도 모르고 걷어차려고 하다니?


모든 직원들이 다 성장하고 싶어 하는 건 아니다.

김대리는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까? 모든 직원들이 다 성장하고 싶어 하는 건 아닌가? 많은 상사들이 하는 실수가 있다. 모든 직원들은 성장하고 싶어 하고 승진하고 싶어 하며 잘 나가기를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김대리 같은 사람도 있다. 성장보다는 현상유지를 원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현상유지를 원하는데 자꾸 승진시키고 많은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면 그 사람의 성과는 올라갈까? 아니다. 오히려 동기가 저하될 수도 있다.


직원들의 동기부여에 대해서 연구한 해크만과 올드햄(Hackman & Oldham)의 직무특성모형(job characteristics model)에 따르면 직무(job)가 다음의 5가지 특성을 갖추게 되면 그 직무를 맡은 직원의 동기가 향상되게 되어 업무성과가 높아진다고 한다.

(1) 직무를 수행할 때 여러 가지 다양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직무
(2) 전체 공정 중에서 하나의 공정만을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A부터 Z까지 전체 공정을 담당해야 하는 직무(예를 들면 명품 가방을 만드는 장인)
(3) 다른 사람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직무(예를 들면 소방관, 의사, 교사 등)
(4) 자율성이 높은 직무
(5) 업무 결과에 대해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직무

이 5가지 특성을 갖춘 직무는 잠재적 동기부여 지수(MPS, motivating potential score)가 높아진다. 다시 말하면 5가지 특성을 갖출수록 직원들의 동기부여를 팍팍 높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해크만과 올드햄은 동일한 직무를 수행하는 모든 직원들에게 동일한 동기부여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즉 조절변수(moderating variable)가 작용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성장욕구강도(GNS, growth needs strengh)라는 것이다. 성장욕구강도는 말 그대로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개발하고자 하는 욕구를 말한다. 모든 종업원에게 MPS가 높은 직무를 동일하게 시켰을 때 성장욕구강도가 높은 직원은 신나서 열심히 하겠지만 성장욕구강도가 낮은 직원에게는 오히려 업무수행 자체가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승진, 진급, 성취에 관심이 많은 직원(GNS가 높은 직원)은 MPS가 높은 직무가 매력적일 것이다. 반면 적당한 수준의 직무에 만족하고, 책임과 권한보다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직원들에게 MPS가 높은 직무는 동기를 저하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직원들은 해고의 대상이 되어야 할까?

그렇다면 회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직원들은 해고의 대상이 되어야 할까? 늘 성취지향적이고 성장을 추구하는 직원들만이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인재로 받아들여져야 할까?


회사에는 다양한 직무들이 존재한다. 회사의 전략을 달성하는데 중요한 업무가 있는가 하면 늘 매일매일 반복적으로 수행되어야 하지만 전략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업무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업무가 하찮은 것은 아니다. 회사가 운영되기 위해서는 모든 업무가 필요하다. 다만 매출과 성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좀 전문적으로 말하자면 MPS가 높은 직무와 낮은 직무는 늘 공존해야 한다. 그렇게 때문에 인사담당자라면 직원들이 갖는 GNS를 정확하게 측정하여 직원들의 GNS와 직무의 MPS를 잘 매칭하여 업무를 배치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MPS가 높은 직무에는 GNS가 높은 직원을, MPS가 낮은 직무에는 GNS가 낮은 직원을 배치하는 방법을 잘 활용해야 모든 직원들의 동기부여가 올라가고, 결국 높은 성과를 달성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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