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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id Kang May 05. 2016

제주흔적#12

슬로비제주 2016_02




제주를 '혼자' 여행하다 보면

의외의 곤란함을 겪게 되는 것이 '끼니' 이다.


제주를 대표하는 음식들로 알려진

갈치와 흑돼지요리는 기본 2인분부터 시작되며

회는 뭐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특히나 육고기 냄새를 잘 맡지 못하여

육고기를 메인으로 하는 대부분의 요리는

목 넘김이 불가능한

이상한 식성을 가진 이런 사람은

주로 면이나 그를 포함한 분식에 의존하게 되는데

거기에 또 '고기'를 제하게 되면

선택의 폭이 상당히 좁아진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는 얘기다.




2월 하고도 어떤 날의 제주 슬로비



언제부터였던가,

'육지인'들의 제주 이민 바람이 불면서

제주에는 다양한 형태의 '숍shop'들이 생겨났다.


그들이 갖고 있는 개인적 취향과 고유한 철학에

'제주의 것local'들을 녹여낸

오직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문화 공간,


아마 여기 이 브런치를 통해 남겨놓는

제주 흔적의 상당 부분은

그러한 문화가 결집된 공간들이

차지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제주 슬로비' 또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제주 슬로비 소규모 클럽을 위한 테이블



제주 슬로비는

사회적 기업인

'오가니제이션 요리'에서 운영되고 있는

'영셰프 스쿨'을 통해 배출된

젊고 감각있는 청년 셰프가

주방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프렌치 스타일을 기본으로 하고

거기에 제주의 색을 입힌 느낌의

흥미로운 메뉴들이 눈에 띄는 곳이다.




6인용 테이블을 나홀로 여행자에게 웃으며 안내해준 슬로비 만세



슬로비 제주로 지도 검색을 하고

마침내 맞닥뜨린 건물의 외관을 보며

고개를 기울인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흔히 마주하게 되는 음식점의 풍경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애월리사무소'를 개조해

지금의 제주 슬로비가 된 것을 알고 갔음에도

어쩐지 설득력이 없는 그러한 풍경에

생경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서울 **동에 거주하는 내가 이를테면

'동사무소'에서 밥을 먹는 것인가 생각하니

한편으론 재미있게 다가오기도 했다.




웰 컴 , 제 주 슬 로 비



앞서 얘기한대로

고기 냄새를 맡지 못하는 이상한 식성을 가지고

혼자서 여행을 하는 사람에게

제주가 내주는 음식들은 실로 한정적이었다.

그런 내게 제주 슬로비의 발견은

너무도 반가운 것이었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제주 슬로비의 모든 식재료는

제주의 것들로 이뤄져 있기에

로컬 푸드에 대한 열망을

충족케 한다는 점이다.


각 메뉴의 타이틀 또한

제주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하다.




그간의 공백을 말해주는 듯한 달라진 메뉴판, 아래는 과거의 메뉴판




한번은

무척 시린 겨울바람이 불던 날의 제주였는데

농부의 스푸를 먹고 위안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부터 농부의 수프는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제철에 난 제주의 채소들이 듬뿍 들어가 있어

맛과 건강을 동시에 채우는 느낌이 든달까.


함께 나오는 제주 돌빵의

바삭한 식감과도 잘 어울린다.




농부의 수프와 제주 돌빵




그리고

기분 탓이었지는 모르겠지만

계절에 따라 농부의 수프의 빛깔도

조금씩 다르게 느껴졌다.


어쩐지 구좌 당근이 제철인

늦겨울 농부의 수프가

좀 더 당근 색을 닮고 있었달까.

다시한번 말하지만

기분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제주에 대한 애정과

식재료에 대한 젊고 진지한 고민

그 두가지가 보기 좋게 어울려

당신의 테이블에 오르는 곳


제주 슬로비를 만나는 경험은

꽤나 기분좋은 일일 것이다.


무엇보다 바쁜 점심시간의

나홀로 여행자에게 6인용 테이블을

아무렇지 않게 내주는 곳은

흔치 않으니까 말이다.




지난 2월 제주 슬로비에서의 '애 월 비 빔 밥'
'버섯퓨레'와 '나물의 간'만으로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길 것을 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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