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시텔레 2016_05
함덕에서 동일주 노선 버스를 타고
표선에서 내려 다시 가시리까지,
꽤나 길고도 고달픈 여정이었다.
예약해놓은 방에 짐을 풀고 나니 해는 이미 기울고
도저히 움직일 마음이 들지 않았다.
3년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빠이'란 이름의 펍에서
식사 가능한 메뉴가 있다는 한 스텦의 얘기에
자릴 잡고 앉아 버섯덮밥을 주문했다.
빠이를 책임지고 있는 언니 A와
타시텔레를 책임지고 있는 언니 B는
버섯이 다 떨어졌다는 얘기를 서로 주고 받다가
버섯을 지금 따.면.된.다.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 내가 타시텔레에 온 게 맞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3년전 겨울,
친한 언니와 올레 7코스를 완주(?)하고
바로 다음날 예약해놓은 '거문오름'에 오르기 위해
무리가 없는 범위 내의 숙소를 알아보는데
한 눈에 들어오는 게스트하우스가 있었다.
관광지와 거리가 먼 낯선 이름의 동네 '가시리'
그리고 그곳에 차려진 재미있는 이름의 '타시텔레'
같은 날 언니의 지인분께서 SNS에 올려놓은
네팔의 안나푸르나 등반 소식에
이상하게 마음이 복잡했는데
우리는 제주도 가시리에서
네팔의 이웃인 티벳의 문화를 체험(?)하는 것인가 하고 생각하니 흥미가 넘쳤다.
거문오름까지도 2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여서
큰 망설임없이 찾게 되었었다.
그때 언니와 내가 묵었던 방은
도미토리에 속하는 더블룸이었는데
화장실과 욕실이 멀찌감치 떨어져있어서
유일한 단점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 실제로 타시텔레를 검색하다 보면
연관 검색어에 화장실이 뜨기도 합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얼마전에 새로 마련(?)된
타시별땅의 '휴가방'에 눈길이 갔는데
혼자서 편히 쉬고 싶었던 여행이었고
무엇보다 욕실이 안에 딸려있어서 좋았다.
바로 그 타시별땅의 휴가방에서 보냈던
3일의 기록을 천천히 풀어보려고 한다.
보통 연인이나 친구와 찾는다는 휴가방을
혼자, 그것도 3일 씩이나 묵은 여행자가 드물었는지
그들(?)이 베푼 온정의 손길이란
긍정적인 의미에서
참으로 아찔(?)했으니 말이다.
짐을 풀고 문제의 '버섯덮밥'을 먹기 전까지
3일을 책임져 줄 방을 꼼꼼히 살펴보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타시텔레의 정원 겸 마당을 어슬렁 거렸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견(dog)의 무리들이
아무렇지 않게 마당에 널려(?)있었는데
모두 동네 견들로
왜 자꾸 이곳으로 집합(?)하는지 모르겠다는
타시 언니의 푸념 비슷한 얘기에 웃음이 났다.
'하지만 이곳과 너무나 어울리는 풍경인걸요'
소리내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그러한 풍경은 시도 때도 없이 펼쳐졌다.
정작 '꿀'이란 이름의 타시텔레 견은
얼마 전에 행방불명되었는데
'꿀'의 부재로 인해 발생된 쓸쓸함을 달래기위해
강아지를 입양했다는 얘기를 전해 왔다.
이름은 '나무'였다.
고양이를 제외한 동물을 보면서
무너지기가 쉽지 않은 사람인데
나무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고작 내 손바닥 정도의 몸집으로
온 힘을 다해 몸짓을 하는 녀석은
번번히 내 가슴에 통증을 선사했다.
귀여움이란 감정이 제어가 안되다 보면
종종 괴로움이란 믿기 힘든 감각을 몰고 오는데
나무가 그랬다.
보통은 고양이가 아니면 불가능한 그 일을
녀석이 해내고 있었다.
자, 이제 문제의 버섯덮밥을 가능케 한
타시펍 '빠이'으로 눈을 돌려보면
가시리의 한적한 밤이 아쉬운(?) 타시인들에게
간단한 식사 및 알콜 음료를 제공하는 곳으로
주말마다 영화제가 열리기도 하며
원석 공예품을 기본으로 각종 예술품이 판매되는
복합 문화 예술 공간으로 여겨졌다.
빠이가 갖고 있는 색채 또한
네팔과 인도 그리고 티벳이 고루 섞여있는데
당시 틀어지고(?) 있는 음악(reggae) 탓이었는지
어딘지 모르게 자메이카의 느낌도 있었다.
타시텔레는 게스트들에 한해
5천원에 아침을 제공하고 있는데
전날 미리 신청을 해야 한다.
따듯한 차와 티벳식 수제 요거트를 기본으로
메뉴가 날마다 조금씩 달라지는데
빵 반죽을 전날 미리 만들어놓고
밀가루를 넣지 않은 수프를 직접 끓이는 등
그 엄청난 정성에 과연 이 돈이 합당한가
고민하게 될 정도다.
친한 언니와 함께 타시텔레에 묵었던 그때
마당에서 목격한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 만큼
혹은 그보다 좋았던 기억이 바로 아침식사였다.
딱히 뭘 하지 않아도 좋은 타시텔레였다.
마당을 차지하고 있는 동네 견들을 벗삼아
널부러져 있어도 좋고
카페에서 귀염둥이 '나무'가 선사하는
유익한 고통(?)을 즐겨도 좋다.
혹은 방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좋은 타시텔레는
체크 인, 아웃 시간조차
따로 정해져있지 않은 곳이다.
그런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