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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id Kang Jul 14. 2016

제주흔적#16

댓그르 2016_05




'뚝배기'에 담긴 음식에 대한 첫 기억은 아마도

엄마가 끓여주신 된장찌개가 아닐까 생각된다.


국이나 찌개가 오르지 않으면

왠지 섭섭했던 우리 가족들의 밥상에

온기 이상의 열기를 유지한 채

보글보글 끓고 있는 상태로 놓여지던

그 그림이 주던 정서란

참으로 푸근하고도 정겨웠다.




지난 봄 여행, 가시리에서 첫 식사 : 해물뚝배기



제주의 토속 음식에 대한 첫 기억도

바로 그 '뚝배기'와 연결되어 있다.

제주의 계절 해물을 듬뿍 넣고

된장이나 고추가루를 풀어 바글바글 끓인 음식,

'해물 뚝배기'가 그것이다.


제주 첫 여행 당시

가장 마지막에 묵었던

중문의 한 펜션 주인 아주머니의 소개로

중문 위쪽에 위치한 식당을 찾았었는데

고추가루 간을 기본으로 한

맑고 개운한 국물 맛의 '해물 뚝배기'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그 첫 기억이 상당히 좋았기때문이었는지

'해물 뚝배기' 하면 으레 그 집이 떠오르곤 했다.

이후 해물 뚝배기로 유명한 향토 음식점부터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다던 곳까지 모두 찾아봤지만

그 집에서 느꼈던 감흥을 뛰어넘는 특별한 곳이

안타깝게도 한군데도 없었다.


헌데 지난 5월

가시리에 나흘을 머물면서

별 기대없이 들렀던

이름도 재밌는 한 식당에서

"이제까지 먹어 본 해물뚝배기 중 최고에요"

라고 주인 아주머니께 열을 내며 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댓그르 : 아직도 그 의미를 모르겠어요





가시리는 원래 돼지고기가 맛있기로 유명해서

마을 규모에 비해

꽤나 많은 돼지고기 음식점들이 눈에 띄는 곳이다.


정오에서 한참을 비켜간 시간이었는데도

사람이 붐비고 있다는 확신을 던져주는 곳들은

돼지고기를 주 요리로 하는 음식점들 뿐이었다.

문제는 육고기 냄새를 잘 맡지 못하는

몹쓸 식성을 내가 가졌다는 것이었는데

점심 때를 한참 넘길 때까지

마땅한 식당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는 중에 발견하게 된 곳이

마을에서 꽤나 멀찍이 떨어져있어

홀로 덩그러니 놓여져있다는 인상을 던져주던

'댓그르' 라는 식당이었다.


식당 입구 문에 붙여져있던

'해물 뚝배기' 가

어서 오라며 손짓을 했다.




상태로 짐작하건데 해물 뚝배기는 가장 최근의 메뉴인가봐요
마주한 창가로 보이던 가시리의 풍경들




손님의 흔적이라곤 보이지 않는 곳에

홀로 덩그러니 앉아 있으니

걱정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었다.


앞서 얘기한대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무나 맛있는 해물 뚝배기였다.

그 흔한 전복하나 없이 소박한 그림이었지만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홀로 먹고 있는게

안타까울 만큼 맛이 있었다.


제대로 된 밥과 찌개 요리가

오랜만이었던 이유가 다는 아니었을 것이다.

국물 한 점 남기지 않고

뚝배기 바닥이 보일 정도로 싹 비웠다.




젓갈 외에 간이 세지 않아서 좋았던 댓그르의 정갈한 반찬들
5월 댓그르의 해물 뚝배기는 딱새우가 듬뿍 들어있어요
건져도 건져도 계속 나왔던 딱새우
속이 꽉 찬 딱새우, 99.9




전복이나 게 하나 없이

오직 딱새우와 뚝배기의 힘 만으로

(홍합과 조개도 넉넉히 들어있다)

그토록 풍부한 맛을 냈다는 게 여전히 놀랍다.


해물이 아닌 돼지고기가 유명한 마을에서

홀로 덩그러니 놓여진,

이름도 생소한 '댓그르'라는 식당에

기가 막히는 '해물 뚝배기'가 있다는 설정도

너무나 매력적이다.


가격도 무척이나 저렴한 편이다.

가시리에 또 한번 머물게 된다면

그때도 망설임없이 '댓그르' 일 것이다.


그때는 꼭

'댓그르'의 뜻을 여쭤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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