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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id Kang Jul 07. 2016

제주흔적#15

아일랜드조르바 2016_05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 여긴 정말 너무나 좋기 때문에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어..'
라는 어리고 못난 심리가 작용하는 곳이

지난 주 '미식'을 제법 심도있게 다루는

한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것이다.


아찔한 희비가 교차되는 그 순간

반가운 얼굴이 느닷없이 등장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지난 봄

봄 볕 쏟아지던 바깥 테이블에 앉아

잔잔하고도 묵직하게 울려퍼지던

'김두수'의 음악을 듣고 있던 내게

봄 볕이 염려된다는 뉘앙스로

밀짚모자를 건냈던 조르바의 언니였다.




웰컴 투 아일랜드 조르바



5년 전 가을

월정리라는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머문 적이 있다.

2차선 도로를 겨우 마련해놓은 듯한 그곳에

이미 입소문을 타고 나름 번창(?)중인

카페가 하나 있었다.


기기 대신

모카포트를 이용해 커피를 추출하는

세상에서 가장 느린 에스프레소를 내주는 곳

지구를 사랑하는 일념 하나로

일회용 잔 사용을 권장하지 않는 곳

카페 외관의 기다란 창으로

월정리의 바다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곳


'아일랜드 조르바'


단번에 마음을 뺏겼던 그곳은

해가 바뀌고 다시 찾았을 때

다른 이름이 되어있었다.


월정리도 또한

그때의 월정리가 아니었다.




전혀 '핫'하거나 붐비지 않았던 2011년의 월정리 바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좋든 싫든 월정리가

'변화'의 바람을 타게 된 이유에 대해서

조르바를 거론하곤 한다.


한적하다 못해 황량한 느낌마저 감돌던 그곳에

조르바 이후 다양한 샵들이 등장했으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어느 순간

여느 관광지 못지 않게

빼곡하게 들어선 인파들을 보며

머무는 월정리가 아닌

지나치는 월정리가 된 현실이 안타까웠다.

무엇보다 조르바의 부재가

못견디게 안타까웠다.


그렇게 또 해가 바뀌고

여느 때처럼 혀를 끌끌차며 월정리를 지나치다

평대리라는 낯선 지명의 마을에 들어섰는데

묘한 분위가 감도는

야트막한 언덕길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일랜드 조르바' 라는 안내 표지를

극적으로 발견하게 되었다.




2013년 초여름 : 극적인 조우



그 이후로 제주,

특히나 동부쪽에 머물 때마다

조르바를 찾을 수 밖에 없었는데

여름 성수기의 물살을 탄 제주답게

온 전역이 북적일 것 같은 확신 속에서도

조르바 만큼은 예외였기 때문이다.


적당한 인파가

서로 적당히 속삭이며

한적함을 잃지 않았다.


그런 -다시 한번 못나고 못된 심리가 작용한 발언-

나.만.의.조.르.바.가

방송을 타고 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발행하려는 이유는

못나고 못된 심리를 떨치기 위함이라기 보다

화면을 통해 비춰진 조르바 언니의 표정에서

왠지 그래도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랄까.


어쩌면 조르바의 언니는

좀 더 많은 사람과의 소통을

'이제는' 바라고 있는게 아닐까 싶었다.




어떤 날, 함께 했던 친구가 택한 음료 : 댕유자 에이드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덕목 중 하나가

그 공간에 어울리는 음악을 선곡할 줄 아는가

하는 것'


이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라

'음악이 좋으면 커피맛도 좋다'

라는 일종의 확신을 갖고 있는 내게

조르바는 늘 옳다고 음악을 통해 말해준다.


가장 최근에 찾았던 지난 5월은

김두수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무릎을 탁 하고 칠 수 밖에 없었다.

(방송에선 에디트 삐아프가 흘렀노라 소개됐었다)




입구에서 바라 본 조르바의 원형 테이블 뒤 : 오디오 세트가 놓은 곳
입구 양 옆으로 놓여진 테이블 중 왼쪽




핸드드립으로 내려지는 커피를 기본으로

인도식 밀크티인 짜이와

제주 유자인 '댕유자'로 만든 에이드가

인기 메뉴인 듯 하나

나의 선택은 늘 커피이다.


단순히 음악 선곡이 훌륭하고

한적한 분위기가 맘에 들어서

조르바를 찾는다고 오해하실 분들을 위해

꼭 집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커피가 '상당히' 맛있다는 것이다.


감정의 기복이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을 한

조르바의 언니가

차분히 원두를 갈고

정수기의 물을 받아 끓이고

드리퍼를 통해 내리는 과정을

구경하는 일도 즐겁다.


내 시선은 조르바의 언니에게

어떠한 동요도 불러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자각할 때 즈음

커피가 놓인다.


그리고 항상 같은 말

무감각하지만 친절한 그 말이 따라온다.


"커피가 진하면 말씀하세요"




저는 진해서 좋답니다 , 굳이 점수를 매기자면 98점 이에요
조르바 롯지에서 묵으시려면 무려 한달전에 예약해야 해요
커피 잔 오른쪽 위로 보이는 곳이 방송에 함께 소개된 평대스낵이에요
끝으로 그 옛날의 월정리와 그곳에 있던 아일랜드 조르바를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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