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이네찻집 2016_02
애월리 버스 정류장 앞
정감 넘치는 입간판에 이끌려 들어간 찻집
슬로비 제주에서 아점을 먹고 나왔는데
급히 공항으로 갈 일이 생겨버렸다.
버스 도착 예정 시간은 37분 후
날은 춥고 바람은 거칠고
갑자기 눈도 비도 아닌 것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말을 해놓고 보니
마치 넉넉히 남은 버스 시간과
좋지 않은 날씨 탓에
어쩔 수 없이 들어간 것처럼 되었지만
언젠가 제주를 찾았을 때
한담해안로를 목적지에 두고 애월리를 지나면서
눈여겨봤던 입간판이었다.
굴림체에 대한 매력을
도무지 알 길 없어 하던 때였는데
이상하게 마음을 뒤흔드는 구석이 있었다.
메뉴의 가격이 무척이나 겸손한 느낌이었다.
특히나 티 종류가 그랬다.
이래도 괜찮은 건가 싶을 만큼
티와 커피를 놓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자몽티를 선택했다.
당연히 일회용 잔 또는 기다란 머그잔에
나올 것이란 예상을 보기좋게 뒤엎고
자몽차 특유의 빛깔이 드러나는 유리 티팟과
작고 매끄러운 찻잔 세트가 눈앞에 펼쳐졌다.
'뜨거운 물이 더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라는 친절한 멘트도 덧붙여서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가게를 지키고 있던 청년 2명 중 한분이
방금 찐 빵이라 맛있다며
쑥빵을 하나 건냈다.
배가 부른 상태에서
조금씩 뜯어먹고 있자니
빵의 맛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빵도 직접 만드시나봐요?"
라고 예의 청년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님이 만드세요. 바로 옆 집에서"
그랬다.
바로 옆집이 숙이네 보리빵
제주 가이드 북에서 익히 보아왔던
애월을 대표하는 보리빵집이었다.
빵을 다 먹어갈때 즈음
버스 안내판이 잠시 후 도착 알림을 띄웠다.
숙이네 보리빵집 옆
숙이네 찻집
따듯한 오후가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