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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id Kang Mar 29. 2016

제주흔적#7

유동커피 2016_03

2016년 2월의 어느 화요일 문을 닫은 유동커피




화요일이 휴무일인 줄 모르고 찾아갔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가게 앞을

같은 심정으로 어슬렁 거렸다.

그런다고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참을 그곳에서 배회하다 발걸음을 돌렸다.




2016년 2월의 어느 수요일 여전히 문을 닫은 유동커피



그리고 그 다음날 수요일 아침

제주를 떠나는 날이었다.

정오까지 느긋하게 머물 수도 있었던

중문 최고의 호텔을 뒤로 하고

유동커피로 향했다.

김포행 비행기 시간을 고려하니

시간이 아슬아슬했기 때문이다.


오전 11시가 막 넘어간 시간

여전히 문이 닫혀 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같은 처지의 몇몇 사람들이

같은 심정으로 가게 앞을 서성였다.




커피왕님, 도대체 어디 계십니까?




그렇게 2번이나 애를 태웠던 커피왕님의 자태를

지난 3월 제주 여행때 마침내 마주하게 되었다.

왠지 한참이나 아쉬웠던 음악같은 건

문제삼기 않기로 하고

겨우 하나 남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메뉴 판에 은혜로움이 앉아있네요



이래도 괜찮은 건가 싶었다.

메뉴 판에 적혀있는 가격을 보고

내가 읽은 것이 맞는 건가 눈을 의심했다.

제주 보통(?)의 카페들에 한참이나 못 미치는

그야말로 웃음이 절로 나는 가격이었다.


로스팅을 직접 하고

서귀포 시내 중심가에 위치

교통이 편리하다는 이점이

어느정도 작용했다 하더라도

칭찬해주고 싶었다.




커피왕의 자부심이 드러나는 메뉴판의 글귀들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와 여리고 불긋한 꽃 : 뜻밖의 케미




에스프레소나 핸드드립 또는 아메리카노로

커피왕이 제안하는 유동커피의 향을

논해볼까도 싶었지만 선택은 카페 비엔나


요즘 트렌드라는 공장형 인테리어와 대조되는

테이블 위 꽃 장식이 매우 흥미로웠다.

어쩌면 나는 그것이

유동커피의 핵심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아마도 카페 비엔나를 선택한 것은

 곳곳에 놓인 바로 그 꽃의 영향이 컸다.




투명잔에 내어 주었다면 좀 더 좋았겠지만요




크림을 돌돌 말아 올린 익숙한 비주얼이 아닌

잔 크기에 따라 평평하게 정돈된 크림 위로

잔에 그려져 있는 걸로도 모자랐는지

커피왕의 얼굴이 그려져있었다.

'푸하하하' 하고 눈으로 웃었다.





우리의 테이블에 놓여져있던 꽃장식




문제삼지 않기로 했지만 역시나 음악이 아쉽네

라고 속으로 생.각.만. 하면서 커피를 홀짝였다.

커피맛은 물론 나쁘지 않았다.


비엔나 커피가 맛없긴 힘들지 않은가 싶지만

실제로 비엔나 커피를 '제대로' 내어주는 곳은

한 손에 꼽을 정도다.

심지어 본 고장인 비엔나에서 조차

맛있게 즐겨본 기억이 거의 없다.

(비엔나에는 '비엔나 커피'라는 메뉴가 아예 없고

같은 형식의 커피를 '아인슈페너' 라고 부른다 )


이로써 제주의 단골집이 하나 또 늘었다.

발걸음으로만 치면 벌써 3번째이니

단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억지 논리를 끝으로

긴 글을 마무리한다.




유동커피 한잔 하실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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