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의 주파수

by 기미닉

평소 남의 일에 관심 갖지 않는다.

가령 흥민이 형이 발롱도르 상을 받는다면, 혹은 조선의 매운맛을 보여주겠다며 호날두를 발로 차 두개골 장외 홈런을 때리면 이곳저곳에서 대서특필 될 거다. 하지만 난 “올ㅋ 좀 치네ㅋㅋ” 이상의 반응은 안보일 거다.

내 인생 아니니까.


아, 어쩌면 아예 모를 수도 있겠다.

식사 때마다 아빠가 틀어놓는 탓에 식당 BGM처럼 불가피하게 듣는 경우를 빼면 뉴스도 남의 일 대잔치라며 언제나 멀리하니까. 올해 본 헤드라인 중 제일 중요했던 것으로 ‘아디다스 공장 대방출’을 꼽는 무지막지한 놈이다, 난.



이토록 소시오패스 같은 자세로 살고 있는데 어쩌다 보니 공공복지 사업 운영팀의 직원이 됐다.

심지어, 억지로 일어나 해야 하는 통근이 싫어서 그렇지 내가 하는 일에 진심으로 만족한다.

모순이다.


운영진에게 감사 인사를 보내는 참여자가 간혹 있었다.

최근엔 참여자 중 일부와 대면할 기회도 있었는데, 한 분은 “뭐가 어떻게 좋았다”며 말을 하다가 복받쳐 갑자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들의 인사가 나를 향한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 몇 마디에 밤새 설렜고, 보람까지 느껴버렸다.

그 뒤론 늘 마음 한 조각을 회사에 두고 퇴근하는지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와서 아무 이유 없이 회사 메일함을 열어보고 있는 날도 있다.

그럴 때면 기를 쓰고 자신에게 비아냥거린다.


‘주접 싸고 앉았네. 정신 차려, 네 앞가림이나 잘해.’


사실, 무심하려 노력 중이다.

대개 표현하지 않지만 매사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고,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예를 들면 지난 5월 A씨와 처음 만났을 때였다. 그는 인사 직전에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그 찰나에 A씨가 반지를 오른손 중지에 끼는 데에는, 그 반지가 하필 너트처럼 생긴 검정 티타늄(?) 반지인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는, 그런 반지를 끼고 있는 사람이기에 난 앞으로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추측이 이어졌다. 항상 그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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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까탈스러운 성격을 감당할 만큼 총명하지 못해 문제가 생긴다.

대학생 자취방만 한 도량 탓에 몇 명만 스쳐도 머릿속이 아사리판으로 변한다.

남의 일에 애써 눈 감고 귀를 막는 것은 이렇듯 쉽게 난잡해지는 마음을 정리하는 과정이 매번 너무 길고 때론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세운 궁여지책이다.


잘 살고자 했던 일들 때문에 외려 가끔 일이 잘 되지 않는다. 내 업무엔 ‘홍보’가 끼어있기 때문이다.

보통은 컨펌하는 역할이지만, 간혹 문구를 만들어야 할 때면 그렇게 막막할 수가 없다. 남이 좋아할 글을 써야 하는 데 내 머리엔 레퍼런스가 없어 내 말을 누군가 좋아해 줄지 아닌지 예측조차 못 하겠다.

결국, 될 대로 되라며 필사 노트와 일기장에서 문장을 끌어와 살짝 바꿔 쓰곤 했다.


일부 지원 동기에 그 문장들이 적혀있었다. 우연히 본 그 한 줄에 끌려 지원했다는 내용이었다.

딱히 누구에게도 징징거리고 싶지 않아서, 그렇지만 너무 답답해서 일기장을 봉투 삼아 쓰레기 버리듯 꾹꾹 눌러 담은 글이었는데 그게 공감이 됐단다.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들의 지원 동기가 “당신만 그런 게 아니”라며, “영 못 쓸 놈은 아니”라며 해주는 위로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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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냉담한 사람이 되기 위해 계속 노력할 작정이다.

그 때문에 일기장을 뒤적이는 멍청한 짓도 한동안은 이어질 것 같다.

다만 우연을 바란다.

방송국에서 쏴대는 주파수에 맞게 되면 들을 수 있는 FM라디오처럼 업무상 게시한 내 괴로움의 주파수가 우연히 누군가의 그것과 일치해 전해지길 바란다. 이왕이면 더 많이 전해졌으면 좋겠고, 전해진 김에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내 알 바 아니지만.

2021. 09



사족.

글을 다 쓰고 보니 문득 ‘아빠 엄마는 속이 뒤집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학위증 두 개를 받으며 졸업하긴 했지만, 내 주 전공은 명색이 신문방송학과였다. 졸업 후엔 나름 유명한 신문사로 출퇴근했다. 그런 놈이 이젠 모든 일에 “내 알 바여?”라며 아주 질색팔색을 한다.

돌연 어그러진 자식의 행보에 내심 섭섭해 ‘비싼 돈 들여놨더니 아주 잘하는 짓이다’라고 생각하셔도 무리는 아니다. 혹여 정말 그렇다면...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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