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자살시도자들의 살아감의 이야기 展(傳)
“주임님 전시 보러 오세요 :) ”
퇴근 후 지인들과 만나 첫 잔을 들이켰을 즈음, 협력사 대표님으로부터 온 톡이었다.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여러 이유로 이분과 이분의 사업에 모종의 팬심이 있던 까닭이다. 냉큼 알겠다고 답했고 그다음 날 바로 전시장을 찾았다.
뜻밖의 초대에 더 기쁜 맘으로 갔던 건 맞다. 하지만, 사실 따로 연락을 받지 못했어도 갈 작정이었다. 전시회로 마무리된 이 프로젝트에 미련이 있던 탓이다.
선발되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신청조차 하지 않은 게 못내 아쉬웠다.
몇 달 전 참여자 모집 페이지가 열린 날, 바로 신청 폼에 접속했다. 그러나 업무 일정상 제대로 참여하기 어렵다는 핑계로, 내 사연은 너무 시시해 자격 미달이라는 판단으로 빈칸을 채우지 못하고 창을 닫았다. 지금 생각해도 여러모로 옳은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남은 미련에 참여자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이곳에서 들을 얘기는 다를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에세이, TV 프로그램, 토크 콘서트... 앞서 이곳저곳에서 ‘살아감’의 이야기를 접했었다. 그런데 대개 서두가 암울할수록 마무리가 명랑하다는 점이 늘 언짢았다.
유년기에 부모님 잃고 계모에게 구박받은 불우한 소녀가 청년기에 만난 왕자님과 말년까지 오래오래 행복하게만 사는 인생을 난 현실에서 본 적이 없다. 어쩌면 신데렐라도 갱년기엔 영감탱이가 된 왕자님에게 이혼을 들먹거렸을지 모른다.
아무튼, 그들에게도 삶은 진행 중인데 어떤 묘수로 먼 미래까지 행복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너무 꼬인 걸까.
이제는 꽤 오래된 얘기다.
1년 동안 조금씩 갈라지던 마음은 그해 2월 3일 끝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너무도 잘게 부서져 내 감정이 슬픔인지 두려움인지 분간할 수조차 없었다.
그저 책상에 등을 기대고 바닥에 웅크려 앉은 채 말 그대로 숨만 쉴 따름이었다.
이따금 움찔대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꼴 보기 싫어 눈을 감으면 어느새 잠이 들었고, 눈이 떠지면 또 억지로 눈을 감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갔다.
다른 뜻은 없었다.
별안간 그저 찬 바람이 쐬고 싶어 바람막이 하나만 대충 걸쳐 입고 여의도로 갔다.
2월의 강바람은 내 바람보다 강렬했다. 뺨이 차갑다 못해 뜨거웠다. 얼굴을 들면 따귀를 맞는 느낌이라 바닥만 보며 걸었다.
발 가는 데로 걷다 보니 마포대교 위에 다다랐다. 난간에 기대서 있는 데 수면이 마치 앙고라 결 같아 보이는 게, 마치 수면 담요처럼 포근할 것 같았다.
얼마나 서 있었을까. 딱히 뭘 할 엄두는 도저히 들지 않아 다시 걷기 시작했다.
걸으며 간절히 기도했다.
난 끝까지 용기도 객기도 부리지 못한다고, 그래서 이 지경이 됐다고. 당신이 하나님이든 부처든 시바든 상관없으니 제발 지금 이 다리를 무너뜨려 달라고.
감히 자신을 지목하지 않아 약이 오르셨던 걸까. 끅끅대며 마포대교 남북단을 적어도 세 번이나 왕복했건만 응답은 결국 듣지 못했다.
배회하는 동안 얼어붙은 손발 끝이 못 견디게 아파서 아무 소득 없이 집으로 돌아왔고, 다음 날부턴 몸살에 제대로 걸려 다시 한 주를 누워서 보냈다.
안 움직이는 게 아니라 못 움직이게 되니 하고 싶은 게 마구 떠올랐다. 지난 한 해 동안 참아왔던, 혹은 그전부터 미뤄왔던 사소한 일들. 이를테면 사람 만나기, 무슨 대회 참가 같은 것들.
마침내 이불 밖으로 나온 뒤엔 이런저런 일들을 동시에 몰아붙였고, 그렇게 그 해는 정신없이 흘러갔다. 만족스러운 순간도 더러 생겼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언젠가, 친구 녀석의 말에 적잖이 놀랐다.
“그때 너 되게 불안해 보였어. 계속 행복하다고 말하는데 진심이라기 보단 강박적인 자기 암시 같았거든”
애써 숨겼는데 들켰었던 거다.
그때 난 빈틈없이 행복하고 싶었다. 행복이 빈 곳으로 빠지면 영영 헤어나지 못할까 봐 무서웠다. 그래서 행복의 공백을 바득바득 말로 채우려 들었다.
물론 공연한 짓이었다. 감정은 의지와 무관하게 나를 찾아왔고, 지나갔다.
살아가고 있었다.
메리골드의 꽃말을 찾아보니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란다.
프로젝트명을 ‘아도니스의 꽃말(영원한 행복)을 아나요’로 짓지 않은 걸 보면 대표님은 기획 단계에서 예상하신 듯하다.
어린 시절과 달리 평야가 광막하게만 느껴져 움직이기 힘겨워했었고, 전시회를 할 무렵에도 길을 발견하지 못한 참여자 A 씨의 가까운 미래를.
“여운이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겠다.”는 B 씨의 고백을.
그리고, “당신과 프로젝트를 했던 시간이 다가올 삶의 동력으로 쓰일 것”이라는 그들의 피드백까지.
뭉근한 격려를 하시려던 걸까.
비단 참여자뿐 아니라, 이 전시를 기억하는 모든 이에게.
오해일 수도 있다. 다만 내가 들은 [메리골드의 꽃말을 아나요]의 메시지는 그랬다.
지난 반년 여간 행복했던 것 같다. 동시에 그만큼 우울했다. 살아가는 중이다.
다행히도 아직은 길 위에 있는 것 대부분을 무심코 지나친다.
하지만 언젠가 어떤 이유로 이파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날이면 이 전시가, 그리고 이 회사가 떠오를 것 같다. 그랬으면 좋겠다.
정말 그런 날이 된다면 메리골드를 사러 꽃 시장에 가봐야겠다.
이왕이면 생화로 사야겠다.
시들고, 죽고, 그래서 다시 다른 메리골드를 사러 갈 수 있도록.
202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