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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토 Feb 14. 2022

엄니 유년의 서러운 맛

칼국수


마트에서 포장된 칼국수를 집어 들었다. 냉장고에 며칠째 굴러다니는 애호박이 떠오르면서 이걸로 오늘 두 사람 저녁이 될 것 같았다.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끓이는 동안 파를 썰고 표고버섯을 손질했다. 계란지단을 만들어 고명을 올릴까 하다가 귀찮아졌다. 손님상도 아니고 남편이랑 먹는 건데 계란은 풀어서 넣기로 했다.    


 

눈 내리는 첩첩 산골 오두막집. 호롱불빛에 젊은 엄마와 어린 딸인 두 사람이 흐릿하게 움직인다. 홍두깨가 지날 때마다 밀가루 반죽이 더 둥글고 커진다. 보름달로 커진 반죽은 반달이 되다가 다시 접히고 접혀서 길쭉해진다. 도마 위에 반죽을 써는 엄마 얼굴이 무표정하다. 반죽은 얼마 남지 않았다. 엄마 손이 멈추지 않는다. 네댓 살 아이는 애가 탄다. 목구멍으로 꼴깍 마른침이 넘어간다.      



“엄마, 저... 국수 꽁뎅이 한 개만 구워주세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 눈앞에 칼국수를 썰던 칼끝이 겨눠졌다.    

  

“아가리를 쳐 죽일 년... 난, 니 엄마가 아니야!.”     


아버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아궁이 가마솥의 물은 막 끓는데 아이는 칼보다 더 날카로운 새엄마 말에 눈물조차 얼어붙었다.  



시어머니(엄니)와 시동생 둘과 함께 살던 신혼시절, 근처에 사는 작은시누가 이따금 엄니를 위해 우리 집에서 칼국수 판을 벌이는 게 나는 아주 번거로웠다. 밀가루에 날콩가루를 넣어 반죽한 칼국수 맛은 내 입맛이 영 아니었다. 힘없이 끊어지는 면발에 콩가루 냄새도 비위에 거슬렸다. 게다가 큰 시누와 작은시누네 식구들이 모두 안방과 거실에서 북적이며 와글와글 떠들썩해지는 분위기도 편치 않았다. 게다가 시누들 남편의 술상도 차려야 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조카까지 어렵던 때였다. 엄니는 딸네가 와서 다 함께 모여 같이 먹는 걸 즐기셨지만.  


대식구가 모이는 날은 주로 휴일을 앞둔 전날 저녁이었다. 그럴 때 엄니는 평소에 다니는 경로당도 가지 않았다. 아침부터 마늘을 까고 텃밭에서 쪽파를 뽑아 다듬으면서 큰사위 작은사위가 좋아하는 막걸리가 있어야겠다고 가게를 다녀오시곤 했다. ‘파전은 성훈이에미(큰시누)가 와서 붙인단다.’라는 말에 나는 ‘칼국수 잔치’가 쉬 끝나지 않을 걸 예감했다. 작은시누는 오자마자 뒤란의 광으로 가더니 비닐 덮은 긴 나무 판때기를 들고 왔다.      


“올케, 이렇게 긴 도마 봤어?”     


비닐을 벗기자 그 나무가 수십 년은 족히 썼을 긴 도마란 걸 한눈에 알았다. 홍두깨도 내 키의 반이 넘는다.       

“이거 반죽해서 미는 건 나만 해. 언니두 못 혀~. 해 본 사람이나 하지, 이것두 좀 되면 박물관이나 가야지 뭐~.”      


나는 행주를 들고 거실과 부엌을 종종거리며 시누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다시마와 멸치, 건새우가 들어간 찜통에 물이 끓었다. 홍두깨를 유연하게 놀리는 시누 손에서 반죽은 점점 둥글게 커지며 얇아졌다. 나는 시누의 손끝을 눈으로 좇으며 연신 감탄했다. 진하게 우러나는 멸치 냄새가 집안에 퍼졌다. 생전 처음 보는 긴 도마 위로 접힌 반죽이 시누의 칼끝에서 일정하게 떨어졌다. 반죽은 한 뼘 정도가 남았다.     



“엄마, 이거 구워 드릴까?” “

“에그~ 그걸 뭘 구워, 그냥 다 썰지, 음음...” 

“호호... 난 국수 꽁뎅이만 보면 엄마 구워주고 싶어서 그러지, 알았어유~, 그럼 다 썰을게.”     



칼국수 포장을 뜯어 면에 붙은 가루를 털었다. 끓는 육수에 넣기 전 면 가닥 두어 개를 가스 불 위에 살짝 댔다. 가닥이 노릇노릇해지면서 부풀다 만다. 입에 넣으니 바삭하다. 우물거리자니 밋밋한 맛이 입안에서 순하고 담백하게 맴돈다.     


       

엄니는 태어나 백일도 되기 전에 친모를 잃었다. 계모가 된 새엄마와 국수꽁뎅이로 친해지고 싶었나 보다. 결혼하고 십 년도 훨씬 지나 나는 엄니로부터 국수꽁뎅이 사연을 들었다.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엄마가 생겨서 너무 좋았는데, 깜깜한 밤에 곁에 가면 너무 꼬집어 뜯어서 같이 잘 수도 없었던 엄마. 그 엄마가 해준 칼국수는 어떤 맛이었을까. ‘내가 잘 먹고살았다면 이리 오래 살았겠니’ 하던 엄니는 어느 봄날 98세로 평안히 소천하셨다.     


 

집에 사람이 안 오는 날이 도대체 언제냐고, 나는 하루도 조용히 쉴 날이 없다고 투정하면 사람 사는 집에 사람이 오는 거라고 하던 우리 신혼의 부부. 앞치마를 두르고 어머니와 시누들과 둘러앉아 칼국수 면발을 빨아올리는 소리. 파전에 막걸리 냄새가 시큼하던 공간. 그 장면이 어제 일처럼 눈에 삼삼하다. 반죽해서 밀고 썰어 끊여낸 칼국수는 엄니 유년의 서러운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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