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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ish Jan 04. 2020

당신이 매우 괴로운 상황에 놓였다면

자신을 위한 정서적 훈련은 꼭 필요하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서.

심리적으로 굉장히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불치병에 걸렸거나, 가까운 지인이 죽었을 때 아마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될 수 있다. 그 고통은, 사람마다 달라서 정확히 측정하기 쉽지 않다. 누군가에겐 너무나도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김철수'와 '나영수'라는 사람은 A 라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김철수는 자신이 다니는 회사가 매우 수직적인데다 소통 방식이 꽉 막혔다고 생각한다. 주위를 보면 꼰대 같은 상사에 말 안 듣는 부하 직원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나영수란 사람의 사회 생활은 그 반대다. 조직 문화는 매우 수평적이며 상사와 부하 직원 간 소통 방식 역시 상당히 자유롭다. 주위엔 따뜻한 조언을 건네는 상사와 착실한 후배 직원들 뿐이다. 이는 조금 극단적인 예시이겠지만, 김철수와 나영수가 A 회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디에서 달라지는 걸까?


첫 직장에서 모셨던 부장님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 회사 직원들이 느끼는 회사는 다 제각각이야. 물론 연봉, 복지와 같은 고정적인 요소에선 공통적으로 느끼는 게 있겠지. 그런데 직원이 살아온 삶의 배경, 소속된 부서, 상사의 성향이 다 다르거든. 그래서 누군가 느끼는 회사의 모습이 다 동일할 수는 없는 거야." 이와 같은 말은 너무나 단순히 요약된다. '케바케(Case by case)'. 제각기 다른 사람의 성질과 환경의 차이가 같은 현상을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본론을 꺼내보자. 당신이 무슨 일로 인하여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을까?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스트레스 대처 방식은 제각기 다양하다. 주말에 연인 혹은 배우자와 여행을 간다든지, 힐링이 되는 영화나 유튜브 영상을 시청한다든지 등이다.


그런데, 이처럼 단순한 대처 방식으론 견디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겪게 될 때가 있다. 필자도 최근에 그랬다. 꼭 정답이 될 순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심적 고통을 줄이자는 차원에서 필자의 대처 방식을 공유하고자 한다.



난 모든 것이 필연적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사회 생활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를테면 회사의 유력 부서에 배치되면 "실력의 진가를 보여주라"는 기회로 받아들였고, 한직에 배치될 땐 "좀 더 내공을 쌓으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이런 의미 부여는 때때로 강력한 삶의 메커니즘으로 작용한다. 내가 열심히 인생을 살고, 커리어를 발전시키는 과정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 부여가 가능한 성격이기에,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방식 역시 조금 달랐던 거 같다. 우선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매주'로 생활 주기를 바꿔나갔다. 첫 주 주말은 어릴 때 나만의 추억의 장소를 오랜만에 방문한다거나,  둘째 주 주말은 가족과 함께 호캉스를 떠나는 식이었다. 매주 주말이 알찼고, 새로웠으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나는 매주, 주기적으로 나에게 의미를 부여했다. 30년 넘게 산 나 스스로에게 '열심히 살고 버텨야 하는 명분'을 제공하는 동시에, 정서적으로 안정을 다질 수 있는 감정적 훈련이자 순간이 된 것이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이것이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내가 찾았던 해결 방식이었던 거 같다.




법륜스님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직장 생활이 너무 힘들어 죽고 싶다"는 신입사원에게 그는 "대기업이라는 큰 울타리가 주는 체면을 생각하면 잔류해야 한다. 체면을 생각치 않으면 나와야한다. 이도 저도 안되는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조언했던 것 같다.


이 신입사원의 예시처럼, 만약 자신이 '체면' 때문에 고통스럽게도 회사에 다녀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면, 자신 스스로를 위한 감정 회복 훈련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입, 취업을 위해 숨가쁘게 달려오느라 스스로 달래는 법을 배우는데 낯설 수 있지만, 우리는 온전히 우리를 다스리고, 견뎌대고, 더불어 사는 훈련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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