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열심히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다. 박사과정에도 어느 정도의 프로그래밍 실력은 필수다. ⓒ에니시
박사과정과 직장을 병행하면 삶이 참 고단하다. 그런데, 왜 고단할까? 한번 생각해봤다. 무엇이 날 그리 힘들게 하는지에 대해 말이다. 부족한 연구 시간? 물론 그렇다. 그런데 하루에 점심과 저녁 시간을 쪼개면 충분히 연구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불확실한 졸업 시점? 졸업은 어차피 내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도교수님의 확신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먼저 잡념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벅찬 과제를 수행하거나, 논문을 쓰다 힘이 들면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든다. '직장도 멀쩡히 다니는데 박사 학위까지 꼭 해야 하나.' 이 순간 집중력이 크게 꺾인다. 공부의 효율성도 크게 떨어지게 된다.
사회의 편견에 따른 쓸데없는 우려도 생긴다. 해외파 박사에 비해 국내파 박사를 차별하듯, 풀타임 박사 학위자에 비교해 파트타임 박사 학위자, 즉 직장 병행자에 대한 편견이 분명 존재한다.
나도 이런 편견에 따른 기우가 들 때가 있다. 언젠가 박사 학위를 평가받을 때 "놀면서 했네"라는 눈초리를 누군가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론 이런 식의 잡념이 가장 힘든데, <내게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비관적으로 예상하면서 연구에 임해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 직장에서 누군가가 가질 수 있는 부정적 시선, 가장으로서 (연구 때문에) 충실치 못한 육아 부담까지 고려하면 잡념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두번째, 헝그리 정신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연구에 임하게 되면 '별다른 적을 두지 않고 공부하는' 풀타임 박사과정생에 비해 헝그리 정신이 크게 떨어진다. 현 직장이 있으니 <언제라도 박사를 그만둘 수 있는> 심리적 유인책이 있는 것이다.
냉정히 말해, 풀타임 박사과정생은 잃을 게 없다. 연구가 일상의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대학원 행정 업무, 조교 활동도 물론 있겠지만, 생활 패턴은 연구 활동을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직장인 박사과정생은 다르다. 우선 9 to 6를 회사에서 온전히 보내야 한다. 귀가하면 피로한 몸을 간신히 깨운 오후 7시가 되어서야 연구 시간이 시작한다. 풀타임 박사과정생에 비해 연구에 대한 집중도와 몰입도가 현저히 낮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결국 '직장이 있으니 굳이 안 해도 괜찮아.'라는 안일한 현실 의식이 내 헝그리 정신을 갉아 먹게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직장인 박사과정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불충분한 공부 시간, 주위의 시선 때문만이 아니다. 나를 시시때때로 괴롭히는 비관적 심리가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심리와 싸우는 것은 직장인 박사과정생의 숙명이다. 나와 친분이 있는 한 유명 이코노미스트께서 내게 "결코 늘어지지 말라"고 충고한 적이 있다.
이 분 얘기론, 많은 직장인들이 박사를 병행하지만 <몇 년> 안에 마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개인의 능력이나 현실도 물론 있지만, 대개는 학위 초반에 비해 집중도가 떨어지고 생활이 바빠짐에 따라 연구에 쏟을 시간이 점차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40~50대 직장인 가운데 <박사 수료자>가 유독 많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 <박사 수료>와 <박사 졸업>은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어쩌면 <박사 수료>는 코스워크를 끝냈을 뿐이란 점에서 <석사 졸업>과 그리 차이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 많은 '박사 수료자'도 지금의 내가 겪는 심리에 패배한 건 아닐까. 잡념과 부족한 헝그리 정신은 물론이고, 친구도 만나야 하고, 육아도 신경써야 하고, 취미 활동도 해야 하는 일상에 더 집중하다보니 점차 연구가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그래서 박사 연구 초반에 온전히 머리를 비우는 자세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박사 학위를 받게 될 그 날, 현재 들이고 있는 시간과 노력을 꽃을 피우려면 오늘의 내가 개선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