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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ish Nov 24. 2021

"66만원짜리 신문이 꼭 필요하세요?"


신문기자 출신인 나는 연구를 할 때 해외 신문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와 같은 글로벌 경제신문이 대표적이다. 신문들의 기획기사, 칼럼, 코멘터리를 읽다보면 자연스레 연구 아이디어가 생기곤 한다. 물론, 이런 아이디어가 좋은 논문으로 이어질 거란 보장은 전혀 없다.


뭐, 연구 뿐일까. 나 같은 대학원생 뿐 아니라 학부생들에게도 해외 경제신문은 권할 만 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외신의 번역기사(2차)를 읽는 것보단, 고급 영어의 해외 기사가 심층성이 깊기 때문이다. 현지 경제 상황과 상황의 맥락을 자세히 알 수 있기 때문에 온라인 뉴스와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이래나 저래나, 영어신문 한 부를 매일 같이 읽는 습관은 학생이나 연구자에게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동네 도서관에 갔다. 책을 대출하려고 보니, 카운터에서 정기 간행물 신청을 받더라. 낼름 가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를 적었다. 한 부가 3천원(최근엔 4500원으로 오른 거 같다.), 1년 구독료가 66만원이다보니 개인 입장에선 유료 구독이 결코 쉽지 않다. 혹시라도 도서관을 통한 정기 구독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런데, 오늘 들은 결과는 꽤나 실망스러웠다. 간행물 신청 결과를 묻자 직원들 사이에서 "아, 그 66만원짜리?"라는 핀잔이 나왔다. 이미 국내 신문을 구독할 뿐 아니라 대부분 신문 구독료는 연간 10만원인데, 누구 읽으라고 이리 비싼 영국 신문을 구독하냐는 거였다.


뿐만 아니라 "영국에서 날라오는 배송료가 얼마나 비싼지 아세요?"라고 내게 묻곤 했다. 이에 나는 속으로 '파이낸셜타임스는 한국에서도 발행되는데….(배송료가 없다는 얘기)'라고 불평했으나,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진 않았다. 어차피 구독이 안 될 건데, 사소한 언쟁이 말싸움으로 번질까봐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사실상 안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나오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도서관 직원 분들 말처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를 신청해봤자 읽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수 있다. 도서관 예산이 한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애써 비싼 신문을 비치해놨는데 아무도 안 읽는다면 이 예산 낭비일 것이다. 그 책임은 누가 지나? 결국 구독에 협조한(?) 직원들일 것이다.


게다가 만약 이 신문 구독이 되었는데 읽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면? 도서관은 한 사람을 위해 예산을 낭비한 꼴이 된다. 예산 측면에서든, 효율성 측면에서든 도서관은 손해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난 도서관의 사정을 잘 이해했다.


하지만 내가 소심하게라도 항변하고 싶은 건, 그래도 도서관은 다양한 문물의 산물이 아닐까. 특히 금융교육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시대인데, 세계적으로 유력한 경제신문 정도는 도서관을 이용하는 어린 학생, 청소년, 대학생들이 자유롭게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늘 약간의 다짐을 했다. 언젠가 돈을 많이 벌 기회가 된다면, 사비로 (미래에) 내가 살게 될 동네 도서관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를 2부 비치하겠다고.


여기서 좀 더 나아가, 그동안 '한정된 예산'을 이유로 질적인 연구가 쉽지 않았던 후배 대학원생들을 위해, 내가 졸업할 학과 도서관에도 블룸버그 터미널과 같이 매우 고가이면서도 고급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는 기계를 한 대 설치하고 싶다. 사실 이런 기계가 질적인 글로벌 연구의 시발점이 아니겠는가.


요즘 글로벌, 글로벌 얘기 하는데, 화려한 건물을 짓거나 최첨단 강의실도 다 좋다. 그런데 예비 연구자들이 질적인 연구에 집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위치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항상 교육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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