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박사 학위 취득이 그리(...) 멀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대학 교수'가 될지 여부를 언급하는 건 상당히 시기상조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런 발언은, 프로 연구자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료 연구자들의 눈초리마저 살 수 있다.
그런데, 나는 5~10년 후 내 자신이 대학 교수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교수가 될 것이라고 단언하는 것은 아니다. 가능성은 낮을 것이다. 하지만 낮은 가능성이라도, 가능성은 가능성이다. 나 혼자 머릿속에서 이런 장밋빛 미래를 만들어내는 이유는 또 하나 있다. 내가 미래에 무언가 될 수 있다는 목표의식을 세운다면 이것은 현재의 나를 자극시키는 유인이 되기 때문이다.
즐거운 상상을 하나 더 추가해보자. 내가 5~10년 후 대학 교수가 된다면 무슨 강의를 가르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강의를 가르쳐야 할까? 전공 강의와 교양 강의로 나누어 한번 생각해봤다.
참. 강의명은 모두 내가 즉석으로 만든 거다. ㅎㅎ
① 재무경제
-너무 당연하다. 현재 박사 전공이 '기업 재무'이기 때문이다. ROE·ROA 같은 기업가치 평가 개념 뿐 아니라, Discount Cash Flow 모형까지 다양한 재무 분석 방법을 아우르게 된다. 물론, 우려도 든다. 정작 나는 학부 시절에 관련 수업을 그리 많이 듣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박사 전공 기초를 다지고자) 한때 재무분석사 같은 시험을 열심히 준비한 경험이 있으니, 학부 수준의 재무경제는 가르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② 기업집단론
-내 논문의 상당수는 기업집단 소속 기업과 비기업집단의 차별성을 다루고 있다. 한국 기업 환경에서 기업집단은 어떻게 태동했는지, 기업집단과 비기업집단의 CSR 활동은 어떻게 차이나는지 등의 주제를 다루곤 했다. 그래서 기업집단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좀 학생들에게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③ ESG분석방법론(대학원)
-아마 대학원, 혹은 특수대학원에서 가르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까지 내가 작성한 논문 상당수는 ESG에 대한 것이다. 조세회피, 탄소배출량과 기업가치, 탄소배출권거래제도, 주가붕괴위험 등…. 흥미로운 사실은 내 연구에서 ESG란 큰 주제는 동일하지만, 방법론은 제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이게 포인트다. 계량 분석은 기본적으로 해야 하지만, 각각의 독립/통제 변수를 계산하는 과정이 상당히 고될 수있다. 방법론을 터득하는 것은, 사실상 인내의 과정이다.
<교양 강의>
④ 경제논술 특강
-내 첫 직장은 경제신문사였다. 기자로 활동하며 우연치 않은 기회로 고교와 대학에 다니며 경제논술 쓰는 법을 특강 하곤 했다. 그러다 한 대학에서 호평을 듣게 되어, 무려 2~3년을 경제논술을 가르치게 되었다. 사실, 경제논술이라는 게 언론사 뿐 아니라 경제단체나 경제기관에 입사할 때도 통과해야 하는 관문 중 하나다. 실제로 입사용 경제논술 시험을 여러 번 통과했고 최종합격까지 했던 경험이 있으니 학생들에게도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⑤ 논증과 관점
-개인적으로 꼭 교양 강의 형태로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수업이다. 강의가 운영되는 방식은 이렇다. 정치인, 논객, 일반인 등 토론을 잘하는 사람의 영상을 2~3분 틀어준 이후 학생으로 하여금 반박하게 하는 것이다. 토론 주제에 대한 난이도가 어렵지 않은 대신, 학생들은 그 토론 영상에서 부실한 논리가 무엇인지 포착하고 이를 즉각 반박해야 한다.
내가 이런 수업을 생각하게 된 까닭은 이렇다. 정치, 경제, 사회....그 어떤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수많은 인터넷·유튜브 댓글이 달린다. 그리고 그 댓글을 단 성인들은 또 상당수가 4년제 대학 졸업생일 것이다. 그런데 막상 댓글을 보면, 건설적인 비판력 없이 좌우 이념에 매몰되거나, 자신의 고정관념에 가득찬 나머지 감정적인 글이 다분하다. 이는 지성인의 모습이 아니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사람들이 학교를 다닐 대 '자신의 의견'을 내는 법을 제대로 훈련받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일부 토론대회에 참가해본 학생들을 제외하면 '내 의견'을 내는 것을 훈련받아볼 기회가 있기나 했을까. 다들 학점 따고 취업하는데 바빴으니.
거듭 말하지만, 위 강의들은 내가 강단에 설 수 있다는 전제 아래 가능한 것이다. 실제 교수가 되더라도 사정에 따라 가능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이거다. 나는 가르치는 일을 연구 만큼이나 좋아한다. 다른 연구자에 비해 그래도 좀 사회 생활을 하며 터득한 것을 다음 세대와 나누길 바라고 있다. 목표를 이루지 못 한다면, 어떤 형태이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