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후뢰시맨이 한국에 왔다. 얼핏 예전에 유튜브를 통해 후뢰시맨이 내한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하긴 했다. 그날이 엊그제였나보다. 레드후뢰시, 그린후뢰시, 블루후뢰시, 핑크후뢰시 등을 맡았던 배우분들이 국내 30~40대 팬들과 만나는 자리였다고 한다. 이 행사를 기획한 컴투스홀딩스는 실로 대단한 기획을 했다고 난 생각한다. 800명 준비한 좌석에 500명의 관객이 오며 큰 관심을 받았다. 이제는 직장인, 가장이 된 30~40대 남성, 여성에게 잊지 못 할 추억물을 마련해줬다.
이제 기억하는 이는 많진 않겠지만, 내게도 후뢰시맨과 각별한 기억이 있다. 2007년 Daum 블로거로 혼자 자비를 서서 레드후뢰시(타루미 토타씨)를 인터뷰를 하러 갔던 기억, 그리고 10년 후, 중앙 일간지 기자로서 그를 다시 한번 인터뷰한 기억이다.
지금이야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 SNS가 잘 발전되어 있어 후뢰시맨을 비롯한 옛 셀럽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이 아주 어렵지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2007년, 그러니까 SNS는커녕 스마트폰도 없던 당시에는 셀럽에게 연락해 인터뷰를 기획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대학생이었던 나는 가진 것이라곤 운영하던 블로그 뿐이었다.
레드후뢰시였던 타루미 토타씨는 2007년 당시 모델 에이전시에서 모델로 일하고 있었다. 나는 쉬운 영어로 한 자 한 자 꼼꼼하게 이메일을 그의 에이전시에 보냈는데, 고맙게도 에이전시가 타루미 토타씨에게 메일을 전달해준 거 같다. 토타씨는 흔쾌히 한국 대학생 팬의 인터뷰 요청을 받아줬고, 이로써 '국내 최초 후뢰시맨 인터뷰'가 성사되었다.
2007년 당시 내가 구형 SONY 카메라로 촬영한 타루미 토타씨 사진. 웹상에 아직도 돌아다닌다.
당시 도쿄의 한 호텔 라운지에서 인터뷰가 진행되었는데, 대학생이던 나는 용돈을 긁어 모아 마련한 몇십 만원으로 작은 호텔 체류비와 비행기 티켓 값, 그리고 현지 한국인 통역비까지 마련해야 했다. 약 70만원 들었던 거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토타 씨가 대학생을 위해 시간을 내주고, 인터비 역시 비용 없이 진행해준 것만으로도 굉장히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현재 인터넷상으로 돌아다니는 당시 타루미 토타씨 인터뷰 링크가 존재하긴 한다. 물론 20년 전 인터넷 기록이다.
다만 현재까지 내가 기억하는 것은 당시 50대였던 그는 정말 하나 하나 나의 질문에 잘 답해줬다는 것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 답변은 "현실 세계의 후뢰시맨은 소방관, 경찰관과 같은 분들"이라는 얘기였다. 배우로서의 철학과 가치관이 돋보이는 대목이었던 거 같다.
당시 나의 블로그 기사의 조회는 가히 폭발적이었다.특히, Daum 메인에 뜬 내 글은 100만회에 가까운 조회를 기록했으며, 내 블로그 역시 수십만 명이 타고 들어와 서버가 다운되는 해프닝도 발생했다. 나 역시 Daum 담당자에게 급히 이메일을 보내 복구 요청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내 인터뷰를 읽은 (현재의 30~40대는) 당시 10대 후반에서 20대일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가장 젊은 소비층이 자신들의 어린 시절 영웅 인터뷰를 보게 되니 화끈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겠다.
이후 10년이 지나 중앙 일간지 기자였던 나는 당시로선 (후뢰시맨 출시 30년 기념으로) 또 한번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해당 기사는 역시 Daum과 Naver에서 큰 화제를 일으킨 바 있다.
2024년 4월, 서울에서 후뢰시맨 초청 행사가 진행됐고, 여기에 내 역할은 없었다. 하지만, 현재의 내겐 어린 시절 소중한 추억을 환기시켜주는 무언가를 내 또래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것이 상당히 소중한 경험이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에게 소식을 전달해 마음을 뭉클하게 해주는 경험은 내가 대학 졸업 후 기자가 되는데 있어 소중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현재는 기자도 아닌, 평범한 직장인인 나는 또 누군가의 마음에 뭉클한 경험을 전달할 일이 발생할진 모르겠다. 이제는 업계 전문가로, 또 한 아이의 아빠이자 가정의 가장으로서 챙기고 신경써야 할 것이 더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누구든지 하루 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는 추억과 마음 속 기억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꼭 전대물이나 히어로 시리즈가 될 필욘 없지만, 결국 과거를 추억하는 것도 오늘의 내가 더욱 힘차게 살기 위한 것일테니 말이다.
이젠 과거 내 인터뷰 기사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겠지만, 동년배로서 한 추억을 공유한 30대 후반~40대의 내 또래 분들이 하루 하루를 따뜻한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후뢰시맨이란 따뜻한 기억을 나눈 우리는 가족이자 가장으로서 누군가에게 소중한 후뢰시맨일 수 있을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