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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ish Jun 03. 2019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30대 남성에게 남긴 것

1990년대에도, 우리의 가슴에 불을 지핀 히어로가 있었다.

1986년작인 일본의 '지구방위대 후뢰시맨'.

한국의 30대 남성이라면 가슴 속에 품는 과거 전유물이 하나 있다. 바로 히어로(영웅)에 대한 추억이다.


과거를 떠올려보자. 초등학교를 마치고 발빠르게 귀가하는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다름아닌 비디오대여점이었다.


외화, 드라마 코너에 관심이 없던 우리가 항상 향하던 곳은 '맨' 코너. 후뢰시맨, 바이오맨, 마스크맨, 스필반 따위로 대표되는 영웅물이었다.


지금은 가물가물한 기억이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에게  영웅물은 팝황제 마이클 잭슨에 버금갈 정도로 각별한 존재였다.


우리에게 영웅물에 대한 인식이 사그러든 건 언제부터일까. 추정컨대, 중학교 진학 때부터가 아닐까 싶다.


우린, 참 여러가지를 경험했다. 두발 규제, 교복, 이성에 대한 관심 등…. 고교에 진학한 우린 이제 대입에 대한 부담에 짓눌리게 된다.


그렇다. 우리의 관심사는 점차 현실적이 됐다. 한때 학교 귀가길을 설레이게 했던 영웅물 따윈 안중에도 없어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의 관심사는 더욱 현실적이 다. 대학 입학 이후 군 입대, 취업 준비. 직장인이 된 우린 어느새 결혼 단계까지 우리는 거침없이 질주한다.


그제서야 우린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다. 히어로란 '로망'은 과거에나 존재하는 전유물이라는 것을. 그렇게 과거 속 우리의 히어로는 기억 속에서 잊혀진다.

 

물론, 필자도 그중 한 명이었다. 커리어 관리와 육아가 현실필자에게 영웅물에 대한 옛 기억이 되살아난 것은 지난해 영화관에서 관람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그리고 올해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계기였다.



캡틴 아메리카,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작품을 따로 따로 본 기억은 필자이게 드물었는데, 이런 히어로 한데 뭉쳐 미지의 적과 싸워나간다는 어벤져스의 스토리는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여기에 현란한 액션, 마블 특유의 세계관까지 더해진 어벤져스 시리즈는 나를 비롯한 30대 남성의 마음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한땐 마블 시리즈를 미국식 개그와 현란한 액션 점철된 돈잔치로 간주했던 필자에겐 놀라운 인식 변화인 셈이다.


90년대 초반, 초등학교(혹은 국민학교) 졸업과 함께 막을 내린 영웅물에 대한 추억은 약 20년 지나 미국식 영웅물이란 형태로 우리의 가슴에 불을 지핀 것이다. 미국식 영웅물(어벤져스) 옛 일본 영웅물(후뢰시맨 등)에 대한 기억을 대체하기 시작다.


그렇다면, 마블 시리즈가 이처럼 단숨에 치고 올라와 30대 남성들의 마음을 포섭하는 동안, 도대체 일본 영웅물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던 것인가.


일본 콘텐츠업계가 휴무에 들어간 건 아니었다. 일본은 매년 수많은 전대물을 쏟아냈다. 우주전대 큐레인저(2017년), 기사룡전대 류소우저(2018년) 등.


단지, '성인'이 된 우리가 이런 전대물들을 알 필요가 없었고, 볼 여유도 없었을 뿐이다.


반면 할리우드 광고 효과와 인기세에 힘입어 2019년의 한국을 찾은 어벤져스 시리즈는, 현실에 지친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기 유리한 조건에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2019년의 어벤져스를 관람하는 우리는 왜 30년 전의 일본 영웅물을 떠올리는 걸까? 그때의 영웅물이 똑같이 현란해서? 스토리가 유별나서? 아니다.


아마도, 90년 당시의 영웅물은 우리의 어렸을 적 추억, 소꿉놀이를 하고 친구들과 딱지 치기를 하는 유치한 문화에 대한 향수가 공유되서가 아닐까. 스마트폰과 초고속 인터넷도 없는 불편한 생활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렇다. 이미 20여 년 전에도 우리에겐 수많은 따뜻한 추억이 존재했던 것이다. 영웅물은, 어쩌면 돌아갈 수 없는 그런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촉진제가 된 것이었다.


현실에 바쁜 우리의 오늘과, 옛 추억은 영웅물을 통해 연결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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