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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까지 갖춘 직장인, 왜 논문을 못 쓸까?

수용성과 태도가 중요하다.

by enish

"박사님. 말씀주셨던 데이터 분석을 정리했습니다.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내 카카오톡 메신저에는 이런 메시지가 적지 않게 뜬다. 함께 연구를 진행하는, 이른바 '직장인 박사과정'이 논문 실적을 쌓기 위해 나에게 피드백을 요청하는 것이다. 나는 직장을 병행하며 SSCI 논문을 꾸준히 쓰고 있는데, 연간 꾸준히 논문을 내려고도 하고, 함께 연구하는 후배가 있으면 도움도 되고 좋으니 이들과 함께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다.


나에게 연구를 함께 하자고 제안하는 직장인은 여럿이지만, 안타깝게도 중도에 그만두는 이들도 꽤 있다. 이유도 다양하다. 연구 난이도가 높거나, 주기적으로 참여하기 어렵거나, 논문 작성이 적성에 안 맞거나. 애당초 육아에 바쁘거나, 연구에 시간을 내기 어려운 사람은 제외해도 이렇게 연구가 어려운 이유가 다양하니, 나에겐 꾸준한 '팀메이트'가 될 수 있는 '직장인 박사과정'을 찾는 것이 마치 옥석을 구분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퇴근하고 연구하는 직장인. ChatGPT가 그려줬다.

그런데, 연구 난이도도 적응할 만 하고, 적극성과 참여도 역시 좋지만 함께 연구를 수행하기 어려운 부류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체로 그런 이들은 산업 전문성을 갖추는 경우가 꽤 있다. 여기서 질문. 산업 전문성을 갖췄으면 오히려 산업 인사이트와 노하우가 있어서 더욱 차별성 있는 연구를 할 수 있지 않겠냐고? 그런데, 내 경험에 따르면 현실은 다르다.


자신이 속한 산업군에 전문성을 갖춘 이들이 논문까지 잘 쓰는 경우도 분명 존재한다. 내 지인도 더러 있다. 그런데 전문성을 갖춘 현업 대학원생이 논문 작성이 어려운 것은 바로 수용성에 있다. 이를테면, 내가 ESG 분야에서 오래 일하다보니 X(ESG 성과)와 Y(기업 재무 성과)는 이런 식으로 결과가 나오더라, 라는 '산업 경험'을 한번 갖추게 되면, 그 정반대의 결과도 언제든지(!) 도출될 수 있는 연구 결과와 가설을 받아들이지 못 한다. 연구자 입장에서는 선행연구에 근거하여 도출될 수 있는 다양한 연구 결과를 머릿속에 그려놓고 데이터 분석과 가설 도출 등 연구의 밑바닥 작업을 해야 하는데, '머릿속의 과거 경험'이 고집이 되어 연구를 시작조차 하지 못 하게 되는 경우가 꽤 있다.


요약하면, 연구 결과가 언제든 나의 옛 경험과 아이디어, 업무 성과에 배치될 수 있지만, 애당초 내 경험이 더욱 우선시되다보니 연구 프로젝트 자체를 시작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때로는 자신의 설익은 생각이 너무 앞서다보니, (본인이 한창 어린) 공저자인데도 불구하고 해당 프로젝트를 이끄는 교신저자에게 의문을 갖거나 몽니를 부리는 상황도 존재한다. 이러면 연구 프로젝트의 업무 체계(Chain of command) 역시 바로설 수 없다. 교신저자 입장에서도 '굳이 다른 좋은 공저자가 많은데 왜 굳이 이 사람하고...'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아마 회사 업무도 비슷할 수 있지만, 연구에 있어 원만하게 진행되려면 자신보다 경험을 더 갖춘 이 앞에서 'A4 용지'와 같은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내 업무 경험이 맞다'는 것으로 옥신각신 할 것이 아니라, 꾸준하고 성실한 팀워크로 SSCI 논문을 게재하는 것이다. 연구 결과가 나의 경험과 고집에 반대되는 결과가 나왔다면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과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한, 자신이 가진 경험과 시야가 다른 이들이 보기엔 실무 분야에 접목이 어렵다고 느껴지거나 outdate될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연구는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고, 언제든 다른 의견을 수용하는 자세를 갖추는데 도움이 되는 거 같다. 경제학 연구 분야에서도 고수가 있으며, 그 위엔 전문가가 있고, 또 다시 그 위엔 대가가 있다. 학계에 늘 겸손함과 성실성, 인품을 갖춘 교수님과 연구자들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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