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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훈 Dec 13. 2018

도량형 번역할 때...

...느끼는 번역가들만의 난감함.

영미권 책을 번역할 때면 영어 말고도 많은 것들을 번역해야 한다.

그 중 하나가 도량형이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영국과 미국의 법정 도량형은 인치파운드법(야드파운드법으로도 불리운다)이다.

우리나라의 법정 도량형인 미터킬로그램법으로 환산해서 책에 실으면 그만 아니냐고?

그게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우선 도량형의 숫자에 의미가 있는 경우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샤일록은 대금으로 그의 가슴 부분 살 1파운드를 요구했다."와

"샤일록은 대금으로 그의 가슴 부분 살 454g을 요구했다."의 어감 차이는 확연하다.

같은 무게인데도 전자는 딱 떨어지는 하나의 단위를 요구했다는 느낌인데 비해, 후자는 "왜 하필 다른 숫자 냅두고 454야?" 하는 의아함을 불러일으킨다.

두 번째로, 특정 업계에서 여전히 인치파운드법을 주력으로 사용할 때다.

우리나라에서도 자동차, 해운, 항공 업계에서는 인치파운드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자동차 타이어압을 가리킬 때 psi(제곱인치당 파운드), 배에 싣는 컨테이너 길이를 가리킬 때 20피트, 항공기의 무게를 나타낼 때 파운드...

그리고 이건 해당 업계의 국제 규약과도 같은 것이어서, 멋대로 미터킬로그램법으로 바꿔서 표기하면 외국의 동종 업계 종사자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 당연히 그 업계의 종주국은 인치파운드법을 쓰는 영미고.    

"아직도 미터킬로그램법을 쓰지 않는 미개한 양놈들!"이라고 화내는 건 개인의 자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미개한 양놈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 기술력은 물론 경제력, 군사력, 정치력을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저자가 계산을 잘 못할 때면, 본문에 수식, 또는 그 비슷한 것이 나올 경우 잘못 건드렸다가 계산이 틀리는 경우가 나올 수도 있다.

때문에 도량형 단위를 적을 때는 늘 갈등한다. 필요에 따라 환산한 숫자를 적을 때도 늘 갈등하고...

"10,000피트를 상승했다."가 피트 단위를 모르는 독자에게 어색한 만큼이나, "3,048m를 상승했다."라는 문장 역시 "48m가 왜 나오지?" 싶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편집 및 교정교열 파트에 계신 분들은 아무쪼록 헤아려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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