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텍스트어드벤처 01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동네에 멍게 장수가 왔었다. 멍게를 담은 스티로폼 박스를 싣고 트럭이 동네를 돌았다.
이런 날은 우리집에도 멍게가 한 박스 생겼다. 어머니는 멍게를 지금도 좋아하시는데, 손질과 동시에 멍게가 우리 모자의 입으로 들어왔다.
어릴 때 나는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도 없고 먹는 행위 자체에 관심이 없었는데, 이런 기억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어릴 때도 꽤 멍게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커서 조금 의아했던 점은 멍게가 생각보다 대중화된 음식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사회생활을 하고서야 처음 접해본 멍게비빔밥은 아직도 파는 곳이 드물다. 내 생활 반경 내 멍게 비빔밥 집도 손에 꼽을만큼 적어서 일부러 찾아가서 먹어야할 정도다.
횟집의 수조마다 멍게가 없는 집은 없지만 대부분 다른 주요리에 보조로 딸려 나오는 일명 스끼다시일 뿐, 멍게를 메인으로 주문하는 손님도 드물다.
광어나 우럭과 비교해보면 좁은 입지를 확실히 느낄 수 있다. 광어, 우럭이 메뉴판에 없으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대부분은 멍게가 메뉴에 없어도 인지하지 못한다.
내가 유독 멍게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다른 사람들과의 자리에서 확실히 알게됐다. 메인 회가 나오기 전에 몇 점 나온 멍게를 먹는 사람은 늘 나였고,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 사람도 나 혼자였다. 또 광어+우럭 대신 멍게+해삼 메뉴를 보면서 횟집 사장님에게 "멍게만은 안 되나요?"를 묻는 사람도 나뿐이었다.
그러면서 멍게를 선호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먹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됐다. (멍게를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도 제법 있었다!)
대개 멍게 특유의 향을 꺼리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대개 "무슨 맛으로 먹느냐"고 묻는데, 멍게는 멍게맛이라서 무슨 맛이냐고 물으시면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아쉬운 시간이 흘러가던 어느 날, 지인과 종로의 횟집에서 멍게를 먹다가 비단 멍게에 대해 알게됐다. 비단 멍게는 특유의 향이 약해서 멍게 초심자들에게 권하기에 나쁘지 않다는 설명이었다.
그뒤로 더 알아보니 우리가 먹는 우둘투둘한 아이는 멍게의 메카인 통영을 중심으로 남해안이 주서식지인 참멍게고, 비단 멍게는 동해안에서 서식하는 종이었다. 겉 껍질도 매끈하고 속살이 빨강에 가까울 정도로 진한 색을 띤다.
말이 나온 김에 돌멍게 얘기도 해야겠다. 나도 올 봄에야 처음 먹어봤는데 껍질이 두껍고 정말 돌같이 생겼다. 또 횟집에 가면 껍질을 반으로 잘라서 내주는데, 껍질을 잔 삼아 소주를 따라 마시면 바다내음을 느낄 수 있다. 기회가 되면 먹어볼 것을 권한다.
다만, 양식이 없고 남해, 제주 쪽에서만 잡히는 탓에 취급하는 집이 드물다는 점이 슬프다.
하지만 정말 슬픈 건 멍게의 성장 과정이다. 멍게는 어릴 때 바다를 헤엄쳐 다니지만 성체가 되면 한 곳에 붙박이로 지내게 된다. 하지만 이때, 지금까지 먹이를 찾는 역할을 담당하던 자신의 뇌를 스스로 소화해버린다. 한 자리에 머문채로 흘러들어오는 먹이만 먹게되면서, 에너지 소비가 큰 뇌의 필요성이 없어지기 때문이란다.
우리가 먹는 멍게는 이미 자신의 뇌를 삼켜버린 성체다.
멍게는 뿌리를 내리고 몸집을 키우다가, 아마 자신이 무슨 일을 당하는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로 그렇게 먹히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야기가 멍게처럼 쌉쌀한 뒷맛을 낼지도 모르겠다. 만약 쌉쌀해졌다면, 그건 멍게 때문이 아니다.
이유도 분명 아실테니, 뇌가 소화되기 전에 얼른 먹이를 찾아 떠나시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