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세스 2세, 영원을 꿈꾼 왕

그랜드 이집트 박물관에서 읽은 고대 이집트 이야기(4)

by 이엔 지민


딸을 키우며 내가 품었던 작은 목표가 하나 있었다. 무엇이든 털어놓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되는 것. 쉽지는 않았지만 여러 시도를 했다. 시험이 끝날 때마다 만화방에서 책을 빌려와 함께 침대에 엎드려 읽던 시간도 그중 하나였다. 그때 읽었던 만화 중 유독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 <태양의 아들 람세스>. 현대의 소녀가 3천 년 전 이집트로 떨어져 젊은 파라오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였다. 딸은 먼저 잠들었지만 나는 밤을 새워 끝까지 읽었다. 그때부터 람세스라는 이름은 내 안에 오래 남았다. 나의 이집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집트 신왕국 제19왕조와 람세스 2세


이집트 신왕국 제19왕조는 투탕카멘이 죽고 혼란스러웠던 18 왕조 이후 군인 가문에서 시작된 왕조다. 장군 출신이었던 람세스 1세는 후계자로 지목되어 왕위에 올랐지만 1년 남짓 통치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들 세티 1세는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으며 제국의 기틀을 다졌고, 그 뒤를 이어 아들 람세스 2세가 왕위에 오른다.

람세스 2세는 60년이 넘는 세월을 통치했다. 그 후 열세 번째 아들인 메르넵타, 세티 2세, 십타, 투스레트 여왕으로 왕위가 이어졌지만 람세스 2세를 정점으로 서서히 저물어갔다. 19왕조는 결국 람세스 2세라는 한 이름으로 기억된다. 그 이전도, 이후도 모두 그 거대한 그림자에 가려졌다.

람세스 2세는 자신의 위대함을 과시하는 데 천재적이었다. 그는 히타이트와의 카데슈 전투에서 사실상 무승부를 거뒀지만, 신전 벽에는 자신이 적을 홀로 무찌르는 장면을 새겨 넣었다. 패배는 기록되지 않았고 그는 스스로를 전쟁의 신이자 평화의 왕으로 만들었다.


그는 자기애가 넘치는 건축광이었다. 아부심벨 신전을 비롯해 전역에 자신의 얼굴을 새긴 석상을 세웠다. 심지어 선대 왕들이 만들어 놓은 석상의 이름을 지우고 자기 이름을 새겨 넣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이집트 유적지 어디를 가나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은 이 집요함의 결과다.

많은 아내 중에서도 그가 각별히 아꼈던 이는 왕비 네페르타리였다. 그녀를 위해 별도의 신전을 세우고 "태양은 그녀를 위해 뜬다"는 헌사를 남겼다. 절대 권력자도 결국 한 사람의 온기를 필요로 했던 셈이다.



모든 것을 가졌던 제국의 태양, 람세스 2세

그랜드 이집트 박물관(GEM) 로비(아트리움)에 서서 관람객을 내려다보는 이 석상이 바로 람세스 2세다. 이 거상은 원래 고대 수도 멤피스에 세워졌던 것으로 여러 차례 이전 끝에 오늘날 GEM의 중심이 되었다. 2018년에 가장 먼저 이곳으로 옮긴 다음 박물관의 지붕을 덮었으니 그가 이 건물의 주인이나 다름없다.

GEM의 건축가들은 아부 심벨 신전의 기적을 이곳에 재현했다. 람세스 2세가 태어난 날과 즉위일인 2월 21일과 10월 21일이 되면, 천장의 창을 통해 들어온 햇빛이 정확히 이 거상의 얼굴을 비추도록 설계했다. 고대의 왕은 현대의 건축물 안에서 여전히 태양과 만나고 있다.

석상은 상-하이집트를 상징하는 이중 왕관을 쓰고 왼발을 앞으로 내딛고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 왼발은 생명과 전진을 뜻한다. 그는 죽어 멈춘 존재가 아니라 영원히 걸어가는 왕으로 조각되었다. 그의 욕망은 결국 이루어졌다. 이집트의 모든 영광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 그는 영원히 늙지 않는 돌의 몸으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거친 돌에 깊게 새긴 이름, 람세스 2세 좌상

석상의 표면은 떨어져 나갔고 인물의 윤곽은 무뎌졌지만, 나란히 앉은 두 사람 사이에 깊게 파인 타원형 이름표인 카르투슈는 선명하다. 맨 위에는 태양신 라를 뜻하는 둥근 원반이 있고 그 아래로 진리의 여신 마트의 기호가 또렷하게 자리 잡고 있다. 우세르마트라, 67년을 통치했던 람세스 2세의 즉위명이다.

왕의 곁에는 한 여인이 어깨를 맞대고 앉아 있다. 그녀가 왕비 네페르타리인지, 아니면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그를 수호하는 여신인지 명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왕의 어깨에 얹힌 그 손길은 따뜻하다.


멤피스를 수호하는 신들과 나란히 서 있는 람세스 2세


한가운데에 선 파라오를 중심으로 양옆에 신들이 호위하듯 서 있는 삼신상이다. 가운데 람세스를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미라처럼 몸을 감싸고 지팡이를 든 창조의 신 프타가 서 있고, 왼쪽에는 암사자의 머리를 한 파괴와 치유의 여신 세크메트가 자리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 인간은 신 앞에서 작게 묘사되거나 엎드린다. 그러나 이 조각상 속 왕은 신들과 같은 크기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정중앙을 차지했다. 파괴를 부르는 전쟁의 여신과 세상을 빚어낸 창조의 신을 양옆에 둔 파라오의 모습에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 완전한 신이 되고자 했던 그의 욕망이 읽힌다. 그러나 결국 곳곳이 닳고 깨져나간 석상의 상처는 유한한 삶을 살다 간 인간의 헛헛한 흔적을 느끼게 할 뿐이다.


절대 권력의 무게와 등뒤의 체온


푸른 왕관이라 불리는 케프레시를 쓰고 두 발로 단단히 선 파라오와, 그 등 뒤에 밀착해 어깨를 감싸 안은 여신의 모습이 담겨 있다. 학자들은 얼굴의 윤곽과 발굴 정황을 토대로 이 파라오를 람세스 2세로, 뒤에서 안아주는 이를 이방의 전쟁 여신인 아나트 혹은 무트 등으로 추정한다.

여신의 두 팔이 푸른 왕관을 쓰고 전진하려는 파라오의 등 뒤를 끌어안고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 신이 왕의 뒤에 서서 어깨를 감싸는 구도는 완벽한 보호와 지지를 의미한다. 세상을 호령하고 적진을 향해 가장 먼저 앞장서야 하는 절대 군주라 할지라도, 그 무거운 걸음 이면에는 누군가 등 뒤에서 무너지지 않게 꽉 붙잡아 주기를 바라는 두려움이 숨어 있다.

여신은 마치 겁먹은 아이를 달래는 어머니나 지친 남편을 위로하는 아내처럼 파라오의 등에 몸을 기대고 온기를 전한다. 무거운 왕관을 쓴 자가 느끼는 고독과 등 뒤의 체온을 원하는 평범한 바람이 돌덩어리 속에 스며 있다.





이집트 전역에 남겨진 거대한 건축물들은 결국 람세스 2세라는 한 인간의 지독한 욕망의 결과물이다. 룩소르의 카르나크 신전과 룩소르 신전, 그리고 아스완 남쪽 누비아 사막의 아부심벨 신전은 그가 시간을 이기고 영원으로 나아가려 했던 흔적이다.


카르나크 신전의 거대한 기둥 방에 서면 인간이 얼마나 작고 초라한 존재인지 실감하게 된다. 여러 사람이 팔을 뻗어 안아야 할 만큼 두꺼운 돌기둥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그는 선대 왕들이 짓기 시작했던 건축물을 완성하면서 돌기둥마다 자신의 이름을 깊숙하게 파 넣었다. 후대의 누구도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덧쓰지 못하게 하려는 방어막이었다.



룩소르 신전은 도심 한가운데서 백성들에게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는 무대였다. 신전 입구부터 앞마당 기둥 사이사이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거대한 석상들을 수없이 세우고 입구에는 하늘을 찌르는 오벨리스크를 배치했다. 선대 왕이 만들어둔 뼈대에 자신을 찬양하는 앞마당을 덧붙임으로써, 신전으로 들어가는 모든 이들의 시선을 우선적으로 빼앗는다.

남쪽 누비아 사막 끝자락의 돌산을 통째로 깎아 만든 아부심벨 신전은 그의 자기애가 절정에 달한 곳이다. 수십 미터 높이의 거대한 람세스 석상 네 개가 오만하게 국경 너머를 향해 있다. 하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 그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왕비 네페르타리를 위한 신전을 나란히 지었다. 세상을 호령했던 왕도, 결국은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고 싶었을지 모른다.


이 세 신전은 돌덩어리로 쌓아 올린 람세스 2세의 야망이자 잊히는 것에 대한 깊은 두려움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수천 년의 바람에 깎여나간 신전의 기둥과 모래에 묻혔던 석상들을 보며, 아무리 단단한 권력도 결국 시간 앞에서는 부질없어진다는 헛헛한 진리를 마주하게 된다.




이집트 이야기는 일단 여기서 덮어두려 한다. 떠나야 할 다음 여행의 시간이 바짝 다가와 버렸다. 미처 꺼내 보지 못한 이집트의 나머지 기억들은 다음 기회에 천천히 정리할 생각이다. 이제 오래된 죽음의 시간을 뒤로하고 살아 숨 쉬는 나의 다음 길을 준비할 때다.


(집을 떠나 패드로 글을 올리니 사진 캡션을 달 수가 없다. 캡션은 나중에 달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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