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을 길들이다-(3)

이언 해킹

by st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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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는 귀추법을 맨 처음 도입했는데 ‘최선의 설명으로의 추론’라고도 불린다. 귀추법을 간략히 설명하면 “P면 Q다. Q다. 따라서 P라고 상정할 이유가 있다” 이는 논리적으로는 후건긍정의 오류이다. 하지만 가설을 설정할 때 요긴하게 쓰는 방법이다. 논리적으로 이것은 모든 경우에 참이 되지 않는다. 이 추론은 확률에 따라 참, 거짓이 좌우된다. 이번학기에 수강하고 있는 논리와사고 강의에서 연역과 귀납추론, 그리고 오류와 판단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데, 배운 지식을 직접 적용해볼 수 있는 부분이 책에 등장해 스스로 골몰해 볼 수 있었다.


어떤 명제가 귀납추론의 결론이라고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명제 하나가 참일 확률을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퍼스는 확률을 개별사건이 아닌 연속사건에 적용했으며 귀납추론의 확률은 일련의 사건에서 어떤 사건이 차지하는 상대빈도라고 생각했다. 이는 벤의 발상에서 온 것이다. 퍼스가 주사위에 대한 경향 이론을 제안할 때 ‘지향성’이라는 개념은 라플라스에게서 온 것이다.


퍼스는 논증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하나는 논증의 전제가 사실이면 언제나 결론도 참인 논증적 논증이고, 다른 하나는 논증의 전제가 사실이면 결론은 대체로 참인 개연적논증이다. 이때 전제가 계량적이라면 ‘대체로’라는 말 대신 확률로 대체할 수 있다. 퍼스는 천문학에서 사용하는 ‘확률오차’에 근거하여 이러한 논증을 모형화 했다. 이때 그는 신뢰구간 이론과 가설검정 이론의 핵심적인 근거를 제공했다.


데카르트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명석 판명한 지식을 구했지만 반대로 퍼스는 ‘오류 가능주의’이라는 명칭 아래 자신의 개념을 정리하려 했다. “인간은 오류 가능”하며 가장 최소한도로 오류 가능한 측정 과학이라도 해도 ‘개연적인 오차’가 측정결과에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는 “지식을 무제한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이는 데카르트주의에서 실재의 근거가 개별 자아에 있는 것과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또한 퍼스는 귀납법이 진리에 이르는 자기 교정 방법이라고 보았는데, 이는 상대빈도에 대한 안정적인 추정을 산출하기 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퍼스의 철학은 여러 면에서 데카르트의 철학과 대비된다. 데카르트는 방법적 회의를 통해 얻은 의심할 수 없는 지식을 그의 철학적 출발점으로 삼는데, 퍼스는 그 출발점부터 부정한다. 그는 의심을 순수한 의심과 인위적인 의심을 나누고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를 철학을 하는 데 잘못된 방법이기 때문에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데카르트의 주장과는 달리 우리가 ‘의심할 수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해킹의 접근법을 따르면, 퍼스의 오류 가능주의는 단순한 철학적 성찰의 결과물이 아니라 당시 시대의 새로운 분위기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퍼스가 오류와 불확실성과 오차를 통하여 말하고자 한 것은, 우리가 확실한 지식을 가질 수 없다는 회의주의가 아니라, 불완전한 지식을 보완하여 완전한 지식으로 나아가듯 불확실성을 받아들여 확실성에 근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퍼스와 해킹과의 사상적 연관은 실재관에서 찾을 수 있다. 퍼스는 과학적 실재론자로 분류될 수 있는데 해킹의 존재자 실재론과 유사하다. 실재는 어떤 한 시대에 충분히 인식되지 않을 수 있으나 지속적인 탐구를 통해 불완전한 믿음을 교정하게 되고 이를 통해 실재는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이러한 시각은 해킹의 존재자 실재론이 말하는 탐구활동을 통한 인식과 비슷하다. 해킹이 퍼스를 저서들에서 중요한 비중으로 다루는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양강의를 들으며 흥미를 갖게 된 주제가, 독후감대회 선정도서목록에 있어 굉장히 재미있게 읽어내려 갈 수 있었고, 배울 것이 너무 많은 책이었다. 전문적인 내용들과 학술적 주장들이 오가는 책을 읽고 있는데도 마치 한권의 재미난 소설을 읽는 것 같았다. 나의 하루에서 우연과 선택은 어떻게 일어나고 있었을까? 정류장에 도착하는 버스들 중 어느 버스를 골라 탈지, 지하철역 까지 몇 분 안에 가야할 지, 어느 출구로 나가 어떤 방향으로 걸어야 강의실에 적절하게 도착할 수 있을 지. 우리는 매일 매시간 선택의 순간마다 짧은 찰나이지만 자유롭게 내키는 대로 선택하는 것이 아닌, 사고에 의한 합리적 선택을 하려고 노력한다. 어쩌면 세계 안에서 나는 실제론 자유의지가 없는 것이다. 선택에 따른 결과를 언제나 생각하고, 내 사고의 범위 안에서 가장 합리적이다 생각하는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이런 ‘나’ 들이 모여 이 세계에는 우연이란 길들여져 없어지고, 필연만이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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