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밸런타인데이

브라보, 브라보

by stella

밸런타인데이.


아마 내 아버지는 매년 2월 14일이 밸런타인데이라는 것, 3월 14일은 화이트 데이라는 것을

모르고 계실 것이다.


크리스마스에도, "케이크는 무슨..."

하시는,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으신 이 나라의 중년이다.

미중년으로 정년을 앞에 두고 열심히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인생을 걸어오신 분이라,

본인의 생일도 엄마와 3남매가 아니면 지나갔는지도 모를 분이니


외국에서 초콜릿을 주고 사탕을 받는 것 등의 일은 신경 쓸 겨를도 없었으리라.


어렸을 때엔 내 아버지의 그런 면면이 못내 아쉽고 때론 원망스러웠다.

'-데이'마다 기분을 내고 싶은 어린 딸과 아들의 마음까지 어루만지기엔


아버지 손에는 늘 일과, 공부할 책과, 너무도 무거운 책임감이 들려있었고

우리 집 형편은 좋지 못했다.

'마이너스'에서 시작했고,

아빠는 자신의 부모를 평생 안타까워하셨다.

정작 할아버지 할머니께선 차남인 아빠보다 장남인 큰아빠를 늘 생각하셨는데도.

이런 이유들로 우리는 늘 조금씩 모자라게 먹고 쓰며 살았다.

천성이 사랑스러운 엄마가 언제나 우린 마음이 부자라고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잔고야 몇이든 부자였다.


성인이 되고 시간이 꽤 흐르고 나서야 아빠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가장의 무게가 얼마나 컸을지,

이 사회에 아버지라는 지위는 어떤 의미인지.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을지.


올해 초콜릿을 만들며 나는 마음이 조금 아팠다.

마음의 성장이라는 것은 계단식인지, 어느 순간순간 내가 이전보다 나아져 있음을 발견하곤 하는데 올해가 바로 그 '한 계단 더'올라간 시점인 것이다.

훗날 되돌아보면 '어린 게 다 컸다고 젠체하네' 하며 창피해지겠지만

정말 그랬다.

나는 아버지를 원망보다 연민과 사랑으로 더 이해할 수 있었고,

무뚝뚝한 아버지의 돌린 등에 사랑이 묻어있는 것을 보았다.

초콜릿을 만들면서는,

그것을 이제야 본 내가 원망스러워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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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밸런타인이니 화이트니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으시면서도

딸이 준 초콜릿이며 편지 빼빼로, 혹은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것은

좋아하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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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날인지 관심도 없지만

자식이 챙겨주니 좋아해하셨다는 것을,


그런 것 하나하나 챙기고 기념하며 살기엔 너무나 삶이 바쁘고 힘겨웠단 것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알았더라면 편지나 카드 위에 힘내세요 파이팅 따위의 말 대신

고맙고 행복하다, 맛있는 식사 하시고 오늘 하루 더 즐거이 보내시라 적었을 텐데..


그런 의미에서, '무슨 소용이 있냐, 낭비다' 하셔도 꿋꿋이 2017년에도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로즈데이 엄마 아빠 생신 동생들 생일 빼빼로데이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 크리스마스 17년 마지막 날까지 빠짐없이 챙길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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