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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백 있는 삶 Oct 02. 2023

열정맨!

각자 삶이지 뭐

최근에 중고등학교를 같이 나온 동창과 술자리를 가졌다. 현실적이며 냉소적인 성향을 지닌 친구이다. 학창시절부터 좋게 포장되는 상황에 사사건건 웃는 얼굴로 꼬투리를 잡는 친구였다. 그 시절부터 내가 느꼈던 것은, 이 친구는 꽤나 통찰력이 있어서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흘러가는 상황의 이면을 보는 눈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친구가 꼬집는 것들이 꽤나 진실이긴 했기 때문이다.


둘이 독대한 것은 졸업하고 처음이다. 이 친구는 그 시절 그 모습에서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변화라고 한다면, 군인인 나와 인턴이자 취준생인 친구의 신분으로 인한 대화 소재가 바뀐 것이 전부였다. 그 친구는 내가 눈을 반짝이며 떠드는 이야기들에 비관적인 반론을 꺼냈다. 나는 야망이 있는 사람이라, 현실주의적인 이 친구가 보기에 내가 하는 이야기들은 꽤나 뜬구름 잡는 듯한 이야기로 들린 듯했다.


내 의견이 계속해서 부정당하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이런 대화는 더 이상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냥 솔직히 이야기했다. "너는 예전부터 보면 진짜 현실적이야. 그래서 내 이야기가 조금 와닿지 않을 것 같아." 그때부터는 조금 다른 주제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두산 팬인데 끌려갔던, 랜더스필드 하늘

그 친구는 긍정했다. 자기는 이상주의적인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본인은 나처럼 그렇게 열정적으로 살지 못한다고. 그냥 천성이 그런 것 같다고. 그냥 적당히 노력해서, 적당히 벌고 적당히 스트레스 받으면서 적당히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와닿지 않는 목표를 바라보며, 스스로를 몰아세우면서 살지 못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 원래도 알았는데 이 날 더 확 깨은 것 같다. 이 친구는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그렇다고 그 친구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열정적인 사람에 속한다. 게으름도 많이 피우고 결정을 주저하는 시간도 꽤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열정적이다. 왜 열정적인 사람이 되었을까.


나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시절까지 학교폭력을 당했다. 꽤 심했다. 핫스팟 셔틀로 내가 내 데이터를 온전히 이용해본 날이 드물고, 쉬는 시간마다 괴롭힘 당하는 게 두려워서 도서관으로 도망가곤 했다. 쉬는 시간 끝날 즈음 교실로 오면, 내 필통의 펜들과 가방을 하나하나 창 밖으로 던지던 반 친구의 모습이 기억난다. 이 시기 부모님 두 분의 관계도 매우 좋지 않았는데,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집에서도 풀지 못했었다. 너무 힘들었다. 하루는 학교 변기에 혼자 앉아 울기도 했다.

오랜만에 꺼낸 책 속 네잎 크로바

고등학교에 올라온 뒤부터 조금씩 변했다. 좋은 친구도 많이 사귀고 이것저것 활동을 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완전히 변했다. 계속해서 내가 나를 몰아세우며 발전을 거듭하기 위해 힘 썼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지났다. 나는 다른 모습을 가지고 다른 생각을 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겨우 24살 어린 나이지만, 내 나름대로 이렇게 큰 변화를 이끈 것이 꽤나 자랑스럽다. 그러면서도, 불안하다. 과거처럼 못난 내가 될까봐. 그렇기에, 무언가를 계속한다. 그 자리에 머물러있는 것이 두려우니까. 이렇듯, 나는 열정적인 사람이 된 배경이 명확한 편이다.


한때, 더 나아지는 것 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사람들을 보며 답답하다고 느꼈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과 이야기하며, 내가 겨우 나의 잣대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됐다. 각자의 삶이 있고 생각이 있는 거다. 나는 그냥 내 생각대로 살면 된다. 나의 가치관을 남들에게도 적용하려고 하는 시도 자체가 어리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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