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중고등학교를 같이 나온 동창과 술자리를 가졌다. 현실적이며 냉소적인 성향을 지닌 친구이다. 학창시절부터 좋게 포장되는 상황에 사사건건 웃는 얼굴로 꼬투리를 잡는 친구였다. 그 시절부터 내가 느꼈던 것은, 이 친구는 꽤나 통찰력이 있어서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흘러가는 상황의 이면을 보는 눈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친구가 꼬집는 것들이 꽤나 진실이긴 했기 때문이다.
둘이 독대한 것은 졸업하고 처음이다. 이 친구는 그 시절 그 모습에서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변화라고 한다면, 군인인 나와 인턴이자 취준생인 친구의 신분으로 인한 대화 소재가 바뀐 것이 전부였다. 그 친구는 내가 눈을 반짝이며 떠드는 이야기들에 비관적인 반론을 꺼냈다. 나는 야망이 있는 사람이라, 현실주의적인 이 친구가 보기에 내가 하는 이야기들은 꽤나 뜬구름 잡는 듯한 이야기로 들린 듯했다.
내 의견이 계속해서 부정당하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이런 대화는 더 이상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냥 솔직히 이야기했다. "너는 예전부터 보면 진짜 현실적이야. 그래서 내 이야기가 조금 와닿지 않을 것 같아." 그때부터는 조금 다른 주제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두산 팬인데 끌려갔던, 랜더스필드 하늘그 친구는 긍정했다. 자기는 이상주의적인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본인은 나처럼 그렇게 열정적으로 살지 못한다고. 그냥 천성이 그런 것 같다고. 그냥 적당히 노력해서, 적당히 벌고 적당히 스트레스 받으면서 적당히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와닿지 않는 목표를 바라보며, 스스로를 몰아세우면서 살지 못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 원래도 알았는데 이 날 더 확 깨달은 것 같다. 이 친구는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그렇다고 그 친구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열정적인 사람에 속한다. 게으름도 많이 피우고 결정을 주저하는 시간도 꽤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열정적이다. 왜 열정적인 사람이 되었을까.
나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시절까지 학교폭력을 당했다. 꽤 심했다. 핫스팟 셔틀로 내가 내 데이터를 온전히 이용해본 날이 드물고, 쉬는 시간마다 괴롭힘 당하는 게 두려워서 도서관으로 도망가곤 했다. 쉬는 시간 끝날 즈음 교실로 오면, 내 필통의 펜들과 가방을 하나하나 창 밖으로 던지던 반 친구의 모습이 기억난다. 이 시기 부모님 두 분의 관계도 매우 좋지 않았는데,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집에서도 풀지 못했었다. 너무 힘들었다. 하루는 학교 변기에 혼자 앉아 울기도 했다.
오랜만에 꺼낸 책 속 네잎 크로바고등학교에 올라온 뒤부터 조금씩 변했다. 좋은 친구도 많이 사귀고 이것저것 활동을 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완전히 변했다. 계속해서 내가 나를 몰아세우며 발전을 거듭하기 위해 힘 썼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지났다. 나는 다른 모습을 가지고 다른 생각을 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겨우 24살 어린 나이지만, 내 나름대로 이렇게 큰 변화를 이끈 것이 꽤나 자랑스럽다. 그러면서도, 불안하다. 과거처럼 못난 내가 될까봐. 그렇기에, 무언가를 계속한다. 그 자리에 머물러있는 것이 두려우니까. 이렇듯, 나는 열정적인 사람이 된 배경이 명확한 편이다.
한때, 더 나아지는 것 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사람들을 보며 답답하다고 느꼈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과 이야기하며, 내가 겨우 나의 잣대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됐다. 각자의 삶이 있고 생각이 있는 거다. 나는 그냥 내 생각대로 살면 된다. 나의 가치관을 남들에게도 적용하려고 하는 시도 자체가 어리석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