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조차도 내게 득 되게 생각하기
오늘 누워서 빈둥대며 유튜브를 보는데, 영상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 주제였고, 연령대별 차이를 다루고 있었다. 20대는 누군가 나를 미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안절부절 눈치를 보며 어려워하는 반면, 30대는 “어쩌라고, 나도 너 싫어”라는 태도를 보인다고 했다. 꽤 공감이 가는 영상이었다.
비슷한 콘텐츠는 꽤 많다. 그리고 대부분 후자의 태도를 갖추라고 강조한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원래 그럴 사람이니 굳이 그들의 장단에 맞춰줄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실제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더라도, 이유 없이 본인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반발심을 갖는 것을 정답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조금 생각이 다르다.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서도 내가 더 나아질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상대방의 생각을 직접 듣고 합리적으로 판단해, 필요하다면 스스로를 고치는 것이다. 이는 굴복이 아니라 성장이다. 나아가 관계를 좋은 방향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유 없는 미움은 없다. 다만 그 이유를 당사자가 모를 뿐이다. 무심코 던진 말, 부족한 식사 매너, 외모나 냄새, 언행에서 풍기는 느낌 등… 본인은 상상하지 못한 어떤 지점에서 내가 미워질 수 있다.
여러 인간관계에서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온몸으로 수행해 온 사람으로서, 나는 미워하는 사람과 미움받는 사람 양쪽의 입장을 질릴 정도로 많이 들어왔다. 그리고 깨달았다. 미워하는 쪽에는 늘 이유가 있었다. 다만 미움받는 당사자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할 뿐이다. 누군가 나를 미워한다면,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겠구나” 하고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 이유를 알아내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나의 부족함을 직면할 수 있는 자존감, 불편한 상대와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스스로 이유를 가늠하는 일은 극히 어렵기에, 결국 상대와 솔직히 대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화를 시작할 때는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나아지고 싶다는 의지, 그리고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는 마음을 진솔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그만큼 상대에게도 꾸밈없는 대답을 요구해야 한다.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눴고, 그 이유를 알게 됐다면, 정말 내가 바꿔야 할 부분이라고 느껴질 때 고치면 된다.
물론 현실은 이상적이지 않다. 상대가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쌓인 감정을 정제하지 않고 드러내 내 마음을 더 상하게 하거나, 대화 자체를 회피하며 다른 말로 돌리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건 상대의 생각에 무조건 맞추라는 말이 아니라는 점이다. 상대의 비판을 듣고 합리적으로 수용할 부분이라면 받아들여 개선하고, 그렇지 않다면 단호히 튕겨내면 된다.
장교 후보생이던 시절, 같은 방을 쓰는 동기 한 명이 나를 유독 싫어했다. 내가 하는 행동마다 태클을 걸었고, 내가 없는 자리에서 적나라한 험담을 한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우리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동기들 거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루 종일 그 친구와 붙어 지내며 받는 스트레스가 컸다. 결국 못 참고 물었다.
“내가 뭐가 문제길래 이렇게 나를 못살게 구는 거야? 나는 훈련도 잘하고 싶고, 너랑도 잘 지내고 싶어. 내가 부족한 게 있다면 알려줘. 고치려고 노력할게.”
나는 진심이었다. 그러자 그 친구가 말했다.
“일단 정말 미안해. 나는 단 한 번도 너를 싫어한 적도 없고, 나쁘게 생각하지도 않아. 내가 별생각 없이 한 행동들이 네가 그렇게 느끼게 했다면 전부 내 잘못이야.”
겉으론 사나이처럼 시원하게 해결하는 듯 보였지만, 실상은 회피였다. 이미 많은 제보를 들은 터라 그가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모를 수는 없었다. 그날 이후, 며칠간은 잠잠했다. 하지만 개가 똥을 참겠는가. 얼마 안 가 그는 다시 태클을 걸기 시작했고, 이전보다 더 심한 욕설을 한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그러나 이미 명분은 내게 있었다. 나와의 일이 주된 이유는 아니지만, 그는 동기들 사이에서 민심을 잃었고 한 번은 소대 리더 투표에 출마했다가 60명 중 단 한 표만 얻는 굴욕을 겪었다. 지금까지도 그와 꾸준히 지내는 동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지금에 와서는 그가 나를 미워한 이유, 강한 나르시시즘 성향 등 그 친구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다.)
누군가 나를 미워한다면, 이유 없이 미워한다고 단정하고 똑같이 미워하는 데서 멈추지 말자.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 자체가 큰 의미를 가진다. 잘 풀리면 관계가 개선되고, 나 역시 부족한 부분을 하나 지운다. 설령 잘 풀리지 않더라도 괜찮다. 회피하지 않고 나섰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대는 나를 가볍게 보지 못할 것이며, 관계의 명분까지 내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