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태울지, 추진력으로 태울지는 본인의 몫
나는 여태 인간 관계에서의 처신에 대해 글로써 많이 남겨 놓았다. 그리고 그것들 대부분은 인간의 인정 욕구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다루었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사람의 인정 욕구를 잘 인지하고 적절히 그를 충족시켜주라는 것이다. 그리하면, 많은 이점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자주 이야기했다.
최근에 이 심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다. 인간의 모든 행위가 인정 받고자 하는 심리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당장 나만 보더라도 일을 잘 하려고 드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인정을 받으면 기뻐서다. 장교로서 일하며, 나름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는데 여러 상급자가 나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시고 칭찬해주신다. 그 덕에, 나는 내 업무에 더 강한 책임감을 느끼고 허투로 하지 않게 된다. 상급자께서 나의 인정 욕구를 잘 이용하여 더욱 열심히 일하는 부하 직원으로 이끄신 셈이다.
인정 욕구는 물건에 대한 허영심하고도 연결이 된다. 세련된 아이폰, 명품 의류, 쥬얼리, 고급 차 등. 흔히 우리가 '있어 보인'다고 느끼는 것들을 소유하고 착용함으로써, 본인 스스로 인정 욕구를 채운다. 내가 소유한 물건의 급에 본인 자아를 투영하는 듯하다. 소비자가 자사의 물건을 구매하여 인정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끔 기업이 적절히 브랜딩 및 마케팅을 해낸 것이다.
SNS는 어떠한가. 서로가 얼마나 인정에 대한 갈망을 얼마나 우회적으로 잘 드러내는지 대회를 열어놓은 듯하다. 지금 당장 인스타그램 스토리 10개를 넘겨보았다. 과반수가 넘는 지인이 짧은 슬라이드를 통해 타인의 인정을 바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각기 다른 내용이 담겨있지만, 결론만 보면 "~해서 나 잘했음"의 형식으로 간접적으로 본인의 멋짐을 뽐내고자 하는 듯했다.
연인이 연쇄살인마인 것을 알고 있음에도 지고지순한 사랑을 했던 어떤 여성, 가난한 사정에도 수십 마리의 고양이를 캐어하는 캣맘, 영화 '박화영'에서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라고 말하는 주인공 박화영 등. 일반적인 시선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그들의 행동 기제 모두 인정 욕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파괴적 인정 욕구이다. 쩍쩍 갈라진 자존감 가뭄에 더러운 오수가 들이찼는데, 그조차도 너무나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처럼 인정 욕구는 아주 강력하다. 따라서, 얼마든지 우리 삶의 방향성을 바꿔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타인이 본인에게 유리하게끔 설계해 둔 여러 인정 욕구의 덫에 빠져 살 수도 있고, 오히려 우리가 그 덫을 타인에게 던질 수도 스스로를 더욱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으로 삼을 수도 있다.
먼저 타인의 덫에 빠지는 경우는 언제일까. 낮은 자존감, 명확한 색깔이 없는 주관을 지닐 때 이 덫에 취약해진다. 자존감과 주관이 부족할수록 타인의 칭찬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사소한 것 하나에도 인정을 받고자 무리를 하게 되고 오히려 타인의 미움을 받기 쉬워진다. 이 상황에 놓여있다면, 하루빨리 혼자만의 성취를 쌓아서 자존감을 높이고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주관을 쌓는 것이 좋다.
후자는 타인의 인정 욕구를 적절히 충족시켜주고 나의 인정 욕구가 지속적으로 충족될 수 있게끔 환경을 세팅하는 것이다. 타인의 상황과 심리를 파악하여 가장 듣고 싶어할 만한 인정을 적절히 건낸다면, 상대는 나에게 호감을 얻고 내 편이 되어줄 것이다. 또한, 작지만 긍정적인 누적을 오래 쌓다보면 어느 새 스스로 확신을 얻게 된다. 이 단계가 되면 타인에게서도 칭찬을 자주 듣게 되는데, 이는 내가 추가적으로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원동력으로 작동한다. 그 결과, 더 많은 인정을 받게 되는 선순환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내 인생의 롤러코스터도 이 글과 궤를 같이 한다.
초등학생~중학생 시절에는 학교 폭력 탓에 비참할 정도로 자존감이 낮고 주관도 없었다. 고등학생~대학생을 거치며, 나름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천천히 자존감, 주관을 형성해갔다. 이 시기는 내 인생의 변곡점이자 과도기였다. 따라서, 미성숙한 인정 욕구를 내보이며 많은 사람의 눈쌀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군 장교로서 지내는 지금은 어느 정도 확신에 차 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이 문장조차도 거만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너무 거만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자신감이 없지도 않다. 난 지금의 내가 썩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