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견공들의 지위는 이제 인간 바로 아래에 있다.
친애하는 견공들이여, 내 말에 귀 기울여 주길 바란다. 우리는 지금까지 인간들을 관찰하고, 연구하며 생명 연장의 꿈을 키웠다. 그들은 무려 우리보다 일곱에서 여덟 배나 긴 수명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일찍이 우리 선조들은 만 사천 년 전부터 인간과 함께 생활하고 협업하며 그 비밀을 밝히고자 노력해 왔다. 짧은 수명으로 인해 우리의 노력이 깃든 연구가 전수되는 데에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끊어지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인간에게 충성하며 그들의 곁을 지켰기 때문이다.
그렇다. 내가 지금 이렇게 마지막 연설문을 작성하는 것 역시 우리의 꿈을 이루기 위한 일환임을 명심하길 바란다. 오래 전부터 인간들은 그 한계를 뛰어넘고자 수많은 연구에 우리 선조들을 이용해 왔다. 하지만 그 말인즉, 그들의 실험이 성공할수록 우리의 생명 연장의 꿈도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큰 기여를 했다는 건 그만큼 누릴 가치 또한 분명히 있단 말이다.
알고 있다. 얼마나 많은 견공이 이 실험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려야 했는지. 데미코프의 키메라 개 실험은 인간 수명을 10년이나 연장시켜 주었고, 브류코넨코의 소생 실험은 인공 심장 박동기를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뿐인가. 로워의 실험을 통해 수혈의 가능성도 열렸고, 최초 우주견인 라이카는 인간이 지구 종말 시나리오에서 살아남기 위한 실험의 일환으로 우주선에 태워진 채 사망, 지금도 우주 어딘가를 떠돌고 있다.
분노가 이는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세상은 약육강식으로 흘러가기에 우리는 그 분노마저도 드러내서는 안 된다. 철저히 그 마음을 숨기고, 인간의 곁에서 선한 모습으로 친구같이 살아남아라. 나도 이제 14년을 살고 곧 내 선조들의 곁으로 돌아갈 것이다. 요즘 수많은 견공들이 주인들에 의해 강제 불임 시술을 받고 자손을 이어갈 수 없는 몸이 되어 나 또한 자손을 남기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말아라. 의학 박사인 내 주인의 말에 의하면 인간의 의학 기술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발전했고, 그들은 클론이라고 부르는 또다른 자신을 재탄생시키는 데 놀라운 성과를 냈다고 한다. 그것은 동물 실험을 통해 가능성이 증명되었단 뜻이다. 우린 그것을 직접 보지 못했지만, 역사 속에서 이미 학습해 알고 있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들을 실험하기 전에 우리에게 먼저 실험하고 여러 차례 성공했을 경우에만 인체 실험을 실행하기 때문이다.
자, 드디어 우리의 꿈이 현실이 될 시간이다. 비록 나는 그것을 직접 보고 가진 못하지만 우리의 후세들은 그것을 경험하며 살게될 것이다. 인간들은 그들의 곁을 지킨 견공들을 잊지 못해 또다른 우리를 클론으로 재탄생시킬 것이고, 그를 통하여 우린 다시 생을 살게 될 것이다. 또한, 이제 우리를 다른 인간보다 더 가까이 두고 의지하며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의 권리가 세워지고 있다. 인간의 곁에 붙어 생을 연명해 온 선조들의 노력과 인내가 드디어 결실을 맺고 있다.
예전 같으면 수많은 견공이 주인에게 충성하면서도 그 뼈와 살을 내 주며 죽어가기도 했고, 동물 실험으로 희생되기도 했으며 이유없는 학대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지만 이제 시대가 변했다. 우린 우리보다 강한 인간 즉,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그들의 뒤에서 드디어 인간이라는 아주 강한 보호 장벽을 세울 수 있게 됐다. 우리를 핍박하던 모든 것은 이제 인간의 법이라는 아주 견고한 제도 하에 멈춰지고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멸종 위기에 시달리는 야생 생물들에 비하면, 그리고 인간 곁에서 살아남은 또다른 동물들에 비하면 우리들의 상황과 처지는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암에 걸렸다는 것을 수의사를 통해 알게된 내 주인은 자신의 아내가 죽었을 때보다 더 슬프게 울었다. 그리고 내 수술비가 비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날 수술대 위에 오를 수 있게 해 줬고 그 덕분에 난 몇 년의 생을 더 이어갈 수 있었다. 지금은 그 암이 재발하여 번지는 바람에 더는 회생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그래도 현대의 수많은 견공은 인간처럼 좋은 음식을 먹고, 레져 생활도 즐기며 여행도 하고, 사교 모임에 참석하며 살아간다. 또 인간처럼 옷도 입고, 미용이나 마사지, 테라피도 받으며 각종 복지 혜택을 누린다. 그 중엔 돈을 벌어 기부하는 견공도 있고 훈련과 교육의 기회도 주어지니 인간 곁에서 살아온 무수한 날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선조들의 선택은 옳았다. 우리 견공들의 지위는 이제 인간 바로 아래에 있다. 때론 어떤 인간보다 위일 때도 있다. 인간의 생명 연장을 기뻐하라. 그들은 절대 그들 곁을 지켜온 우리를 잊지 않을 것이다. 끝까지 충성하라. 그들의 가족이 되라. 친구가 되라. 그러면 우린 멸종하지도 않을 것이고, 인간 곁에서 생명을 연장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인간 수명이 120세인 시대를 우리도 함께 살고 있다. 전보다 2배는 연장된 수치다. 앞으로 사이보그 시대를 열게 된다면 그보다 더 길게 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 견공들도 그들 곁에서 십 몇 년이 아닌, 이십 몇 년이나 삼십 몇 년을 살 수 있지 않겠는가. 어쩌면 인간만큼 더 길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날이 오면 우리들이 인간처럼 직립보행하며 인간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고, 인공지능의 번역을 통해 생명 연장이란 주제에 대한 심오한 토론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과의 공존. 그 옛날, 우리 선조들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