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지구에 중력이 작용하는데 왜 달은 지구 표면으로 떨어지지 않나요?
달린다. 떨어진다. 또 달린다. 또 떨어진다.
큰 빌딩 앞, 강변 다리에서 기이한 도전이 이어진다. 잠시 휴식을 취하던 사람들도 턱을 괴고 그 장면을 감상한다. 강 이쪽과 저쪽을 잇는 반원 모양의 다리 옆면은 물 쪽으로 기울었다. 위치에 따라 각도가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사람이 발을 딛고 서 있을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그 점이 사람들의 도전을 부추긴다. 떨어지지 않고 경사진 벽면을 둥글게 달려 반대쪽에 도착하는 것. 누가 먼저 시작한 건지는 몰라도 삽시간에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타고 명소가 될 것임이 틀림없다.
벽 타기, 벽면 달리기쯤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이 스포츠의 전문가는 이 도전에 상금을 건다. 경사면에 모두의 눈이 쏠린다. 아마도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터다. 될 것 같은데? 하지만 그저 그런 마음으로 도전을 외쳤다가는 블랙홀에 빠져들어 가듯 강바닥으로 쏟아지고 말 것이다. 과연 성공할 자가 나타날 것인가.
이 문제를 풀려면 힘이 든다. 중력, 원심력, 마찰력 등. 지구에서 살아가는 내 몸 하나에 작용하는 무수한 힘의 존재를 새삼스레 깨닫는다. 나를 어떻게든 바닥으로 끌어내리려는 힘, 나를 어지럽게 빙글빙글 돌려 똑바로 걷지 못하게 하는 힘, 내 걸음마다 힘들게 브레이크를 밟아 멈추게 하려는 힘. 그것이 사람이든 환경이든 저항 속에 살아가는 건 과학만큼이나 확실하다.
발 빠르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의 도전이 이어진다. 직접, 간접 학습을 통해 그들은 속도를 높이기도 하고, 최대한 윗부분을 따라 달리기도 해 본다. 그런데 이 잘난 힘들을 모두 동원해도 성공의 계산법을 찾기는 여전히 힘들어 보인다. 그것도 아니라면, 애초에 인간의 속도로는 불가능한 도전일까. 답답함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이 어려운 문제에 힌트를 주려는 듯 희미한 낮달이 떠 있다.
엄마, 저 달 좀 봐요. 엄청 크지 않아요? 둘째 아이가 운전하다가 말고 호들갑스럽게 소리쳤다. 처음 시애틀에 왔을 때, 한국보다 훨씬 가깝게 보이는 달의 모습에 놀랐다. 위도 때문에 그럴 거로 생각했으나 사실 그건 착시라고 하니 과학은 지금도 여전히 호기심으로 인간을 끌어당기고 있는 듯하다. 과거의 달은 실제로 더 크게 보였다. 지구가 지금보다 세, 네 배는 더 빠르게 돌았을 때 이야기다. 현재 거리를 유지하는 데에 또 다른 힘인 조석력이 개입했고, 둘은 지구의 인력으로 인해 부딪히지 않는다.
뉴턴은 사과가 떨어진 자리에서 환호성을 올렸을 테지만 나는 내 인생의 사과가 떨어진 자리에서 비명을 질렀다. 그 상황에도 중력은 작용했다. 무거워진 머리가 떨궈졌다. 눈물도 마룻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팔다리도 축축 처졌고, 내 모든 시간이 바닥에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절망이 창문 가득한 달처럼 착시를 일으켰다. 지구 위 아주 작은 생명체는 밀물 속도에 못 이기고 익사할 것만 같았다.
한 남자가 출발선에 섰다. 그리고 그의 발이 세게 바닥을 치고 올랐다. 강가에 모인 모두가 기대 없이 그를 바라봤다. 근육이 대단하지도, 힘세거나 빨라 보이지도 않았다. 그는 평범한 웃음을 가볍게 날리며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그가 달린다. 과하지 않은 포물선이 다리 옆면을 타고 오르다가 떨어졌다. 그리고 그는 순식간에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갔다. 도파민이 불꽃처럼 사방에 팡팡 터졌다. 블랙홀 같았던 강물이 그저 잔잔히 흘렀고, 온갖 과학의 힘이 장애물을 깔아놓은 것 같았던 다리가 어느 시골의 작은 다리처럼 순박해 보이기까지 했다. 자기도 모르게 반응한 인간의 초능력은 때때로 정확한 계산 없이 스스로 발현된다.
착시의 시간은 무사히 지나갔다. 나를 끌어당기던 힘을 밀어내고 그보다 더한 힘으로 일어났다. 도저히 힘이 나지 않는 날엔 주변에서 작은 손을 내밀어 힘을 보태어 주었다. 방향은 달랐지만, 묶인 곳은 하나였다. 또한, 그 가파른 경사면을 곧바로 오르는 대신 빙글빙글 돌아갈 때도 있었다. 많은 시간을 들였어도 힘이 분산되어 적은 힘으로 꼭대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다 올라온 후 대면한 달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현장에서 상금은 현금으로 지급됐다. 이 일로 인해 남자의 하루는 영웅담으로 가득 찰 것이고, 동료들에게 커피 한 잔을 돌릴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사과가 떨어진 자리에서 사과가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는 점이다.
달과 지구에 중력이 작용하는데 왜 달은 지구 표면으로 떨어지지 않나요? 이 질문에 과학자들은 이렇게 답한다. 달은 계속 지구를 향해 떨어지고 있습니다. 단지 땅에 떨어지지 않을 뿐입니다. 달에는 중력 말고도 원심력이 작용하기 때문에 계속 바깥으로 밀려나기 때문이죠.
어쩌면 인생의 바닥을 쳤다는 말은 없는 말인지도 모른다. 뉴턴의 광신도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인생에는 중력 이외에도 원심력과 같은, 우리를 바닥에 닿지 않게 하려는 힘이 함께 작용한다. 그건 신의 마지막 선물이지 싶다. 오늘도 열심히 경사면을 달리는 모두에게 손을 모아 초능력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