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의 별

모든 단어가 서로를 끌어안고 바닥을 뒹굴었다.

by Boradbury


난 그녀의 노래를 듣는다. 난 그녀를 모른다. 그녀가 부르고 있는 노래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내 느낌을 글로 적어 남겨두고 싶다. 뭐라고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 분위기, 그녀의 눈빛, 그녀의 손짓, 주변을 둘러 싸는 악기들의 향연, 알 수 없는 언어. 그 모든 것이 내게 낯설다. 하지만 그래서 좋다.

“오늘은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

하온이 벽돌 같은 가방을 내려놓으며 의자를 끌어당겼다. 바닥을 긁는 소리가 거슬렸지만, 랩탑 위의 손가락을 멈추지 않았다. 검은 키들이 장작 타는 소리를 내며 흰 화면에 숯 자국을 찍는다. ㄱㄴㄷㄹㅁ... ㅏㅑㅓㅕㅗㅛ...

“뭐 시켰어?”

“그냥 여기 시그니처.”

랩탑 옆에 홀로 놓인 칵테일 잔엔 블루와 핑크가 겹겹이 쌓여 있다. 그 위로 아슬아슬하게 걸린 아주 작은 벌집 한 조각이 윤기 있게 반짝인다. 하온도 같은 것으로 시켜놓곤 휴대전화의 소리를 죽이고 뭔가를 빠르게 검색한다.

“처음 보는 싱어네. 목소리 완전 내 스타일.”

“방해돼. 입 다물고 하던 일이나 해.”

“오케이, 오케이.”

난 하온에게 길게 말하지 않는다. 글 쓸 땐 더욱이 말을 아낀다.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걸 막기 위함도 있고,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서도 있는데 그것을 잘 아는 하온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는 편이다.

내게는 특히 아끼는 시간이 있다. 외계의 별을 찾았을 때. 난 그럴 때 ‘좋다’는 말보단 ‘뭐지?’라고 계속 되묻는다. 그건 감탄사다. 지금껏 맛보지 못한 것을 입안에 넣을 때 내 모든 감각은 팡팡 터지는 별들의 이름을 묻는다. 그 별의 이름은 뭐야? 그 별의 이름이 대체 뭐냐고. 당장 알아야 해. 꼭 알아내야 해. 비슷하지만 점차 증폭되는 그 질문들에 명확한 답을 던지기보단 그 별 속으로 들어가려고 눈과 귀와 손을 뾰족하게 간다. 연필 끝처럼 아주 뾰족해졌을 때 흰 종이 위에 모든 데이터를 적어 내려 간다.

그녀의 목소리. 처음은 쇠 맛이 나다가 점차 벌집 조각 맛이 나고 그 다음엔 맥주 거품처럼 서서히 가라앉는다. 그녀의 노래. 아무도 없는 밤바다를 조용히 걷다가 만나는 반짝이는 형광색 모래, 머리카락 사이를 멋대로 헤집고 사라지는 따스한 나라의 바람 그리고 낮은 나무에 달린 보라색 꽃에서 퍼지는 향에 검은 속눈썹이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앉는다. 그녀. 밤하늘을 길게 덮은 머리는 밀려드는 파도처럼 굽이친다. 작은 위성 같은 두 눈은 가끔 열릴 뿐 무겁게 눈두덩이를 누른다. 웅얼거리는 입술은 희미한 불빛에 탈색되어 본연의 색이 무엇이었는지 영 모르겠다. 각종 색깔의 보석이 박힌 반지는 그녀의 손이 허공에 느릿하게 곡선을 그릴 때마다 별빛을 낸다.

“와우, 오늘 밤에 시애틀에서 오로라를 볼 수 있대.”

하온이 휴대전화에서 건져 올리는 건 거의 내가 이미 아는 것들이다. 그는 할 일 없을 때만 뉴스를 찾아보지만, 난 아침, 점심, 저녁으로 뉴스 창에 새로 고침 버튼을 누른다.

“저번에도 보러 나갔다가 허탕 쳤잖아.”

“그래도 휴대전화로 찍었더니 보이긴 했잖아. 그게 어디야?”

“눈에 보이지 않는 걸 좇는 건 피곤해.”

“넌 창작하는 사람치곤 너무 현실적이야. 오히려 어떨 땐 프로그래머인 내가 더 관념적이라니까.”

“그래서 보러 갈 거야? 저번처럼 바닷가로? 아니면 좀 더 트인 곳으로 갈 거야? 드라이브 오래 하는 건 무리야.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해서.”

“너 저번에도 똑같이 말했어. 토시 하나 안 틀리고. 그래서 바닷가로 간 거잖아. 오늘도 그 방법밖엔 없다고 아주 못을 박네, 못을 박아.”

하온은 오로라에 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언젠가 리모트로 일을 옮겨 캐나다에 몇 달 살러 가자고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신혼여행은 꼭 아이슬란드로 가자고 하기도 했다. 그 추운 델 왜, 라고 답하려다가 말았다. 내가 그의 환상을 깰 필요는 없을 테니.

낯선 것에 끌리는 내 호기심이 하온과의 관계를 이어줬다는 것에 감사하다. 내게 미국은 아직 인류에게 발견되지 않은 외계의 별, 영어는 외계어 같았다. 그 별을 정복해 보고자 선택한 이 년짜리 인턴십은 그가 오로라를 좇는 것 같은 환상이었다. 그리고 서블릿 룸메이트로 만난 그는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한 외계인이었다. 외계에서의 이름은 케일럽, 나를 만나고 자기 멋대로 구글링해서 지은 한국 이름은 하온이다. 그는 그 이름이 마치 프랑스 이름처럼 우아하게 들린다고 했다. 그럴 거면 차라리 프랑스 이름을 지을 것이지 왜 굳이 한국 이름을 지은 건지 알 수 없지만 그는 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 레옹, 하온. 뭐 그런 정도의 유사성을 찾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의 방문 틈으로 새어 나오는 소리는 죄다 정상적이지 않았다. 가끔은 세상 떠나갈 정도로 울다가 또 어떨 땐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뭔가를 깨부수는 날도 있고, 죽었다 싶게 조용한 날도 있었다. 공동 거실 탁자 밑에 굴러다니던 노란색 약통에는 그의 이름과 작은 알약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가 지나온 시간엔 어떤 장면들이 찍혀 있기에 그의 오늘은 이렇게나 찢기고 갈렸을까. 그래서 난 함부로 묻지 않기로 했다.

어느 날 밤, 목마른 개처럼 헐떡이며 거실을 네발로 기는 하온을 위해 노란색 약통을 건넸을 때 그의 푸른 눈을 처음으로 똑바로 바라봤다. 낯선 색, 낯선 얼굴. 내 고질병이 고개를 들었다. 그가 궁금해.

“네 눈동자가 궁금해.”

모든 단어가 서로를 끌어안고 바닥을 뒹굴었다.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한국어로 맘대로 중얼거린 것 같은데 그는 뭔가를 알아들은 것처럼 두 손으로 내 어깨를 끌어당겨 입을 맞추었다.

하온은 늘 내가 보이지 않는 걸 좇지 않는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맞다. 난 확실히 눈에 보이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가 입 맞추었을 때 내 눈엔 분명히 보였다. 천장에서부터 쏟아져 내리는 오로라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별을.

“오늘은 뭐가 네 호기심을 자극한 거야?”

하온이 칵테일 잔 위의 벌집 조각을 입에 넣으며 비스듬히 이쪽을 바라봤다. 그의 푸른 눈이 또다시 내게 질문을 던진다. ‘좋다’라는 말 대신 ‘뭐지?’하고 계속 되묻는다. 그건 감탄사다.

“네 눈동자가 궁금해서.”

하온이 웃는다. 이번엔 제대로 알아들었다는 듯 내 어깨를 끌어당겨 입을 맞춘다.

그의 입술. 처음은 쇠 맛이 나다가 점차 벌집 조각 맛이 나고 그 다음엔 맥주 거품처럼 서서히 가라앉는다. 그의 목소리. 아무도 없는 밤바다를 조용히 걷다가 만나는 반짝이는 형광색 모래, 머리카락 사이를 멋대로 헤집고 사라지는 따스한 나라의 바람 그리고 낮은 나무에 달린 보라색 꽃에서 퍼지는 향에 검은 속눈썹이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앉는다. 하온, 그. 밤하늘을 길게 덮은 머리는 밀려드는 파도처럼 굽이친다. 작은 위성 같은 두 눈은 가끔 열릴 뿐 무겁게 눈두덩이를 누른다. 웅얼거리는 입술은 희미한 불빛에 탈색되어 본연의 색이 무엇이었는지 영 모르겠다. 각종 색깔의 보석이 박힌 입맞춤은 그의 손이 내 어깨에 느릿하게 곡선을 그릴 때마다 별빛을 낸다.

“하온, 내일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좀 더 트인 곳으로 나가볼까? 오로라를 제대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녀의 노래가 끝났다. 사람들의 박수 소리에 하온의 대답이 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외계어가 무슨 뜻인지 이제는 나도 알 것 같다. 내가 이 외계에서 찾은 유일한 별, 그가 나른한 눈을 푸르게 깜빡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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