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네 말대로 난 끝까지 엄마에게 길들여지지 않았어. 그런데…
*맹지혜, 그녀
비가 온다고? 그러면 맞지, 뭐. 그것도 자연 속에 들어가는 또 하나의 방법인데.
수인 씨의 전화를 끊고 하늘을 올려다 봤다. 흐리멍덩한 구름 몇 뭉치가 대단한 이벤트를 준비하는 것처럼 분주하고도 은밀하게 움직였다. 비 맞는 건 나쁘지 않지만 홀딱 젖게 될 유니를 챙기는 일은 좀 달랐다. 차 안에 수건, 여벌의 옷, 신발이 있는지, 없다면 가까운 곳에서 그것들을 살 수 있는지 생각했다. 그 아이는 매우 까다로운 아이니까.
유니는 자주 울었다. 눈이 퉁퉁 붓도록 몇 시간씩 울고 나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았다. 의사는 그걸 간단히 스트레스성 알레르기라고 명명했다. 한의원에선 아이가 심하게 울면 체온이 올라가서 그런다고 하기도 했다. 아이를 위해 친환경 음식을 매일 주문했다. 아무래도 그러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알레르기란 병은 결국 면역력 결핍 문제이니 자연 속에서 지내며 마음을 편히 하고, 친환경 음식으로 최대한 몸을 자연에 가깝게 만들어 주면 좋아질 거로 기대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는 자주 울고, 그럴 때마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수많은 얼굴을 드러냈다.
유니가 우는 이유는 다양했다. 음식이 먹기 싫어서, 먹고 싶어서, 하고 싶은 걸 못 해서, 하기 싫은 걸 해서, 추워서, 더워서, 잠이 와서, 잠을 너무 많이 자서 등등. 수백 수천 가지 이유로 울었다. 다른 아동의 사례를 봤을 때, 이런 경우도 참 드문 일이다. 수인 씨 어머니는 애들이 다 그런 거라고, 당신 아들도 다 그러면서 컸다고 날 위로했지만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유니 같은 아이는 없었다.
“천재 아냐? 왜 천재들이 감각적으로 예민해서 좀 그런다잖아.”
수인 씨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즐거운가 보았다. 하지만 난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신께 받은 그대로 자연스럽게 커야 한다. 그게 맞다. 거기에 뭔가를 집어넣는 건 부모의 욕심일 뿐이다. 그래서 난 유니에게 아주 약간의 기대도 하지 않는다. 무엇을 강요하거나 소리지르지도 않는다. 그런 건 못 배운 구세대 부모들이나 하는 행동이다. 요즘은 문화센터에만 가도 육아에 대한 강연이 넘쳐나는데 그 조금의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건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일종의 방임이다.
사실 동물원은 내게 그다지 유쾌한 곳이 아니다. 엄마와 처음으로 단둘이 소풍을 갔던 장소. 그날은 오늘처럼 흐리멍덩한 구름 몇 뭉치가 떠 있었고, 난 레이스가 달린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내 옷은 하얀 색이 많았다. 엄마의 취향이었다. 작은 토끼 인형도 항상 품에 끼고 다녔다. 그것도 엄마의 취향이었다. 머리는 생머리로 길게 늘어뜨리고 가느다란 머리띠를 했다. 그 역시 엄마의 취향이었다. 하지만 난 엄마의 취향에 아무런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흰색 원피스, 긴 생머리에 가느다란 머리띠를 하고 작은 토끼 인형을 품에 낀 채 동물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특별히 보고 싶은 동물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남들도 다 가는 그곳에 한번 가보고 싶어서 엄마를 조른 것이었다. 엄마는 김밥을 싸지 않았다. 그 대신 샌드위치를 쌌다. 아보카도와 토마토, 적양파, 어린잎 채소가 든, 엄마 취향의 샌드위치였다.
“이런 데 올 땐 김밥을 싸와야 하는 거 아니야?”
결국 그 부조화를 견디지 못하고 한 마디를 내뱉었다. 날 보는 엄마의 눈동자가 마치 저 기린이나 얼룩말을 볼 때와 똑같아 보였다. 좀 놀란 것 같기도 했고, 신기해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동물원 갈 때 꼭 김밥을 도시락으로 싸야 한다는 법 있니? 온몸에 참기름 냄새가 배고, 새벽부터 일어나 온 재료를 기름에 볶고 또 볶고. 그런 중노동을 왜 해야 하는데? 그러고 보면 넌 좀 이상적인 구석이 있어. 네 아빠처럼.”
엄마가 검지손가락을 들어 날 향해 까딱거렸다.
“내 친구들은 다 그런다고 했단 말이야.”
“맹지혜, 다른 사람들이 다 그런다고 꼭 그래야만 할 필요는 없어. 여기 있는 동물들 좀 봐봐. 다 동물원에 갇혀 살지만 그렇다고 다 똑같지는 않잖니?”
“엄마, 난 동물 얘길 한 게 아닌데? 김밥 얘기 한 건데.”
“그래, 그럼 김밥 얘길 더 하자. 김밥이 다 동그란 김밥만 있는 줄 아니? 네모난 김밥도 있어. 또 다 겉이 까만 것도 아니야. 누드 김밥 봐봐. 그건 겉이 하얗잖아.”
“알았어. 그러니까 엄마 말은 남들과 똑같이 살지 말란 말이지?”
“얘, 넌 엄마 말을 제대로 듣고 있기나 한 거니? 똑같이 살지 말란 게 아니라, 꼭, 반드시 똑같이 살 필욘 없다고 말하는 거야. 아휴, 어쩜 쓸데없이 말끝 붙이는 것까지 넌 네 아빠랑 똑같니?”
엄마는 내가 말을 걸 때마다 몹시 피곤해 보였다. 그리고 뭔가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이 들면 매번 아빠를 닮아서 그렇다고 말끝에 붙여 이야기를 그만 두려 했다. 난 항상 궁금했다. 그래서, 왜 엄마는 아빠랑 결혼했던 걸까. 날 보며 아빠를떠올리는 엄마는 과연 행복한 걸까. 행복하지 않다면 왜 나랑 사는 걸까. 그 질문의 끝에 도달하면 항상 아빠의 ‘돈’이 떠올라 기분이 묘하게 상해 버렸다. 그리고 상한 아보카도를 숨기기 위해 으깨어 바른 엄마의 속마음이 들통날까 봐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하는 아이처럼 샌드위치를 입에 넣고 의미 없는 턱 운동을 반복했다.
“화장실 갔다 올게. 나 쉬 마려.”
“빨리 갔다 와. 하늘을 보니 곧 비가 오겠어.”
수백 번도 더 씹어 단맛이 나기까지 하는 그 역겨운 음식 아니, 음식물 쓰레기를 공중 화장실 변기에 모두 쏟아버렸다. 어쩌면 그때 난 엄마에 대한 내 심장도 거기에 쏟아버리고 왔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그 후로도 나와 함께 외출을 할 때면 꼭 아보카도 샌드위치를 한 개만 쌌다. 엄마 것은 없었다.
“다 봤어요. 이제 집에 가요.”
쓸데 없고, 잡다한 생각들이 내 목을 조르려는 순간 유니가 내 앞에 와 섰다.
“나비는 실컷 봤니? 다른 동물은 안 봐도 돼?”
“됐어요. 어차피 저 나비들을 보러 온 거니까요.”
“그럴 거면 뒷마당에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게 나을 뻔 했다. 괜히 기분만… 아니, 시간만 낭비했네.”
유니의 눈길이 내 얼굴 부근에 닿았다가 내 눈과 마주치자 얼른 다른 곳으로 비껴갔다. 두려운 건지 더러운 건지 모를 묘한 분위기가 유니 주변을 둘러 바리케이드를 쳤다.
막 동물원을 떠나는데 차 앞 유리에 빗방울 몇 개가 따가운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하늘에선 그르렁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몇 분 지나지 않아 깡마른 빗방울들이 유리를 뚫을 듯이 날아와 꽂혔다. 차라리 나았다. 끈적하게 붙은 무언가를 떨쳐 내기엔 쨍한 하늘보다 이런 날이 더 효과적일 테니 말이다. 그리고 저 소리. 칼날 같은 빗 소리가 참 좋았다. 검객처럼 날아와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 머릿속 잡념들을 말끔히 난도질해 줄 것만 같아서였다.
수인 씨는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알싸하단 표현을 썼다. 그런 말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통쾌하다’도 아니고, ‘날카롭다’도 아닌 특이한 말이었다. 어쩌면 그가 내 책을 찢었을 때 느낀 내 감정이 그랬을까.
“어머, 저 사람 반수인 아니야?”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서 ‘반수인’이란 이름이 팝업창처럼 떠올랐다. 그 이름이라면 여러 군데에서 접한 적이 있었다. 몇몇 방송에선 얼굴을 보기도 했었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대한민국 평균의 남자 얼굴이었다. 서점 입구의 베스트셀러 진열대에서도 그의 얼굴이 크게 박힌 책을 보며 무슨 생각으로 이 얼굴을 책에 박아 넣었을까 궁금해 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대면한 적은 없기에 등 뒤로 완전히 제껴 놓은 이름이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내 토크 콘서트에 나타나서 다짜고짜 내 책을 찢었다.
종이 찢어지는 소리가 장내를 울렸다. 듣는 내내 칼날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 소리는 머리가 지끈하도록 청량감이 들었다. 독자들의 뻔한 질문들을 억지로 삼켜 넘기고 있던 내 목이 탄산음료를 단번에 들이킨 듯 따가워졌다. 고개를 돌려 그를 봤다. 그의 눈이 내 반응을 기다리듯 매우 흥미진진해 보였다.
다음날 그를 만나 이번엔 내가 책을 찢었다.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나도 그의 반응이 궁금했다. 의도를 바로 알아야 그에 따른 행동도 맞춰서 할 수 있지 않겠나. 그리고 난 답을 냈다. 미친 놈이라고. 또한, 이렇게 생각했다. 이 미친 놈을 곁에 두고 관찰하고 싶다. 다른 사람들 다 드나드는 곳 말고 내 집에 두고 나만 혼자 자세히 보고 싶어졌다.
수인 씨의 공간을 내 것으로 채워가는 건 아주 번거로운 일이지만 나름의 필요성이 있다. 유치한 땅 따먹기는 아니어도 내 구역을 넓혀가는 재미가 있었다. 한 인간을 나와 같은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보람도 느꼈다. 어떨 땐 피를 나눈 유니보다 그가 더 나와 비슷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착각이 아니었다. 막연한 기대도 아니었다. 확실히 그는 나와 닮아가고 있었다. 내가 가진 것들을 온전히 흡수해 성체로 변태하는 중이라고 해야 할까.
“수인 씨, 난 당신의 무모한 그 도전 정신이 참 좋아. 강단 있고, 한 번 결정하면 밀어붙이는 결단력, 추진력. 그런 것들이 모두 마음에 들어.”
“나 오늘 뭐 잘못했어? 수상해. 어쩐지 저 덫엔 걸리지 말아야 할 것 같고. 흐흐흐…”
“제대로 짚었어. 항상 내 말의 요점을 잘 찍는 그 판단력도 추가할게. 그러니 유니 잠자기 전에 해야 할 일들 좀 부탁해도 될까? 오늘은 좀 피곤하네. 일찍 누워야겠어.”
“난 또 뭐라고. 알았어. 그럼 먼저 들어가 쉬어.”
“땡큐.”
수인 씨가 방을 나가고나서 침실 창문을 조금만 열었다. 빗소리를 더 듣고 싶어서였다. 이불을 깊게 파고 들었다. 계피 냄새가 은은하게 코 언저리를 맴돌았다. 이불 안으로 차가워진 발을 끌어 당겨 넣었다. 그러는 새 차가운 면의 감촉이 점차 따듯하게 체온을 올려갔다. 덥힌 산양 우유를 깜빡 잊고 안 가져왔네,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이내 모든 것이 빗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친환경 바자회는 매년 경기도가 주선하는 행사였다. 나름 오 년째 이어오다 보니 규모도 제법 커져서 현재는 전국에서 가장 큰 친환경 행사 중 하나가 됐다. 그리고 각 단체나 사업자들은 자신들이 직접 만든 친환경 제품이나 음식을 홍보하기에 최적의 장소로 이곳을 꼽았다. 올해도 선별된 백여개의 부스가 설치됐고, 각종 언론 단체에서도 이를 취재하기 위해 아침부터 분주했다.
“어머, 자기야!”
요란하게 치마를 펄럭이면서 오는 모습이 멀리서 봐도 딱 이레 엄마였다.
“좀 늦으셨네요? 올해도 신 메뉴 가지고 나오셨어요? 저 매년 기대하는데.”
“유니가 얘기 안 해? 지난 주에 보낸 거. 병아리콩하고 곤약쌀 섞어서 찐 밥이랑 파인애플 아스파라거스 구이.”
“아… 아, 그거요? 안 그래도 그거 참 괜찮았다고 말씀드리려던 참이었어요.”
“그래? 다행이네. 유니 입맛에 잘 맞았다면 대성공이지. 이번에 우리 가게 쉐프를 바꿨는데 캐나다에서 왔거든. 자기도 언제 한번 와. 비건 요리 쪽에선 알아주는 사람이래.”
“돈 좀 썼겠는데요?”
“돈? 그냥 뭐, 이레 아빠 후배라서 적당히.”
이레 엄마가 몸과 목소리를 낮춰 내게 귀띔하며 키득거렸다.
“이레는요?”
“요즘 초등학교 육 학년은 인간도 아니라잖아. 집에서 온라인으로 친구들이랑 게임한다고 따라 나서지도 않아요. 유니는?”
“유니는 할머니네 갔어요. 워낙 예민하고 까다로워서 사람 많은 데 힘들어해요.”
“아, 그렇구나. 품 안에 자식이라더니… 좀 외롭다.”
“그래요? 전 별로. 애들은 원래 태어날 때부터 독립된 존재예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죠.”
이레 엄마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죠.’라는 말을 입모양으로 따라 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알지, 알아. 자기가 말한 대로 나도 이레 키워보려고 했는데 그게 어디 쉬워? 정말 자기같은 결단력 있는 사람이나 하는 거지. 난 남편이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남자애는 여자애보다 열 배는 더 힘들다고.”
“그래도 포기하지 마세요. 항상 응원하고 있으니까.”
“고마워. 그런데 자기는 이번에 뭐 준비해 왔어?”
“비즈 왁스 캔들이요. 아, 참. 이레도 비염 있죠? 이거 비염에 참 좋은데. 유니 아빠 때문에 저도 조금은 알아요.”
내가 상자에서 캔들 하나를 꺼내어 들이밀자 이레 엄마는 그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그것을 조심스레 받아 들었다.
“아니, 이 귀한 걸… 고마워. 우리 이레 비염 있는 건 또 어찌 알아 가지고… 그런데 어디 농장 좋은 데 뚫었나 봐?”
“아, 나중에 가르쳐 드릴게요. 젊은 부부인데 귀농해서 토종벌 농장을 해요. 양이 많진 않은데 이번 행사를 위해 특별히 비즈 왁스만 부탁해 봤어요.”
“토종꿀이라… 우리 메뉴에 넣으면 좋겠다. 샐러드 드레싱 만들 때도 좋고, 오트밀 위에 살짝 뿌려도 괜찮을 거 같고.”
“역시 사업가시네요.”
“오케이, 신 메뉴 나오면 자기네로 제일 먼저 보내줄게. 시식평이나 잘 해 줘. 자기가 홍보해 줘서 우리 가게가 잘 되는 거 항상 고마워하고 있는 거, 알지?”
“뭘요. 대한민국이 모두 건강해지는 그날까지!”
“그래, 아자아자!!”
이레 엄마의 사방으로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인파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열심히 흔들던 손을 내렸다. 한껏 올라간 광대도 제자리로 돌아왔다. 매번 사람을 대하는 일은 참 피곤한 일이다. 관계를 위해선 무언가 그들의 품에 안겨야 하고, 내 시간을 들여야 하고, 의미 없는 말과 웃음을 팔아야 한다. 그래도 몇 마디 가게 홍보를 해 주고, 그녀의 가게에서 절반 가격으로 유니의 음식을 제공받으니 썩 나쁘지 않은 거래다. 그리고 유니의 식단에 신경을 안 써도 되어 번거로운 일 하나를 줄이는, 아주 경제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비즈 왁스 캔들의 인기는 상당히 좋았다. 곡물 샴푸바나 허브 치약보다 더. 이럴 줄 알았으면 넉넉히 만들어 올 걸, 하는아쉬움이 들었다. 그러면서 어젯밤에 물 먹은 민달팽이 기어가듯 움직이던 유니의 손을 떠올렸다.
“하기 싫음 내려놓고 네 방으로 들어가도 돼.”
“정말 그래도… 돼요?”
“당연하지. 엄마가 언제 너한테 강요한 적 있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살라고 했잖아.”
“네…”
유니는 발걸음도 물 먹은 민달팽이처럼 움직였다. 그리고 잠시 후 방문 닫는 소리가 집 밖에까지 동그란 파동을 그리며 번져 나왔다. 그 파동은 내 손등에 와서 둔탁하게 닿았다. 평상 위에 열 맞춰 늘어 놓은 유리 용기 속 식어가는 왁스처럼내 손도 서서히 굳어가는 것 같았다. 이런 느낌, 기억난다.
난 죽어가던 엄마의 발치에 서 있었다. 엄마 주변에서 의사와 간호사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병원 냄새가 폐 속으로 깊숙이 파고 들었다. 병원 복도 구석에 있는 공중전화에 동전 몇 개를 넣고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빤 받지 않았다. 다시 엄마의 발치에 와 섰다. 병실 창문을 열어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등이 서늘했다. 그렇게 한참동안 입을 꼭 닫고 서 있었다.
“학생, 아빠는?”
얼굴이 동그랗고 키가 나만한 간호사가 내게 물었다.
잠시 시간을 멈추고 뭐라고 답할까 생각했다. 가장 적당한 대답을 해 주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다시 흐르기 시작한 시간 속에서 난 작게 말했다.
“없는 것 같아요.”
“응?”
“없어요. 제겐 아빠가 없다고요.”
“아…미안해. 몰랐어.”
툭 불거져 나온 목소리가 처음 듣는 악기 소리처럼 낯설었다. 이런 소리가 내 안에서 나오다니. 깜짝 놀라 목을 움켜 쥐었는데 손이 손톱에서부터 차갑게 굳어갔다. 극한의 외롭고 쓸쓸한 감정을 모두 몸 안으로 욱여 넣는 것 같았다. 심지어 그 기분은 내 안의 얼마 남지 않은 온기마저 다 빼앗아갔다.
“아… 으어… 어…”
“학생, 왜 그래?”
뭐라 설명할 수 없이 서늘하고 끈적한 감정. 그건 내 몸에 붙어 영영 떨어지지 않으려는 고약한 냄새였다. 엄마의 상한 아보카도 샌드위치 같아, 라고 생각하는 순간 침대 위에 누워있는 엄마에게서도 그 냄새가 풍겨오는 것만 같았다. 병실에 온통 썩은 내가 진동했다.
소매를 들어 냄새를 맡았다. 다른 쪽 소매도 들어 냄새를 맡았다.
“우... 으… 우욱…”
그 냄새는 내 몸에 문신처럼 각인되려는 게 틀림 없었다. 굳어진 두 손으로 얼굴, 팔, 몸뚱이를 미친듯이 털어냈다. 아니, 그걸로는 부족했다. 뭔가 더 강력한 걸로 떨쳐내야 했다. 점점 등에서부터 시작된 한기가 사지로 번져갔다. 그제야 난 내가 굳어가는 게 아니라 얼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 간호사가 들고 있던 트레이가 눈에 들어왔다.
“… 주세요오...”
턱이 위아래로 심하게 떨려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이 부딛히는 소리가 머리를 울렸다.
“뭐라고?”
“… 달라고오…요.”
한번 더 내가 간신히 말했을 때 간호사는 그 웅얼거리는 소리를 듣기 위해 자신의 귀를 더 내 얼굴 가까이에 붙였다. 난 아랫배에 힘을 주어 겨우 목소리를 밖으로 토해냈다.
“그 알콜솜 좀 달라고요오! 이 냄새가 안 나요? 나한테서 지금 역겨운 냄새가 나잖아!”
간호사는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사적으로 트레이 위에 있던 알콜솜 통을 내게 내밀었다. 그리고 난 그 작은 스테인리스 통에 담긴 알콜솜을 죄다 바닥에 쏟아 두 손 가득히 쥐고 얼굴, 손, 옷을 닦고 또 닦았다. 다른 간호사들이 달려와 말렸지만 난 계속 알콜솜으로 살갗이 벌게질 때까지 닦기를 멈추지 않았다.
엄마가 떠나고 나서도 종종 그 증세가 나타났다. 그 증세는 항상 썩은 내를 동반했다. 녹인 왁스가 들어있는 스테인리스 비커 표면에 두 손을 갖다 댔다. 따듯했다. 굳어가던 손이 다시 노곤하게 풀렸다. 그리고 손에서부터 시작된 온기는 서서히 몸 구석구석으로 번져갔다. 손가락이 다시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그 역겨운 냄새는 사라지고 없었다.
살짝 굳은 왁스 위로 녹인 왁스를 마저 부었다. 갈라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이중붓기를 하는 것이다. 이래야 캔들 모양이 예쁘게 자리잡는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엄마와 내 관계는 언제부터 갈라지기 시작했을까. 우린 왜 서로에게 길들여지지 못했을까. 번거롭더라도 여러 차례 시간을, 노력을 다시 붓고 부어 모양을 예쁘게 만들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러지 마. 길들여지지 마.”
마당에 쭈그려 앉은 그때의 내가 평상에 앉아 있는 지금의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 네 말대로 난 끝까지 엄마에게 길들여지지 않았어. 그런데… 그래서?”
“그래서긴 뭐가 그래서야. 이렇게 자유롭게 되었잖아. 네 마당에 찾아든 저 나비처럼 말이야.”
어디에선가 우리집 마당으로 하얗고 조그마한 나비가 날아들었다. 꿀 냄새를 맡은 모양이었다. 나비는 평상에 늘어놓은 캔들 주위로 뭔가를 찾아 헤매듯 계속 맴돌았다.
“나비를 길들이고 싶니?”
그때의 내가 다시 물었다.
“그게 마음대로 되겠어?”
“그래. 길들이지 마. 길들여지는 쪽도 택하지 말고.”
그 말을 남기고서 그때의 나는 사라졌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 아이가 쭈그려 앉았던 자리에 시선을 꽂고 멈춰 있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 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떠난 자리에 그 아이의 허상을 만들고 이랬다저랬다 해 보는 것이었다. 선택이란 건 언제나 그렇다. 옳고 그름의 선택이 아니더라도, 중요한 결정이 아니더라도 그 일말의 후회가 떨어진 신발 밑창처럼 덜렁거리며 미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나비가 더는 날갯짓 하지 않았다. 굳지 않은 따듯함에 내려 앉았다가 발목을 붙잡히고 말았다. 서서히 굳어가는 줄도 모르고 길들여진 탓이다.
“그걸 다 팔았다고?”
수인 씨가 수건으로 머리를 털고 욕실에서 나오며 물었다. 작은 물방울들이 공기 중으로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응.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어. 수인 씨 건 두 개 남겨뒀어. 이른 생일 선물이야.”
“역시 내가 결혼 하난 끝내주게 잘했다니까. 우리 엄마도 평생 어쩌지 못한 비염을 와이프 잘 만나 고치게 생겼네.”
“그러게. 나도 그러길 바라. 그래서 내가 만든 요리가 맛있는지 맛없는지도 평가해 주길 바라고.”
“뭐야, 그건 마치 내가 비염 때문에 맛을 못 느끼는 게 그동안 지혜 네가 제대로 된 요리를 하지 않은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는 변명처럼 들리는데?”
“뭔 말을 그렇게 꼬아서 해? 그냥 내가 요리를 못 해서 안 하는 거다 하면 되지.”
“너야말로 뭘 그렇게 꼬아서 들어? 네가 주장하는 것처럼 자연 그대로가 가장 좋은 거야. 매일 텃밭에서 직접 기른 채소들이 샐러드로 올라오는 식탁이라. 난 그걸로 됐어. 너무 멋지지 않아? 퍼펙트해.”
“하여간 뭐든 얼렁뚱땅. 수건 이리 줘. 빨래 하러 가게.”
“둬, 내가 나중에 할게. 그나저나 엄마한테 전화 왔더라. 유니가 잠들어서 오늘밤은 거기서 재운다고.”
“아, 참. 깜빡했어. 유니 데려오는 거.”
“웬일이야? 네가 유니를 깜빡하고.”
얼른 벽시계를 올려다 봤다. 열 시 하고도 사십 칠 분이나 지나 있었다. 오늘 난 왜 머릿속에서 유니를 깨끗하게 지워버렸을까, 생각하다가 이레 엄마를 떠올렸다. 바자회를 마치고 나오려는 날 붙잡고 당장 토종벌 농장에 가자고 조른 탓에 거기를 들렸다 왔기 때문이었다.
“미안, 내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데리고 올게.”
“뭐 그런 걸 갖고 미안 씩이나. 애가 할머니 댁에서 자고 올 수도 있지. 너도 가만히 보면 참 일정에 지나치게 정직해. 자연스럽게 해. 구겨지면 구겨진대로 살면 되지. 어떻게 항상 반듯하게 살아?”
이상한 일이었다. 평생 틀이란 걸 깨고 싶어 안달 난 여자로 살아 왔는데 유일하게 시간이란 틀은 전혀 불편하지가 않았다. 오히려 그건 내 생각을 완성시킨 마지막 퍼즐 조각이었다. 시간은 마치 머리카락과도 같아서 잘라도 잘라도 다시 자라고, 그냥 내버려 두면 금세 엉켜 버렸다. 그래서 적절한 관리가 필요했다. 계속 해치워도 또 생겨나는 일정들이 엉키지 않도록 잘 손질해 둬야 했다.
칸칸이 쪼개진 시간을 뭘로 채우냐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그 간격은 언제나 똑같고, 시계 바늘은 일정한 속도로 흘러갔다. 그만큼 철저한 틀이 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틀에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정직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자연스럽다, 라고 말할 때 그것 또한 철저히 계획된 시간인 셈이니까. 그건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게 매우 적당한 간격이어야 했다. 계절이 바뀌고, 낮이 밤이 되는 시간처럼 늘어지지도 서두르지도 말아야 했다.
그런 내게 애초부터 제일 자연스럽지 않은 방법으로 다가온 수인 씨가 제발 자연스럽게 살라고 말하고 있다. 괜찮으니 맘껏 늘어지란다. 그 간격에 아무 것도 넣지 말란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수인 씨는 지금 자연스럽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내게 강요하고 있다.
“아보카도 샌드위치는 맛있었어?”
“맛있어 보였어. 식감도 좋고. 그런데 요즘 이상하게 배가 아파. 자꾸 설사도 하고.”
“그래? 장 기능이 떨어졌나? 유산균 좋은 걸로 알아볼게. 수인 씨 근래에 강연이 많아서 스트레스 받았나 봐. 그게 다 면역력이 떨어졌다는 증거야. 내가 더 신경 쓸게, 당신 안 아프게.”
“고마워. 오랜만에 음악이나 들을까? 유니도 없는데 소리 크게 틀어놓고 둘이 함께 누워있자. 판 하나 다 돌아갈 때까지.”
“그래. 그럼 오늘은… 발라키레프의 <이슬라메이> 어때?”
“좀 난해한데?”
“오늘이 딱 그런 날이잖아. 구겨진 말과 감정들이 시간이란 틀에 엉켜버린 날. 그래서 정리가 좀 필요한 날.”
“유니 없어서 너 좀 허전하구나? 그러자, 그러지 뭐. 씻고 나와. 먼저 가서 음악 틀고 차 끓이고 있을게.”
수인 씨가 두고 간 수건을 욕실 빨래 바구니에 던져 넣으며 생각했다. 그의 말마따나 유니가 없어서 허전한건가?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 속에 머리를 처박으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 질문이 난해해? 화장대 앞에 앉아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며 생각을 더 깊이 파보았다. 그럼 이 질문은 어때? 넌 유니를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생각이 거기까지 도달하자 머리에 날카로운 가시들이 돋아났다.
“누구긴, 유니는… 유니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답이 입 밖으로 명쾌하게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 비밀스런 말을 내뱉었다간 캔들 위에 굳어버린 나비 꼴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걸지도 모르겠다.
“안 나오고 뭐해?”
“깜짝이야, 갑자기 문을 열면 어떡해?”
문틈으로 유자 향이 새어 들어왔다. 그리고 <이슬라메이>의 도입부가 요란하게 거실을 울리고 있었다.
“아니, 뭘 그렇게 놀라? 지혜 너 오늘 되게 낯설다.”
“그냥, 내일 일정 생각하느라.”
“무미건조한 단조로움에 할애할 시간은 없다. 일할 시간과 사랑할 시간을 빼고 나면 다른 것을 할 시간은 없다. 코코 샤넬! 일할 시간만 잔뜩인 우리는 사랑할 시간이 없었네? 빨리 나와. 차 식어.”
여전히 가시 같은 질문들이 머리에 잔뜩 돋아 날 긴장하게 만들었지만 일단 지금은 머리카락 속에 꽁꽁 숨겨두기로 했다. 그랬다가 이런 불편한 감정이 모두 사라지고 나면 그때 다시 꺼내어 답하면 될 일이었다.
천천히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피아노의 파열음 위로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마구 두들겨졌다.
유니의 음식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배달됐다. 스티로폼 상자를 열면 연둣빛 용기들이 나오는데 내용물에 따라 원, 직사각형, 정사각형 그리고 깊이가 얕은 것과 깊은 것으로 그 종류가 다양했다. 그리고 각 용기엔 사용된 재료와 원산지 표시가 스티커로 붙어 있었다. 거기에 이레 엄마는 꼭 손편지를 써 넣어주곤 했다.
자기 덕분에 좋은 꿀을 싸게 제공받을 수 있게 됐어. 정말 고마워.
그래서 이번에 석류와 꿀을 갈아 만든 드레싱을 개발해 봤는데 한번 먹어보고 어떤지 말해 줘.
그리고 작년부터 거래하는 마이산의 더덕 농장에서 질 좋은 더덕이 왔더라고.
꿀, 계피 넣고 더덕꿀차를 만들어 보내. 자기하고 유니 아빠 강연 자주 나가니 목에 좋을 것 같아.
아, 참. 저번에 준 비즈 왁스 캔들 이레 방에 켜 줬더니 코가 훨씬 편하다네.
다음에 또 만들게 되면 몇 개 부탁해도 될까? 미리 고마워.
편지를 내려놓고 스티로폼 상자 안을 이리저리 뒤져봤다. 동그란 용기들 밑에 유리병 하나가 보였다. 용기들과 아이스팩을 치우고 그것을 꺼냈다. 꿀 속에 하얗게 껍질을 벗겨 잘게 썬 더덕이 유리병 목까지 꽉 차 있었다. 계피 막대도 대여섯 개 보였다. 뚜껑에 붙어 있는 스티커를 보니 어제 날짜가 써 있었다. 그건 아마도 맛을 보려면 이틀은 더 기다려야 한단 뜻일 거다.
유리병과 편지를 치우고 마저 다른 용기들을 꺼내어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아 넣었다. 이렇게 요일별로 각각 분류해 두면 유니가 알아서 꺼내어 먹는다. 할머니네에 갈 때나 친구네 집에 놀러갈 때도 도시락을 꼭 챙겨 보낸다. 그곳에서 유니의 건강에 해가 되는 음식을 먹게 될 지도 몰라서다. 간혹 사람들은 내게 유별나다느니 엄마의 욕심이라느니 쉽게 떠들어 대지만 유니에 대해선 내가 제일 잘 안다. 괜히 밖에 나가 다른 음식을 먹었다가 두드러기가 돋거나 구토를 하게 되면 그들이 책임지지도 않을 것이니 엄마인 내가 철저히 챙기는 수 밖에 없다.
아침은 유일하게 온 가족이 함께 먹는 식사 시간이다. 주로 우리 집 텃밭에서 기르는 채소들로 만든 샐러드, 매일 아침 배달되는 산양 우유 그리고 반숙으로 삶은 계란을 먹는다. 남편은 점심엔 내가 싸준 아보카도 샌드위치를, 저녁엔 과일이나 선식으로 간단히 먹는다. 나 역시 점심은 견과류와 함께 치즈나 과일 등을 먹고, 저녁은 오트밀로 대신한다.
먹는 건 내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수인 씨가 강박적 사랑을 하듯 난 강박적 식사를 한다. 먹는 건 보이지 않는 인간의 내면과 관련되어 있고, 절제를 모르는 이들은 식이 습관 역시 절제가 없다. 심지어 세계적인 성인들은 금식 혹은 단식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하지 않는가. 그랬을 때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내면의 세계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식이 습관이 인간을 통제한다는 가장 큰 증거이다.
“자, 네가 좋아하는 아보카도 샌드위치야. 어서 먹어.”
엄마가 내게 아보카도 샌드위치를 건넸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다 먹을 때까지 내 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턱이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머리에 가시들이 돋았다. 내 강박적 식이 습관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