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냄새를 덮으려고 그랬던 거야, 냄새를 덮으려고.
*이레 엄마, 그녀의 이웃
비즈 왁스로 만든 캔들은 무슨 향이 날까 궁금했다. 지혜 씨가 만든 것은 언제나 최고일 테니까. 무엇보다 비염에 좋다고 하니 얼른 이레 방으로 그것을 가져갔다. 만약에 효과가 좋다면 지혜 씨에게 오래 쓸 수 있도록 더 크게 만들어 달라고해야겠다.
벌집 모양의 틀을 사용해 찍은 앙증맞은 캔들엔 두 개의 심지가 나란히 박혀 있었다. 안 쓰는 컵받침 위에 그것을 올려놓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느 심지에 불을 붙이지? 눈알이 오른쪽으로 갔다가 왼쪽으로 갔다가를 반복하는 동안 몇 가지 궁금증이 들었다. 지혜 씨에 관한 것이었다. 그녀는 언제부터 친환경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왜 친환경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그건 그녀에게 무슨 의미를 가질까.
고민 끝에 양쪽 심지 모두에 불을 붙이기로 했다. 토치에서 딱 하는 소리가 나더니 붉고 푸른 불꽃이 길쭉하게 허리를 뻗어 나왔다. 그리고 그 불꽃은 금세 심지에 옮겨 붙어 비즈 왁스를 녹여 가기 시작했다. 코를 캔들 가까이에 가져다 댔다. 냄새를 맡기 위해 숨을 단번에 들이쉬었다. 뜨거운 공기가 콧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며 미세혈관을 펌프질했다. 냄새는? 분명 달콤한 꿀 냄새가 난다고 했는데. 이제 막 켜서 그런지 아직 잘 모르겠다.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아차, 내가 늘 이렇다. 생각을 하다가 다른 생각으로 넘어가고 나면 그 전의 생각은 곧 잊어버리곤 한다. 나이 탓이라고 생각되지만 썩 인정하고 싶진 않다. 늦게 결혼해서 이레를 인공 수정으로 어렵게 갖고, 낳았다. 그런데 출산 후 기억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다른 여자들도 그런다고들 하지만 아마 나보다 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레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후 의기양양하게 시작한 사업이었다. 지방에서 근무하는 남편이야 주말에만 잠깐씩 보니육아에 그다지 큰 도움을 주지 못 했다. 아니, 관심도 없는 듯했다. 이레가 자라며 점점 집에 홀로 있는 것이 심심해졌다. 우울증 초기 증상을 보인 것도 그때부터였다. 어쩔 수 없었던지 남편이 하고 싶은 사업이 있으면 한번 해 보라며 먼저 권했다. 이레가 다니는 학교 앞에 자리가 났다. 그 학교 급식에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던 때였다. 엄마들이 직접 도시락을 싸 보낸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생각난 게 바로 도시락 가게였다. 요즘 같이 아이를 하나 밖에 낳지 않는 엄마들에게 아이는 세상 전부일텐데, 하는 생각에 바로 이거다! 했다.
요리엔 그닥 재능이 없지만 무작정 될 거란 믿음에 친환경 도시락 사업을 시작했다. 같은 이유로 셰프를 고르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게 또 간단해 보이지만 쉽지가 않다. 처음엔 다른 가게와 차별화된 고급 메뉴를 구성하고 좋은 재료를 공수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녀야 했다. 재료 역시 친환경 컨셉에 맞아야 했기 때문이다. 포장 용기나 냅킨, 젓가락, 봉지 등도 마찬가지였다. 색깔도 최대한 자연에 가깝게, 로고도 새싹 모양을 넣어 만들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매일 사 가는 손님도 있었지만, 대부분 한 달 메뉴를 정기적으로 받아볼 수 있는 패키지를 택했다. 물론 초등학교 앞이니 아이들 도시락이 대부분이었지만 다이어트식으로 정기 주문하는 젊은 여자 손님들, 당뇨나 지방간 같은 성인병 때문에 건강 식단을 찾는 중년의 남자 손님들도 꽤 됐다.
아, 또 이야기가 샜다. 지혜 씨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우리는 친환경 바자회에서 처음 만났다. 그때 난 가게 홍보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레 또래처럼 보이는 한 여자 아이가 내 부스 앞에 서서 시식 음식을 뚫어지게 내려다 보고 있었다. 유니의 첫인상은 어딘가 좀 멍해 보였다.
“하나 먹어 볼래? 구운 두부 샐러드야.”
유니는 내가 곁에 와 서 있었던 걸 몰랐는지 깜짝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괜찮아, 건강에 좋은 음식이니까 먹어도 돼.”
그 말을 하며 작은 용기에 나눠 담은 샐러드를 내밀었다. 유니는 그것을 받아 들긴 했지만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같았다. 그런 유니를 자극한 건 다름 아닌 이레였다.
“야, 먹지 마. 정말 맛없어.”
이레는 언제나 이렇게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신출귀몰한 녀석이다.
“이노무 시키가...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얼른 집으로 돌아가. 엄마 바쁘니까 방해하지 말고.”
몸을 돌려 이레만 들을 수 있게 나긋나긋 말했다. 거의 복화술 수준이었다.
“진짜야, 맛없어. 내가 먹어봤다니까.”
내가 여러번 경고했지만 이레는 집중하지 않았다. 그리고 기어코 유니 손에 들려있던 샐러드를 빼앗아 플라스틱 탁자위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먹지 말라고! 너 바보냐? 니네 엄만 어딨어? 너 이렇게 아무거나 막 주워 먹는데 니네 엄만 어딨냐고!”
이레의 말에 유니가 천천히 손가락을 뻗어 건너편의 한 부스를 가리켰다. 맙소사! 그곳은 다름 아닌 요즘 한창 잘 나가는 친환경 인플루언서 맹지혜의 부스였다. 이 아이가 맹지혜의 딸이라니.
“어머, 얘, 니네 엄마가 맹지혜야? 그 유명한 맹지혜?”
유니는 너무 적극적인 내 반응에 놀라 재빨리 몸을 뒤로 뺐다.그리곤 아주 작게 고개만 끄덕였다. 겁을 먹을 모양이었다.
지혜 씨는 이 바닥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강연을 듣기 위해 지방에서도 올라온다고 들었다. 또한, 어떻게 해서든 그녀와 연을 만들어 자신의 친환경 상품이나 업체를 홍보하고 싶어했다. 저번에 그녀가 자신의 SNS에 한 친환경 소재의 수건을 찍어 올린 적이 있었는데 단 하루 만에 전 물량이 다 팔려 난처한 일이 있었다. 수건 하나하나를 손바느질로 만드는 업체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순간, 이것이 절호의 기회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얼른 다시 유니의 손에 샐러드가 든 작은 용기를 억지로 쥐어 주며말했다.
“어머, 요 아가씨 정말 귀엽네. 우리 이레가 너무 개구쟁이라서 많이 놀랐지? 자, 이건 엄마 거야. 엄마도 한번 드셔 보라고 해. 알았지? 꼭 엄마에게도 가져다 드려야 한다.꼭!”
그렇게 양 손에 샐러드를 든 유니의 등을 서둘러 건너편 부스 쪽으로 떠밀어 보냈다.
“또 한 사람의 입맛이 이렇게 가는구나.”
이레가 주머니에서 꺼낸 막대 사탕을 입에 물으며 말했다.
“뭐야? 이레 너 엄마한테 진짜 혼나 볼래? 이 녀석이 아주 호되게 맞아봐야 정신 차리지? 이리 안 와? 일루 와, 당장!”
이레는 뱀처럼 재빠른 동작으로 내 손을 피해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뭐랬나. 언제나 이렇게 갑자기 나타났다가사라지는 녀석이라 하지 않았나. 신출귀몰한 녀석. 아주 괘씸한 녀석.
한참을 이레의 뒤를 쫓다가 보니 행사장 입구까지 나와 버렸다. 부스는 휑 하니 비워두고 이게 뭐 하는 짓인지. 허리에 손을 얹고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데 부스 앞에 유니와 그의 엄마인 지혜 씨가 서 있는게 보였다. 세상에나. 또 깜빡했다. 그럼 그렇지. 난 숨찬 것도 참으며 거의 달리듯이 걸었다.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발을 더 빨리 움직였다. 연둣빛 원피스를 입고,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그녀는 예쁘진 않았지만 꽤 단아해 보이긴 했다. 배우 누구랑 닮은 것 같긴 한데 그게 누구인진 잘 떠오르지 않았다. 어쨌든 나와 몇 살 차이도 안 나는데 이모와 조카 뻘로보이는 외모와 패션에 사실 좀 기가 죽었다. 그녀는 화면에서 보던 것과 똑 같은 모습이었다.
“어머머, 이게 누구야? 혹시 맹지혜 씨 아니세요? 이런 데서 이렇게 우연히 만나게 될 줄이야.”
모른 척 인사를 건네는데 유니와 눈이 마주쳤다. 깜짝 놀라 커진 눈. 유니는 아마 십 분 전엔 너희 엄마가 맹지혜 씨냐고 격하게 물었던 내가 돌연 모른척 행동을 바꿨으니 참 이상한 아줌마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눈을 더 크게 뜨며 유니에게 제발 모른 척 해 달란 사인을 보냈다. 그리고 그 사인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유니는 고개를떨구며 엄마 뒤로 숨었다.
“안녕하세요? 올해 새로 나오신 분이신가 봐요. 작년 행사 땐 못 뵈었던 것 같은데.”
“아, 네. 맞아요. 올해 처음 나왔는데 저희는 친환경 도시락 업체예요. 재료는 전국에서 최고, 최상품으로만 가져다가 사용하고요, 인공 화학 조미료나 일반 플라스틱 용기는 절대, 저얼대 사용하지 않아요. 메뉴는 특별히 저희 셰프가 직접개발한 거고요. 이쪽으론 알아주는 셰프예요. 세계적인 요리대회에서 입상도 하고.”
“아, 네. 안 그래도 유니가 가져온 걸 좀 먹어봤어요. 상당히 독특하고 맛있던데요?”
“아, 그러셨어요? 이 아이가 맹지혜 씨 딸이었군요.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아무튼 입맛에 맞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딸아이 이름이 유니라고 했나요? 혹시… 괜찮으시면 제가 특별 할인 가격으로 유니 도시락을 배달해 드릴 수도 있는데. 뭐 꼭 홍보해 달란 건 아니니 부담은 절대 가지지 마세요, 절대로. 그냥 유니가 우리 이레 같아서 내가 이렇게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우리 도시락을 꼭 좀 먹여 주고 싶어서 그래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 고마워요. 아무튼 우리나라에 이렇게 좋은 친환경 사업체가 생겼다니 감사한 일이네요. 그럼 명함 한 장만…”
“아이구, 제가 아직도 명함을 안 드렸나요? 여기, 여기 있습니다.”
자연스러웠다. 유니 이야기를 하며 적절하게 가게 이야기를 섞어 넣었으니 지혜 씨가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리 예쁜 액자를 하나 만들어 둬야겠다. ‘친환경 인플루언서 맹지혜 추천 업소’라고 글자를 크게 박아 아주 잘보이는 입구에 걸어둘 것이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지혜 씨는 내 단골 고객이 되었다.
이번주의 서비스 메뉴는 과카몰리와 수제 토르티야 칩이다. 정식 메뉴라기보단 일종의 간식거리인 셈이다. 기름에 튀기지 않고, 오븐에 구운 토르티야에서는 고소한 옥수수 냄새가 났다. 그리고 아보카도와 토마토를 담뿍 넣고, 라임 즙과 고수를 썰어 넣은 과카몰리에선 코를 톡 쏘는 상큼한 냄새가 났다. 사실 이건 유니보단 지혜 씨 때문에 종종 도시락에 넣어주곤 했다. 또 언제나 그렇듯 우리 가게 음식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과 보관 기간 등을 자세히 적은 손편지를 쓰기 위해 가게 구석 자리에 앉았다.
잠시만, 그러고보니 저번에 도시락 배달을 갔을 때 일이 생각난다. 그날도 과카몰리와 수제 토르티야 칩을 들고 갔었다. 그런데 지혜 씨는 그날따라 많이 이상해 보였다.
“어머, 자기 집에 있었네? 잘 됐다. 자기 좋아하는 거 싸 왔는데 나 잠깐 들어가도 되지?”
난 지혜 씨가 답도 하기 전에 양손 가득 든 도시락을 앞세워 그녀의 집안으로 쳐들어 갔다. 집안은 조용했다. 아니, 그건 조용한 게 아니라 뭔가 서늘한 느낌이었다. 그 묘한 느낌의 공기는 문을 들어서는 내 소매 안으로도 비밀스럽게 스며들었다.
“유니 아빤 오늘도 강의?”
“네. 부산 갔어요. 내일이나 되야 돌아올 거예요.”
“도시락들은 냉장고에 다 넣으면 되지?”
냉장고 손잡이를 잡는 순간 부엌 바닥에서 어떤 냄새가 올라왔다. 그것을 무슨 냄새라고 하면 좋을까. 비린내? 아니다. 바다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러면 동물 냄새? 그것도 아니다. 그런 류의 냄새와는 달랐다. 그러다가 문득 가게 마감하기 전에 갖다 버리던 음식물 쓰레기 봉지가 떠올랐다. 맞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내 눈동자가 냄새가 나는 쪽, 바닥에 놓인 에코백으로 향했다.
“두,두세요. 제가 나중에 정리해서 넣을게요. 지금 냉장고 안이 엉망이라.”
나와 에코백 사이를 지혜 씨가 다급히 막아섰다. 그것의 정체는 궁금하지만 일단 후퇴다.
“차 한 잔 드릴게요. 평상으로 나가 계세요. 오늘 바람이 아주 좋더라고요.”
순간 지혜 씨의 입꼬리가 부자연스럽게 당겨져 올라갔다. 마치 위에서 누가 실을 달아 조종하는 인형처럼. 별 수 없이도시락들을 아일랜드에 내려두고 뒷마당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와 지혜 씨 사이에 자석의 같은 극이 작용하듯 일정한 간격이 유지됐다.
평상에 앉아 부엌에서 머그컵에 뜨거운 물을 붓고 있는 지혜 씨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녀가 치운 건지 냉장고 아래에 있던 에코백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내게 도대체 무엇을 숨기는 걸까. 모든 사고의 회로가 뒤얽혀 쓸데없는 호기심이 일었다. 그러고보니 그날의 지혜 씨는 여느 때와 달랐다. 평소 잘 입지 않던 딱 달라 붙는 옷, 심지어 단순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그녀의 옷에 공주 드레스 같은 레이스가 치렁치렁 달려 있었다. 무슨 심경의 변화일까 궁금했지만 그 답을 찾기 전에 지혜 씨가 먼저 평상으로 와 앉았다.
“이번에 말린 감귤인데 향이 아주 좋아요. 한번 마셔 보세요.”
지혜 씨가 건넨 머그컵에서 시큼하면서도 달콤한 냄새가 뜨거운 김을 타고 올라왔다. 그런데 난 왠지 그 냄새가 오늘따라 내려 앉지 말아야 할 곳에 내려 앉은 나비 마냥 불안하게 느껴졌다. 주위의 모든 냄새를 다 덮어버리고, 마지막엔 내 후각까지 마비시켜 버린 그 냄새. 죽었던 세포들이 되살아나 아우성치는 것처럼 온몸이 간지러웠다.
“차 좋네. 근데 자기야, 자기는 왜 친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거야? 예전부터 참 궁금했는데 물어볼 기회가 없었거든.”
뜨거운 찻물이 입술에 닿으며 서서히 입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왜긴요. 요즘은 환경 문제도 심각하고, 선진국에선 벌써 오래 전부터 이런 활동들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잖아요. 그 일환으로…”
“그런 거 말고. 그래도 뭔가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 거 아냐.”
내 성격이 원래 그렇다. 원하는 답을 듣기 위해 또 마음이 말보다 앞서나갔다. 지혜 씨도 당황한 듯 잠시 내 쪽으로 얼굴을 돌리며 머그컵을 평상 위에 내려 놓았다.
“엄마가 죽고 나서요.”
지혜 씨가 고개를 떨구며 답했다. 바닥으로 길게 드리워진 그녀의 그림자가 나무 밑동에 닿아 있었다. 마치 나무 아래에 머리를 처박고 또다른 나무의 기둥이 되어버린 것처럼 그녀의 몸뚱이도 한동안 움직임이 없었다.
“엄마는 늘 제게 엄마와 다른 음식을 먹게 했어요. 그런데 엄마가 먹는 음식에선 내가 먹는 음식에선 나지 않는 냄새가 났죠.”
“어떤 냄새?”
“음… 천국의 냄새.”
“천국의 냄새?”
“네. 냄새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그런 냄새 있잖아요. 그건 꽃향기도 아니면서 향기롭고… 알지 못하는 냄새인데도 내뱃속에선 항상 꼬르륵 소리가 났죠. 참 신기하죠? 엄마는 항상 내가 먹는 음식이 더 좋은 것이라고 했는데 내 눈엔 엄마의 음식이 더 좋아 보였거든요.”
난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여러 가지 음식을 머릿속에 그려봤다. 그러다가 문득 이레가 떠올랐다. 이레가 먹지 않는 음식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건강엔 좋은 것들이다. 사실 난 이레가 밖에서 몰래 음식을 사 먹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어떻게 모르겠는가. 내가 주는 음식들을 안 먹으면서도 날마다 저렇게 살이 쪄 가는데.
“자기야, 그건 모든 엄마 맘이 똑 같은 거겠지. 내 애한테 만큼은 가장 좋은 걸 먹이고 싶은.”
내 말에 지혜 씨는 나무 밑동에 처박았던 머리를 다시 들어올렸다. 그런데 그녀의 눈빛이 아까와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과연… 그랬을까요?”
그녀의 목소리는 좀 슬펐다. 그래서 난 다음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머그컵에서 더는 김이 올라오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감귤 향도 사라지고 서서히 주변 냄새가 코 안으로 돌아왔다. 풀 냄새와 나무 냄새 그리고 바람에 섞여 있는 자동차 기름 냄새까지도 미세하게 느껴졌다.
난 묻지 않았고, 지혜 씨도 말없이 식어버린 감귤차에 집중했다.
그후로는 지혜 씨네 도시락 배달을 갈 때마다 냉장고 아래를 살펴보는 습관마저 생겼다. 하지만 그날 봤던 에코백을 더는 볼 수 없었다.
이레의 방문을 다시 열었다. 작은 찻잔 접시 위에 새까맣게 타버린 짧은 심지 두 개가 보였다. 손가락 두 마디만한 작은 캔들이라 금세 녹아 없어지고 만 것이다. 방안을 천천히 걸으며 냄새를 맡아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내 후각이 좀 둔감한 탓인가. 난 좁은 방을 몇 번 더 돌며 개처럼 사방으로 킁킁거렸다.
“뭐해? 남의 방에서.”
이레는 항상 이런 식이다. 발소리조차 내지 않고 도둑처럼 나타난다.
“깜짝이야! 엄마가 남이니? 말을 해도 넌 꼭 그렇게…”
“예의가 없어. 주인 없는 방에 맘대로 들어와서.”
하여간 한 마디도 정감있게 말하는 법이 없다니까.
“너 비염에 좋다고 해서 비즈왁스 캔들 좀 켜 두려고 들어왔다, 왜! 내가 너한테 무슨 좋은 말을 들으려고 이러고 있나 몰라. 으이구, 내 팔자야. 남편 복도 없는 년, 자식 복도 없다더니.”
“틀렸어. 아빠랑 내가 마누라 복, 엄마 복이 없는 거겠지.”
“어머, 어머 얘 말하는 것 좀 봐. 너 그런 말 어디서 배웠니? 혹시 네 아빠가 너한테 그러디?”
“괜히 죄 없는 아빠 좀 잡지 마. 내가 닮으면 누굴 닮았겠어? 다 엄마 닮은 거지. 아빤 고작 일주일에 한번 보는데. 오죽했음 일주일에 한 번 보겠어?”
이럴 땐 많은 말을 섞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병원에서 내 남은 여생을 보내야 할지도 모르니까.
“아, 참. 사탕 다 떨어졌어. 더 사 줘.”
“저번에 한 상자나 사 줬잖아. 그걸 벌써 다 먹었단 말야? 이노무 시키가 너 그거 엄마가 하루 한 개씩만 먹으라고 했잖아.”
“엄마, 인생에서 먹는 재미가 절반이야. 그 천국의 맛을 맛보지 않는다면 무슨 사는 의미가 있겠어?”
“천국의 맛?”
난 이레의 등짝을 한 대 후려칠 요량으로 들었던 손을 다시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럼 그게 천국의 맛이지, 무슨 맛이겠어? 달콤하고, 먹으면 행복해 지고.”
달콤한 맛, 그래서 먹으면 행복해지는 맛. 사탕 같은 천국의 맛.
그러고 보니 이레의 입안에서 천국의 냄새가 폴폴 났다.
또 이야기가 샜다. 그런데 이야기를 이어 나가다 보면 신기하게도 그 전 이야기가 생각나질 않는다. 내 기억은 상상에 의존하는 걸까 아니면 실재에 기반하는 걸까 이젠 헷갈리기까지 한다. 자꾸 사라지는 기억들 사이로 진짜 기억들이 남아있기나 하는 걸까, 그것도 모를 일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지혜 씨를 처음 만났을 때 긴 생머리의 단아했던 모습은 내 스스로 그녀에게 입힌 이미지일지도 모르겠다. 그 에코백에서 나던 냄새를 맡은 후론 그녀의 얼굴도, 목소리도 전혀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만 같다. 어쩌면 그게 그녀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이레가 말한 천국의 맛과 지혜 씨가 말한 천국의 맛은 같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지혜 씨는 왜 이레처럼 엄마 몰래 그 천국의 맛을 맛보지 않았을까, 그것도 의문이다. 다 큰 어른이 되고,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는 그 천국의 맛을 마음대로 맛본다고 해서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었을텐데. 그리고 그녀는 왜 친환경을 고집하며 유니에게마저 그것을 강요하는 걸까. 아니다. 지혜 씨는 천국의 맛을 이미 맛봤던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스스로 엄마와 마찬가지의 길을 가기로 마음 먹었을 가능성도 있다. 친환경이 나쁜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것도 어째 시원스럽지 않은 것이, 만약 그랬다면 그녀는 엄마 이야기를 할 때마다 매번 그렇게 어두운 표정을 짓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뭘까. 지혜 씨는 뭘 숨기고 있는 걸까. 자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기분이다. 뒷머리가 뻐근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합니까? 하루 종일.”
린 셰프가 내 어깨 너머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깜짝 놀란 내 몸이 반사적으로 벽에 바짝 붙었다.
“아보카도가 떨어졌습니다. 어제 오더 안 했습니까?”
“어머, 내 정신 좀 봐. 쏘리. 내가 못 살아. 지금 당장 필요해요?”
카디건을 걸치며 휴대폰 시간을 확인했다.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미리 연락을 해 두면 문제 없을 것이다.
“많이는 사지 마십시오. 주말엔 손님이 많지 않으니까.”
“오케이, 오케이!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다녀올테니.”
거의 튕겨져 나가다시피 문을 열고 나와 차에 시동을 걸었다. 큰길로 들어서며 과일 가게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이런 일이 한 두번이 아니기에 전화선 너머로 사장님의 화통한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매번 죄송한 마음에 명절 땐 꼭 상품권이라도 챙겨 드리곤 하지만 뭔가 방법을 찾아야지 계속 이렇게 민폐를 끼칠 순 없는 노릇이다.
이 가게도 지혜 씨를 통해 소개받은 곳이다. 원래는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가게로 직접 배송 받지만 오늘처럼 미리 주문하지 못 하거나 갑자기 재료가 떨어졌을 땐 내가 직접 가서 사와야 한다. 우리 가게 앞 큰 마트에서 사도 되지만 린 셰프가 그곳 아보카도는 절대 쓰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꼭 이 가게에서 주문하는 것이다. 어쨌든 가게에선 셰프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니까.
가게의 오픈 사인은 이미 꺼져 있었다. 하지만 내 차가 가게 앞에 들어서는 걸 본 사장님이 얼른 문을 열며 나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사장님, 너무 죄송해요. 저 때문에 집에도 못 가시고.”
“오늘도 펑크낸 거야? 어쩐지 어제가 주문 날짜인데 소식이 없길래 오늘 또 이렇게 얼굴 보겠구나 했네.”
“제가 이래요. 정신이 없어서.”
“애 키우랴, 사업 하랴 정신이 있는 게 이상한 거지. 항상 수고가 많아. 매번 우리 집 거 사 줘서 고맙고.”
사장님은 얼른 들어오라는 듯 손을 안쪽으로 휘저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과일 향이 진하게 퍼졌다. 언제 맡아도 참 기분 좋은 향이다.
“아보카도는 저번처럼 세 박스?”
“아뇨, 이번엔 한 박스 더 주세요.”
“주말 손님 늘었어?”
“그건 아니고요. 저희 집 식구들 먹으려고요.”
식구라곤 이레와 나 둘 뿐이고, 이레도 아보카도를 좋아하진 않지만, 죄송한 마음에 한 박스라도 더 사야 할 것 같았다. 물론 그렇다고 내 실수가 덮어지는 건 아니겠지만 그건 최소한의 속죄였다.
“어이구야, 이레 녀석이 요즘은 아보카도도 먹나?”
“그럴리가요. 그노무 시키 아주 골치가 아파요. 좀 크면 나아지려나 모르겠어요.”
“다 나아질 거야. 잘 생각해 봐. 어렸을 땐 다 그런 거지. 아, 이거 좀 싸 가. 이레가 이건 또 잘 먹잖아.”
사장님이 건넨 건 잘 익은 망고였다. 오렌지만큼 노란 것이 아주 달아 보였다. 이레는 열대 과일을 좋아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망고를 참 좋아했다. 몇 년 전 가게에 들렀다가 이레 얘기를 하며 지나가듯 한 말을 사장님은 기억하고 좋은 망고가 들어올 때마다 몇 개씩 챙겨줬다.
“하여간 사장님께는 늘 감사한 것 뿐이네요. 우리 이레까지 매번 챙겨 주시고.”
“지금 딱 좋게 익었어. 더 두면 어차피 못 팔 거야. 저것처럼 말이야.”
눈을 돌려 사장님이 가리키는 곳을 봤다. 그런데 그곳을 본 내 눈이 갑자기 활짝 열린 카메라 조리개처럼 커졌다. 그날 지혜 씨의 집에서 봤던 에코백이었다. 분명 그것이 맞았다. 해바라기 한 송이가 크게 그려져 있는, 흔치 않은 디자인의 에코백이 여기에 있는 건 단순한 우연일까.
“저건…!”
“응. 맹 선생이 부탁해서 챙겨 놓은 거야. 맹 선생네는 아보카도를 집에서 많이 먹나 보더라고. 매번 푹 익은 걸 저리도많이 챙겨가는 걸 보니. 저 정도면 아보카도 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구만.”
“아보카도요? 저게 다 아보카도라고요? 그것도 다 익은 걸로요?”
“응. 내일 아침에 찾으러 온다기에 미리 챙겨놨지. 나야 뭐 어차피 하루 이틀만 지나면 폐기해야 하는 것들이니 당장 먹어줄 사람이 있는 게 다행이지만. 그래서 그냥 다 공짜로 가져가라 했어.”
지혜 씨가 공짜로 아보카도를 저렇게나 많이 가져가는 이유가 뭘까,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내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에코백에 들어있던 것이 정말 아보카도였다면 왜 그런 악취가 났을까.
금방 먹지 않으면 썩어버릴 정도로 다 익은 아보카도라고 했다. 금방 먹지 않으면 썩어버릴, 먹지 않으면 썩어버릴, 썩어버릴. 자꾸 그 말을 입 밖으로 되뇌어 봤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난 기괴한 결론에 가까워져 갔다.
썩어버린 아보카도. 지혜 씨는 그것을 어디에 쓰는 걸까. 아니, 질문이 틀렸다. 지혜 씨는 그것을 누구에게 먹이는 걸까. 유니? 그건 아닐 거다. 유니는 우리 가게 도시락만 먹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남는 사람은 하나 뿐이다. 그녀의 남편, 반수인.
차를 갓길에 세우고 비상등을 켰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집에 들어오자 마자 제일 먼저 이레 방으로 돌진했다.
“이레야!”
이레는 침대에 엎드려 휴대폰 게임에 열중하고 있다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내가 노크 없이 문 열지 말랬잖아!”
그러거나 말거나 난 서둘러 이레 옆에 앉으며 질문을 쏟아냈다.
“지금 그걸 따질 때가 아니야. 너 유니네 놀러간 적 있지?”
“갑자기 그걸 왜 묻는데? 유니네 집에 보낸 건 엄마잖아. 다 알면서 왜 물어? 유니랑 친하게 지내라며.”
“그런 게 아니라, 지금부터 엄마가 묻는 질문에 대답이나 해. 그 집에 가면 무슨 냄새가 나지 않았어? 가령… 뭐 썩는 냄새라던지…”
“뭐라는 거야? 갑자기 들어와선.”
“잘 생각해 봐. 무슨 냄새 안 났어?”
“냄새?”
“응, 냄새.”
이레가 휴대폰을 잠시 침대 위에 내려놓고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렸다. 그리고 이레의 눈동자가 진중하게 좌우상하를다 돌아 마침내 정중앙에서 멈췄다.
“향초.”
“향초?”
“응. 유니가 비즈왁스 캔들 냄새라던데?”
“비즈왁스 캔들 냄새?”
“응. 엄청 단 냄새였어. 그래서 꿀 냄새라서 그런가 보다, 했지.”
이상하다. 분명 이레 방에선 아무 냄새도 안 났는데.
“이레야, 저번에 엄마가 네 방에서 빙빙 돌고 있었을 때 기억나? 그때 네가 방에 들어와서 엄마한테 막 화내고 그랬잖아. 노크도 없이 맘대로 들어왔다고.”
“응, 그랬지.”
“그때, 네가 방에 막 들어왔을 때 무슨 냄새 안 났어?”
“안 났는데, 아무 냄새도.”
그 비즈왁스 캔들은 지혜 씨가 만들어 준 것이다. 자기 남편도 비염을 심하게 앓고 있다면서 만든 거라고 했다. 이레는 비염이 있지만 심하지 않아서 냄새를 맡거나 음식의 맛을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같은 캔들이라면 왜 내게 준 건 냄새가 안 나고, 지혜 씨네 집에 있는 건 단 냄새가 나는 걸까.
“그것 말고는?”
“몰라, 왜 자꾸 묻는데.”
“그것 말고 다른 냄새는 안 났어?”
“음… 뭐 좀 이상한 냄새도 섞여 나긴 했어. 그런데 그건 왜?”
“무슨 냄새였어?”
“몰라, 정확히는. 그런데 아무튼 좀 토할 것 같은 냄새긴 했어. 우웩.”
“썩은 냄새, 아보카도 썩은 냄새…”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런 나를 이레가 이상하다는 듯 가만히 쳐다봤다.
“썩은 냄새를 덮으려고 그랬던 거야, 냄새를 덮으려고. 그래서 언제나 향이 강한 모과, 유자, 감귤 그리고 비즈왁스 캔들이 아닌 단 냄새가 나는 향초를…”
진실에는 냄새가 있을까. 그렇다면 진실의 냄새는 어떨까. 그건 달콤한 냄새일까. 아니다. 진실의 냄새는 썩은 냄새다. 밝혀지고 나면 역해서 구역질이 나는 그런 냄새다. 수많은 질문들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만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난 그 냄새를 견딜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지혜 씨가 건넨 머그컵에서 시큼하면서도 달콤한 냄새가 뜨거운 김을 타고 올라왔다. 그런데 난 왠지 그 냄새가 오늘따라 내려 앉지 말아야 할 곳에 내려 앉은 나비 마냥 불안하게 느껴졌다. 주위의 모든 냄새를 다 덮어버리고 마지막엔 내 후각까지 마비시켜 버린 그 냄새. 죽었던 세포들이 되살아나 아우성치는 것처럼 갑자기 온몸이 간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