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이방인의 세계(5)

도대체 누가 열었을까. 아니, 누가 알고 있는 걸까.

by Boradbury

*다시, 그녀


엄마가 고작 두 평 땅 속에 묻혔다. 이젠 다시 엄마의 얼굴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신기하단 생각이 들었다. 국화꽃 한 송이를 관 위로 던졌다. 엄마가 국화를 좋아했던가, 생각하다가 그게 뭐 중요하겠냐 싶어 손을 털었다.

집에 돌아와 엄마의 옷을 정리하다가 옷장 맨 위에 분홍색 보자기로 싸 놓은 무언가를 찾았다. 그것을 열었을 때 내 첫마디는 바로 이것이었다.

“웃겨, 정말.”

레이스로 둘러싸인 하얀 원피스. 엄마는 이 옷을 내 앞에서 단 한번도 입은 적이 없다. 적어도 내 기억엔 그렇다. 그래서 난 엄마가 단순한 디자인의 옷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엄마 덕에 난 그런 옷에 익숙했기 때문에 그냥 한번 입어보고 싶었다. 전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하루 아침에 몸만 커진, 그날 동물원에서의 나였다. 사이즈가 맞는 걸로 보아 엄마가 어른이 된 후에 입었던 옷 같았다. 적어도 엄마에게 다른 여자 형제가 있다거나 내가 아닌 다른 딸이 있지 않다면 이건 분명 엄마의 옷이 맞다.

“재밌네, 참.”

엄마에게 이런 재미있는 구석이 있었다니 의외였다. 이 원피스를 입은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려고 애썼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그건 마치 붙여 놓아선 안 될 것들끼리의 조합 같았다.

커다란 박스를 가져와 엄마의 옷들을 눌러 담았다. 어떤 옷은 엄마의 표정까지 묻어 있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엄마가 다시 살아 돌아와 내 곁에 앉아 있는 것처럼 불편했다. 죄책감이 들다가도 내가 왜? 하며 더 깊게 묻었다. 엄연히 말하면 내가 죽인 건 아니다. 단지 증오를 마음 속에서 키워갔을 뿐이다. 간절하게 엄마가 사라져 버리길 바란 게 죄라면 죄겠지만 그렇다고 엄마가 갑자기 쓰러진 것이, 그러다가 단 며칠 만에 죽어버린 것이 내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냉장고를 열었다. 엄마의 음식과 내 음식이 다른 칸에 나눠져 있었다. 첫번째 칸엔 엄마가 먹다 남긴 생크림 케이크 한 조각, 언젠가 먹으려고 사다 둔 삼겹살 한 팩, 커피 캔 두 개, 맥주 캔 여섯 개짜리 묶음이 있었다. 두번째 칸엔 삼분의 일 쯤 잘린 통밀빵 한 덩어리, 생수병 다섯 개, 말라 비틀어진 딸기 한 팩 그리고 다 썩은 까만 아보카도 세 개가 있었다.

쓰레기 봉지를 열었다. 그리고 그 안으로 던져 넣었다. 삼분의 일 쯤 잘린 통밀빵 한 덩어리, 말라 비틀어진 딸기 한 팩 그리고 다 썩은 까만 아보카도 세 개.

그런 다음에 난 엄마의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하얀 생크림 케이크는 천국의 맛이었다. 딸기나 포도 같은 맛을 상상했었는데 그보다 훨씬 달콤하고, 고소했다. 이따금씩 목이 마를 때면 커피 캔을 따서 마셨다. 카페인 때문에 심장 뛰는 소리가 몸 밖에서도 들렸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건 하늘로 솟구쳤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느낌이었는데 롤러코스터처럼 꽤 스릴 있는 경험이었다.

저녁에는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고기를 굽는 건 처음이라 좀 겁이 나긴 했으나 분명 생크림이나 커피만큼 놀라운 경험이 될 거란 생각에 설레기까지 했다. 후라이팬에 분홍빛 삼겹살이 기름을 튀기며 구워져 갔다. 항상 냄새만 맡고 입에 넣어보지 못했던 고기의 맛은 어떨까. 고기가 다 구워지길 기다리는 내내 난 여러가지 천국의 맛을 상상했다. 그리고 결국 그걸 맛보았을 때, 난 정신이 나가고 말았다. 정신이 다시 돌아왔을 땐 이미 고기는 한 점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맥주는 좀 썼지만 계속 들이키다 보니 몸이 나른해졌다. 커피하고는 반대의 느낌이었다. 내 몸이 가벼워져서 우주인처럼 공중을 떠다녔다. 그리고 겨우 한 캔을 마시고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꿈도 꾸지 않았다. 간만에 아무런 걱정 없이 푹 잤다. 꿈에서라도 엄마를 만난다면 한번쯤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이젠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지금 행복하니까 그걸로 됐다.


유니를 재우고 돌아와 화장대 앞에 앉았다. 그리고 제일 아래에 있는 깊은 서랍을 열었다. 오늘 제과점에 들러 사온 조각 케이크를 꺼냈다. 투명한 삼각형 뚜껑을 열자마자 천국의 냄새가 방안으로 퍼져갔다. 엄마가 남긴 그것을 냉장고에서 처음 꺼냈을 때처럼 마음이 설렜다. 포크 따윈 필요없었다. 오른쪽 검지 손가락을 들어 크림부터 찍어 입안에 넣었다. 이 달콤함, 얼마만인지. 이번엔 케잌에 얼굴을 묻고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입 언저리에 생크림이 여기저기 묻었지만 그런 건 문제되지 않았다. 어차피 나중에 혀가 다 쓸어 입안으로 집어 넣을테니까. 그런데 한 조각은 너무 작다. 세 입만 먹어도 금세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절제가 없다면 이런 천국의 맛도 가치가 없다. 아쉬운 마음에 생크림만 남은 플라스틱 용기를 혀로 핥았다. 그리고 늘 그렇듯, 플라스틱 용기는 비닐봉지에 잘 넣어 배낭 안에 숨겼다. 나중에 밖에 나가면서 버려야 하니까.

자연스러운 가짜. 엄마가 건넨 아보카도 샌드위치를 먹을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저 여자는 내 엄마가 아니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난 알 수 있어. 그 어린 나이에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책, 성경엔 이런 구절이 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이게 그 근거다.


엄마는 내게 썩은 아보카도로 만든 샌드위치를 먹였다. 난 단 한번도 엄마의 말을 거스른 적이 없는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내 취향이 아닌 하얀 원피스를 입었고, 내 취향이 아닌 인형을 들었고, 내 취향이 아닌 긴 생머리를 늘어뜨렸다. 아보카도 샌드위치를 건네는 엄마의 얼굴에선 어떠한 죄책감도 느낄 수 없었다. 마치 부모의 책무를 다할 뿐 아무런 의도가 없다는 듯 내가 그것을 다 입에 욱여 넣을 때까지 곁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일이 끝나면 가방에서 물통을 꺼내어 내 앞에 내밀었다.

길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난 누군가를 길들일 수 없었다. 그러기엔 너무 작았고, 약했다. 엄마는 내게 인간은 누구를 길들이거나 아니면 길들여질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일찍부터 가르쳤다. 그래서 난 엄마에게 철저하게 길들여졌다. 내 모든 삶은 엄마에게 맞춰져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올지 모르는 친 엄마를 빨리 보내 달라고 매일 밤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것은 거창한 희망이 아니라 아주 작고 초라한 기대였다.


수인 씨가 커피에 소금을 한 스푼 섞어 휘저었다. 난 그런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단조로운 투로 말했다.

“저도 설탕 좀 주시겠어요?”

“아, 루이보스가 신맛이 좀 강하죠?”

수인 씨가 탁자 위에 놓인 작고 네모난 소금통을 내 쪽으로 잽싸게 밀어주었다. 그리고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난 소금을 티스푼으로 반만 찻잔에 넣고 아주 천천히 저었다.

“지혜 씨도 달달한 걸 좋아하시나 봐요. 역시 우린 잘 맞네요. 이런 걸 소울 메이트라고 하죠. 하하하...”

찻잔 속 붉은 물이 티스푼을 따라 빙글빙글 돌았다. 그리고 마침내 휘몰아치는 그 액체가 내 입술에 닿는 순간,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하마터면 악, 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런데 그걸 또 봤는지 수인 씨가 다시 소금통을 내밀었다.

“설탕 더 필요하세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는 최대한 침착한 척 했지만 연신 커피를 들이키는 모습을 보아하니 꼭 그런 것 같진 않았다. 그래도 소금을 설탕으로 착각할만큼 내 앞에서 긴장한 걸까.

길들이기 쉬운 부류가 있다. 진짜 모습을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 자연스러운 가짜를 진짜라고 믿는 사람들. 그들의 또다른 특징은 사랑이나 신뢰라는 단어를 몹시도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길들이기 위해선 하나의 장치가 필요하다. 그가 거부할 수 없는 걸 던져주기. 난 아주 재미있는 실험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반수인씨, 하나만 물을게요.”

“그럼요, 무엇이든지요.”

“난 누군가에게 내 뜻을 강요하지 않아요. 사람은 각자의 결정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동의합니다.”

난 그에게 강요한 적 없다. 그건 그의 결정이었고, 그는 스스로 누군가에게 길들여지는 쪽을 택했다. 그는 내가 내민 손을 아무런 의심없이 덥썩 잡았다. 그렇게 우리의 거래는 이루어졌다.


썩은 아보카도의 색을 감추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보카도는 공기와 만나면 급격히 산화가 시작되어 색이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난 확실한 것을 선호한다. 아보카도를 유리 그릇에 넣고 포크로 모조리 으깼다. 이제야 좀 봐 줄만해졌다. 그 다음엔 어려운 과정이 없다. 어차피 수인 씨는 비염이 심해 음식 맛에 까다롭지 않으니까. 모양만 예쁘면 그것으로 됐다.

통밀빵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두 장을 달군 후라이팬에 살짝 구웠다. 갈색 빛이 도는 바삭한 빵의 식감을 살리기 위해서다. 그 다음엔 얇게 썬 토마토와 적양파, 어린잎 채소 두 종류, 잘 익힌 계란후라이를 켜켜이 쌓고 머스타드와 으깬 아보카도를 적절히 섞어 바르기만 하면 된다. 머스타드는 갈변된 아보카도의 색을 숨기는데 도움이 된다. 그렇게 두툼하게 속을 채운 후 갈색 종이 호일로 예쁘게 감싸면 끝이다.

“매일 아침 내 샌드위치 싸느라 수고가 많아. 땡큐.”

수인 씨가 자동차 키를 챙기며 식탁 건너에서 말을 걸었다. 으레 아침마다 하는 일종의 습관이다. 마음은 넣지 않고, 껍데기만 던지는 이런 걸 사람들은 예의라고 하던가.

“힘든 것도 아닌데 뭘, 빈 속에 다니지 말고 꼭 다 먹어야 해. 알았지?”

연두색 도시락 가방에 샌드위치와 모과차가 든 보온병, 냅킨을 넣어 집을 나서는 수인 씨의 손에 쥐어줬다. 그가 대문을 열고 나가 차를 타기 전에 한번 더 내 쪽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난 그의 차가 큰길 쪽으로 사라져 가는 모습을 거실 창을 통해 바라봤다. 누군가를 길들이는 일은 참으로 피곤한 일이다.

“초를 켤 시간이네. 저 냄샌 언제나 맡아도 정말 싫어.”

토치를 꺼내어 향초에 불을 붙였다. 모양은 저번에 만든 비즈왁스 캔들과 같지만 사실 내용물은 다르다. 이것 또한 자연스러운 가짜 중 하나다. 거실로 점점 달콤한 바닐라 케이크 냄새가 번져갔다. 천국의 냄새. 그 냄새를 맡으니 또 케이크가 먹고 싶어진다. 아무래도 오늘 나가는 길에 하나 사 와야겠다.


그래, 냄새라면 아주 독한 기억이 있다. 그건 천국의 냄새 말고, 지옥의 냄새였다랄까. 그 냄새의 꼬리를 잡으려면 오래 전, 일로 들른 중국의 한 도시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곳은 북경처럼 아주 복잡한 곳은 아니었지만, 통역하던 유학생의 말에 의하면 나름 대도시에 속하는 곳이라고 했다. 버스가 한번씩 지나갈 때마다 흙색 연기가 한번씩 너풀거리며 공기 중으로 떴다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푸석한 흙먼지에 내가 심하게 기침을 하자 그가 날 도로 반대쪽으로 밀치듯 옮겼다. 자연스럽게 고개가 건물 쪽으로 돌아갔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그닥 높지 않은 건물들이 어깨를 걸고 나란히 지나갔다.

건물 안으로부터 길가 쪽으로 흘러나온 잡다한 냄새들이 내 허락도 없이 코 안으로 마구 들어왔다. 익숙치 않은 향신료 냄새가 나는 건물을 지나 젖은 옷처럼 퀴퀴한 냄새가 나는 건물도 지나고 약초 냄새가 나는 건물, 향 냄새가 나는 건물 등을 차례로 지나쳤다. 하지만 그 냄새들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도 안 날만큼 특별하진 않았다. 적어도 낯설진 않은 냄새들이었다.

그러다가 파란색 페인트가 곳곳에 벗겨진 이층 건물을 지나려는데 갑자기 낯선 냄새가 풍겨왔다. 난 그 자리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열린 창가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런데 그 안엔 몹시 신기한 장면이 펼쳐졌다. 시멘트로 만들어진 네모난 수영장, 그 안엔 독한 냄새를 풍기는 액체가 가득 부어져 있었다. 처음엔 물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더운 공기 속에 담겨 날아온 냄새가 시각보다 더 정확한 답을 내놓았다.

시큼하면서도 눈과 코를 맵게 쏘는 그 냄새는 내게 가까이 오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라며 날카로운 경계선을 그었다. 그리고 액체 위에 떠 있는 수십 여개의 알 수 없는 길쭉한 형상들. 난 본능적으로 그 창문에서 날 떼어내기 위해 뒷걸음치려고 애썼다. 하지만 본능보다 강한 호기심은 사건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비밀 탐정처럼 창문 안으로 더 깊숙이 머리를 밀어넣었다. 그리고 점차 실마리의 윤곽이 완성되어져 갈수록 내 머릿속엔 ‘설마’라는 단어가 가득 채워져 갔다. 설마, 설마, 설마... 무수하게 나열된 똑같은 단어, 그 행렬의 끝자락에서 난 나도 모르게 뾰족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괜찮아요?”

창문에서 얼른 몸을 떼고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자 그는 날 다시 도로쪽으로 끌어당기며 물었다.

“뭣 때문에 그래요?”

“저, 저기... 시, 시, 시체들이...”

난 결국 말을 채 마치지 못하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그가 자기 가방에서 재빨리 플라스틱 물통 하나를 꺼내어 내게 건넸다. 그것을 꼭 쥔 내 두 손 안에서 물이 좌우로 심하게 요동쳤다.

“여긴 의대 부속 병원이에요. 그쪽이 본 건 아마도... 해부용 시체였을 겁니다.”

“하지만,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들도 다 볼 수 있는데 어떻게 저런...”

“여기선 이런 일이 다반사입니다. 길가에 갓난아이가 버려져 죽어가도 누구 하나 들여다 봐 주는 사람이 없어요. 슬픈 일이죠.”

“그쪽은... 저 냄새가 안 나요?”

“아, 전 비염이 심해서 괜찮아요. 그 점이 편할 때도 있네요. 맡고 싶지 않은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되니...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어요?”

“......”

뇌간이 끊어지면 이런 느낌일까. 누군가 내 몸의 모든 스위치를 탁 하고 꺼버린 것만 같았다. 아무 생각도, 아무 감정도 들지 않고, 그저 퍽퍽거리는 소리만 귓가를 맴돌았다. 머리 아래에 다리가 붙은 것처럼, 몸뚱이가 사라진 것처럼 혹은 팔다리가 머리 위에서 덜렁거리는 것처럼 이해되지 않는 느낌들이 불쾌하게 온몸을 휘감았다.

버스가 지나가며 또다시 흙색 연기가 훅 하고 공중에 날아 올랐다. 이번엔 서둘러 그것을 깊이 들이마셨다. 흙냄새와 함께 휘발유 냄새가 폐 안으로 섞여 들어왔다. 하지만 지금 내가 숨쉬기엔 그것이 더 나을지도 몰랐다. 어떤 냄새를 간절히 덮어버리길 원했다면 그건 매우 정확하고 옳은 결정이었다.

결국 난 그의 등에 업혀 호텔로 돌아왔다. 그는 날 침대에 눕히고서 무슨 말을 열심히 하는 것 같았지만 난 아직도 악몽 속을 헤매고 있는 사람처럼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그가 말을 멈추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종이에 뭔가를 적어 침대 옆 작은 탁자 위에 올려둔 후 방을 나갔다. 그가 나가고 또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새 창밖이 점점 먹색으로 채워지고, 침대에 누워 뚫어지게 쳐다보던 천장의 화재경보기가 윤곽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방 안이 어두워졌다.

몸은 여전히 내 몸이 아닌 것처럼 춥지도, 덥지도 않았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배가 고프지도 않고, 많이 걸었는데도 다리가 아프지 않았다. 점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나는 과연 살아 있는 건가, 아니면 살아있는 걸로 가장하고 있는 건가. 최대한 자연스럽게 속으로 숨고 숨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려는 것처럼 말이다.

엄마만 자연스러운 가짜가 아니었어. 엄만 나를 통해 자기를 복제한 거야.

머릿속에 그 한 가지 생각이 외딴 섬처럼 둥둥 떠 있었다.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 생각 때문인지 후각이 돌아왔다. 방안 전체에 병원에서 맡았던 냄새가 가득했다. 공포의 냄새는 늘 공포에 잠식당한 자에게 붙어 따라온다. 그러니 병원에서부터 내게 붙어 호텔방까지 따라 들어왔을 것이다. 그 다음엔 온몸의 스위치가 동시에 켜진 듯 내 몸을 침대에서 세차게 튕겨냈다.

곧장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 물을 틀었다. 옷입은 그대로였다. 독한 냄새를 당장 씻어내고 싶었다. 데일 것 같이 살짝 뜨거운 물이 정수리에서부터 바닥으로 쉴새없이 쏟아져 내렸다. 욕조 안으로 점차 물이 차올랐다. 그런데 갑자기 시체들이 생각났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등을 보이고 고개를 물 속에 처박은 상태로 물 위에 떠 있었다.

어느새 물의 높이가 발목을 넘어 종아리까지 차올랐다. 어떤 의식을 치르듯 욕조 안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러니 허리까지 물에 잠겼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려는 건지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물이 더 차오르길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물에서 소독약 냄새가 났다. 욕조 바닥엔 물에 섞여 있었던 건지, 내 몸에서 나온 건지 모를 모래 알갱이들이 가라앉았다. 천천히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수면이 점점 얼굴에 가까워져 오다가 어느 순간 물 안으로 쑤욱 빨려들어갔다.

귀가 멍해졌다.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굵은 물방울들이 뒷머리를 따갑게 두들겨 댔다. 다른 세상에 온듯 주위가 아주 조용해졌다. 좁은 욕조에 구겨넣은 내 몸이 아무 움직임도 없이 고요했다. 난 스스로 죽고 싶었던 적이 있었던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질문 하나가 물 속에서 나와 수면 위를 시체처럼 둥둥 떠다녔다. 팔다리가 기포처럼 가벼워졌다. 하지만 질문은 더 무거워져 욕조 바닥의 모래처럼 가라앉았다.

내 안의 숨이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때 어떤 목소리 하나가 나즈막히 내게 속삭였다.

이 몸은 가짜야. 가짜를 입고 있는 것일 뿐 사실 존재하지 않았잖아. 그러니 이제 그 무거운 옷은 그만 벗어버려. 엄마의 죽음을 간절히 바랬던 네 그 쓸데없는 죄책감, 그것이 풍기는 독한 공포의 냄새를 벗어버리라고. 그딴 공상과 망상은 널 가짜로 만들 뿐이야. 이제 좀 솔직해져 봐. 진짜가 되는 거야.

갑자기 정체 모를 힘이 솟았다. 무릎과 허리에 힘을 주고 상체를 들어올렸다.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굵은 물방울 소리가 요란하게 귀를 때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폐포 끝까지 닿을 정도로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물이 숨에 붙어 입과 코로 장맛비처럼 마구 들이쳤다. 물을 끄기 위해 벽을 더듬었다. 뿌연 수증기 탓에 눈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다시 살아난 내 몸은 감각을 더 예리하게 벼린 듯 뜨거웠고, 숨이 차 가슴이 아팠고, 배가 많이 고팠다.

침대에 앉아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비벼 닦았다. 아무 채널이나 튼 중국 티브이에선 옛날 달력에서 볼 법한 풍경들이 배경 음악에 섞여 차례로 지나갔다. 가끔 화면 아래에 한자 몇 글자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걸 보니 지명 이름인 것 같았다. 방안은 평온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내 표정처럼 독한 냄새도 사라지고 없었다.


화장대의 가장 윗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잡다한 화장품 샘플들을 치우고 맨 밑에 깔아둔 하얀 종이 봉투를 꺼냈다. 내가 그 봉투 안의 것을 보기로 했다는 건 그 날이 다시 떠올랐단 증거다. 중국의 작은 도시, 그곳에 있던 4성급 호텔 이름이 찍혀 있는 작은 메모지가 정확히 십자로 접혀 있었다. 내 손이 마지막 패를 까는 도박꾼처럼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 그리고 드디어 그 패가 열렸다.

죽지 마요. 꼭 그럴 것 같아서.

그날 내 통역을 도와주던 중국 유학생은 자신의 전화번호와 함께 딱 두 문장의 글을 남겼다. 가끔 그 말의 의미를 곱씹어본다. 공포를 삼킨 아니, 공포가 삼킨 내 얼굴은 대체 어땠길래 그가 이런 메모를 남겼을까. 다음날 공항을 떠나기 전, 딱 한번 그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내가 들을 수 있었던 건 그의 목소리가 아닌 음성메시지 안내 뿐이었다. 결국 별 의미 없이 던진 말인가. 나름 생명에 대해 진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그에게선 썩은 내가 아닌 좋은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는데.

전화를 끊었다. 그래도 나중에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며 덕분에 내가 죽지 않았단 것만은 알아주길 바랐다.


까맣게 잊고 있던 포르말린 냄새. 후각은 인간의 기억을 가장 예리하게 도려내는 주머니칼과 같다. 냄새를 매개체로 시간 여행을 다녀오면 그곳의 분위기, 날씨, 공기, 소리마저도 생생하게 살아나 내 몸에 덕지덕지 붙는다. 그래서 난 천국의 냄새가 나는 향초에 그 냄새가 영원히 묻히길 간절히 바랐다.

“무슨 생각해?”

“깜짝이야, 언제 왔어?”

수인 씨가 어깨너머로 얼굴을 쑥 들이밀었다.

“아직 점심 시간도 안 됐잖아.”

“전화는 왜 안 받는 거지?”

“그게 무슨 말이야? 전화를 안 받다니.”

그제야 난 수인 씨 뒤에 있는 유니를 발견하고 양 눈썹을 가운데로 모았다.

“유니는 왜 여기 있어? 오늘 어머니께서 봐 주기로 하셨는데. 나 마감이 이번 주말이라.”

“엄마가 김치통을 들다가 허리를 삐끗하셨대. 곧바로 병원에 가느라고 유니 찾아가라는데 당신이 전화를 자꾸 안 받으니까 나한테까지 전화를 하셨지 뭐야.”

“그렇다고 일하고 있는 아들한테 전화를 하시면 어떡해? 유니가 한두살 먹은 어린 애도 아니고, 병원 가실 때, 그냥 데려가시면 되잖아.”

“무슨 말이 그래? 엄마 괜찮으신지 그것부터 물어봐야 하는 거 아냐?”

정색하는 수인 씨 뒤로 유니가 더 바짝 몸을 붙였다. 여기서 더 밀어부쳤다간 그의 분노 한계선에 도달한다는 걸 잘 알기에 일단 화제를 돌리기도 했다.

“미안, 당황해서 그랬어. 유니를 어째야 하나 싶어서.”

“유니는 내가 데리고 곧 나갈 거야. 잠깐 뭐 좀 확인하러 들어왔으니까.”

“확인? 뭘? 그건 그렇고, 일은 어쩌고 왔어?”

“후배가 대신 갔어.”

“고맙네. 근데... 아보카도 샌드위치는 먹었어?”

수인 씨의 식사 시간은 거의 일정했다. 일할 때도 특별한 일이 없다면 정해진 시간에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휴대폰 시계를 확인해 보니 아직 그의 점심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다.

“됐어. 유니랑 들어오면서 이레네 들러 먹었어. 그리고 저녁도 차릴 필요 없어. 필요한 것만 챙겨서 다시 유니 데리고 나갈 거니까.”

삐친 것이 분명했다. 어머님 일로 기분이 상한 건가. 수인 씨가 등 뒤에 서 있는 유니의 손목을 낚아채듯 잡아 도로 방에서 나가버렸다. 열린 방문 사이로 식탁 위에 놓여진 연두색 도시락 가방이 보였다. 썩은 아보카도 냄새가 여기까지 나는 듯했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 심지어 집안에 향초도 켜 놓았는데.

가끔 이럴 때가 있다. 신기한 현상이었는데 엄마가 죽던 병원에서 맡았던 그 냄새가 엄마가 죽은 후에도 내 주위를 계속 맴도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건 후에 아보카도 샌드위치 냄새로, 그리고 또다시 포르말린 냄새로 확장되어 갔지만 어느 순간, 난 이 모든 냄새를 잇는 공통점을 찾았다. 자연스러운 가짜의 냄새.

“썩은 주제에 어디서 살아있는 척이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을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연두색 도시락 가방을 쓰레기통에 처 박았다. 지긋지긋하다. 언제쯤 이 냄새들을 완전히 벗을 수 있을까.

신선하고, 전국에서 제일 품질이 좋다는 식재료들을 주문해서 먹었다. 뒷마당에 텃밭을 만들고 금세 따온 채소들과 허브들로 샐러드를 만들어 먹었다. 집에서 사용하는 가구와 물건들, 내가 쓰고 있는 아주 작은 물건까지도 내 손을 직접 거치거나 친환경 인증을 꼭 확인하고 구매했다. 이제껏 내 속에 들어가는 것들과 내 주변에 있는 것들이 신선하게 살아나도록 애쓰며 살아왔다. 죽지 않도록 신경 썼단 말이다.

아, 한 가지만 빼고. 수인 씨, 그는 약간의 변수이긴 했지만 나름 가치있는 실험체였다. 진짜를 보려하지 않는 사람은 길들이기 쉬운 법. 그렇기에 그는 완벽했다. 난 그를 통해 이 실험을 완성하고 싶었다. 그리고 증명하고 싶었다. 난 엄마의 복제품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어느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았다는 걸, 난 엄마와 다르게 죽지 않고 살아났다는 걸.

다시 방으로 발길을 돌리다가 불안한 느낌에 부엌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싱크대 아래에 있는 장이 열려있다. 도대체 누가 열었을까. 아니, 누가 알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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